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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청지기 Oct 05. 2023

새벽에 거실등을 교체하다

아들의 첫 도전




추석 연휴를 맞아 상경한 둘째 아들이 오늘 LED 거실 등을 교체했다.


몇 개월 전에 LED 거실 등 한쪽 등이 고장으로 점등되지 않아 보상교환 형식으로 저렴하게 새 거실 등은 이미 구입해 놓았었다. 그런데 설치 기사를 부르지 않아 한쪽 방에 계속 보관만 하고 설치를 미루고 있었다. 처음에는 주변에 사시는 교회 집사님이 설치해 주셨는데 또 설치를 부탁하려니 미안하기도 하고 기사를 부르자니 거실 등 하나 교체하는데 4만 원 가까이 비용이 들어서 차일피일 미루게 되었다.


거실 등을 직접 교체하려면 키도 커야 하고 힘도 있어야 해서 180cm가 넘는 둘째 아들이 아니면 우리 집에서는 할 만한 사람이 없다. 그러던 중에 둘째 아들이 한 번 해 보겠다고 해서 설치 방법이 나온 영상을 보고 난 후 교체 작업을 시작했다. 이때 시간이 자정이 훌쩍 지난 시간인데 다음 날 아침 일찍 약속이 있다고 해서 작업하려면 지금 밖에 시간이 없다고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기존 거실 등과 새로 구입한 거실 등의 규격이 같기에 고정판인 브래킷의 간격도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 거실 등만 떼어내고 새 거실 등을 고정하면 이 되리라고 간단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서로 브랜드가 달라 브래킷에서 나온 나사 위치가 맞지 않았다. 기존 거실 등과 새로운 거실 등의 브래킷과 등의 고정 나사 위치가 미묘하게 달랐다.


"아... 이를 어째..."


아들이 설치된 브래킷을 떼서 새 거실 등 위치와 맞게 고정 나사 위치를 옮겨서 연결하고 다시 붙여야 한단다. 일이 커진 것이다. 피스가 준비되어 있고 전동드라이브 등 관련 도구가 있으면 쉽게 할 수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다 보니 작업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들은 바로 브래킷을 분리했고 나사 위치를 옮겨 달았다. 그리고 브래킷을 고정하기 위해 다시 천정에 붙이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새벽인 데다가 기존 피스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워 고정에 무척 애를 먹었다. 그리고 겨우 브래킷을 고정했는데 새 전등의 고정 나사 출구 위치가 약간 맞지 않아 연결할 수가 없었다. 기존 피스 위치에 억지로 드라이브를 돌려서 고정하다 보니 브래킷이 살짝 휘어서 위치가 안 맞는 것 같단다. 아들이 브래킷 고정 나사를 피스에서 살짝 풀어서 휘어진 부분을 폈다. 그리고 다시 거실 등을 연결했더니 다행히 고정 나사가 연결할 수 있도록 바깥으로 노출되었다. 드디어 거실 등을 브래킷 나사에 고정하고 전선을 연결한 후 불을 켰다.


"아.. 불이 왜 이렇게 어둡지?"


환하게 거실이 밝아야 하는데 양쪽 등이 점등 됐는데도 이전에 등 하나 켰을 때 보다 어두웠다. 순간 당황했다.


"어.. 이건 아닌데.. 이상하다."


천정에서 내려온 전선은 2가닥. 이전 거실 등과 동일하게 3 구멍 중 양쪽 끝에 꽂아서 연결했는데 왜 이럴까? 그래서 양쪽 끝의 선을 뽑아 가운데에 꽂아 보기로 했다. 그랬더니 한쪽 등은 점멸되고 한쪽만 들어오는데 전등 밝기가 정상적으로 밝았다. 가운데 연결하면 밝긴 한데 오른쪽이든 왼쪽이든 한쪽 등만 점등되는 것이다.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일단 이 상태로 두고 제품에 이상이 있다고 보고 A/S를 신청하기로 했다.


방에 들어와서 구입 회사 사이트의 AS접수란에 증상을 설명하고 사진을 첨부해서 AS 신청 등록을 했다. 사진을 이전 사진과 현재 사진을 첨부했는데 갑자기 사진을 비교해 보고 싶어서 이전 사진과 현재 사진을 비교해 보다가 다른 점을 발견했다. 이전 등에서 천정에서 내려온 선은 양쪽 양 끝에 꽂히는 것이 맞으나 등에 붙어 있던 선 4가닥 중 흰색 선과 검은색 선이 각각 있는데 두 개씩 쌍으로 오른쪽, 왼쪽에 2개씩 꽂혀 있었고 가운데는 연결되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새 등은 양쪽 끝에 흰색 선이 꽂혀 있고 가운데에 검은색 선이 2가닥 꽂혀 있었다. 그래서 다시 아들을 불렀다. 천정선은 양쪽으로 하나씩 꽂고 맞은편에 있는 전등에 있는 선 중 가운데 꽂힌 2가닥 검은 색선을 양쪽 끝으로 각각 옮겨 꽂아보자고 했다. 이전 등과 새 등을 동일한 상태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아들이 다시 장갑을 끼고 선을 뽑고 다시 꼽았다. 불을 켜 보니 양쪽에 점등이 되긴 했으나 이전 보다 더 어두웠다.


"이거, 오히려 망한 각인데."


아들과 나는 당황했다. 이런 걸 바란 게 아닌데.. 아들이 선의 접지가 잘 안 된 것 같다며 여러 차례 선을 뺐다가 다시 꽂으며 여러 번 테스트를 했다. 계속 불이 어두웠다. 아들이 마지막으로 다시 해 보자며 선을 정리해서 다시 깊게 꽂았다. 그리고 불을 켰다.


"와~~ "


정상적인 밝기로 양쪽 등이 모두 점등되었고 거실이 환해졌다. 나와 아들은 이 새벽에 하이파이브를 했다. 그리고 아직 씌우지 않고 옆에 뒀던 등 커버를 씌웠다. 그리고 다시 불을 켰다. 정상적으로 환하게 켜졌다. 거실 등에 대한 스트레스가 일순간에 사라지는 순간이다.


작업이 완전히 끝난 시간은 새벽 2시 30분.


아들이 천장을 계속 쳐다보느라 목이 아프고 팔이 아픈 고된 작업 중에도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열심히 해 주었다. 잠자거나 공부해야 할 시간인데 말이다. 처음 해 보는 일이지만 최선을 다해 준 아들이 고맙다. 




나는 키가 작아서 전등을 갈고 교체하는 것과 같이 높은 곳의 일은 할 수가 없다. 아들이 어릴 때는 아내가 해야 했고, 아들이 장성한 후부터는 아들에게 부탁하고 있다. 무거운 도구 상자를 들고 곳곳의 집안일을 척척하는 아버지가 어릴 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철공업을 하셨던 아버지는 나에게는 맥가이버와 같은 존재였다. 나도 가정을 이루면 집안일을 아버지처럼 척척하는 맥가이버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신체적 제약으로 인해 상당한 부분의 일을 아내에게 미루거나 이웃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요즘이야 수고비만 주면 집안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처리해 주는 분들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이전에는 이런 것은 가정의 가장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에 혼자서 고민하기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참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가능하면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하려고 했었으니까.


이제는 이런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다. 든든한 아들이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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