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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zard Writer Jan 13. 2024

저렴한 집, 웬만한 집, 쾌적한 집

I. 정착기 - 2) 어디서 살까?

"집은?" "집은 구했어?" "집은 어떡해?" 하와이에 올 때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의식주에서 마지막에 있는 '주'거 공간이지만 먹고 입는 것은 어떻게든 해낼 테니 집 문제는 어딜 가나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미국에 일 년 정도 나가는 분들이 보통 연고가 있는 곳에 가고, 지인에게 집을 알아봐 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보았다. 지인이 없으면 한 달 치 월세 정도 수수료를 지불하고 대신 집을 미리 구해주는 서비스를 이용하기도 한다.


은행에 달러 잔고가 넉넉하면 집을 구하기 어렵지 않지만 돈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라고 들었다. 미국에는 한국처럼 매물을 찾아서 이어주는 부동산 중개인이 없기 때문이다. 집을 관리하는 부동산 중개인이 있지만 서로 매물을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집을 찾는 사람이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한다. 희망하는 집에 신청서를 작성해 넣으면 집주인이나 중개인이 그중 마음에 드는 세입자를 고르는 방식이다.


Single, Non-smoking, No pet. 하와이에서 월세 집을 구하기 완벽한 조건이다. 아무래도 사람이 여럿이고 아이들까지 있으면 집이나 가구가 상할 만한 사건이 늘기 마련이니까. 담배 냄새나 동물 냄새는 물론이고.




호놀룰루가 있는 하와이 오하우섬은 크게 동쪽과 서쪽 혹은 남쪽과 북쪽으로 구분한다. 동쪽은 다이아몬드헤드(Mauka: 산), 서쪽은 에바(Makai: 바다)로도 구분한다. 남쪽은 사우스쇼어(South Shore)라고 하는데 와이키키 등 도심이 있고 북쪽은 노스쇼어(North Shore)로 불리는 서핑 성지가 있는 시골이다. 동남쪽에는 카할라, 하와이카이 등 학군 좋은 부촌이 있다. 거기서부터 남쪽 바닷가로 와이키키, 알라모아나, 카카아코, 다운타운 등이 이어진다. 하와이대학교가 있는 산 쪽으로는 카이무키, 마키키 등이 있다.


나는 언제나 그렇듯 바닷가를 택했다. 바다가 보이는 것은 물론 걸어서 바다에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집값이 비싼 대신 상권이 가까운 지역에 살면서 차를 사지 않고 버스를 타거나 걷기로 했다. 그러면 남는 것은 와이키키 아니면 카카아코.




하와이에서 오래 거주하지 않는 한 가구가 다 갖추어진(furnished) 집이 필요한데 이런 집은 많지 않다. 혼자 지내는 데 가구까지 완비된 원룸(미국에서는 스튜디오라고 부름)을 찾으면 기본 1,500달러, 중간이 2,000달러, 고급은 2,500달러 이상 생각해야 한다. 방이 별도라면 300달러, 방이 두 개라면 500달러는 추가해야 할 것이다. 물론 마음 맞는 사람을 찾아서 집이나 룸을 공유한다면 주거비는 파격적으로 절약할 수 있다.


나는 사정상 중간에 이사를 한번 하는 바람에 집을 두 차례나 알아봤다. 그래서 가구를 갖춘 원룸의 가격대 구성은 물론 팬데믹 직후 비교적 좋은 가격에서 시작해서 6개월 후 월세가 평균 300달러나 오른 것을 체감했다.


첫째, 저렴한 집. 10년이나 20년 전 서울에 상경해서 집을 알아볼 때 봤을 법한, 말 그대로 오래된 원룸이다. 침대와 탁자, 간혹 티브이, 그리고 주방과 화장실뿐이다. 가격은 1,500달러 전후. 하와이 물가 사정상 최저가대지만 환율을 곱하면? 200만 원이다. 20만 원이 아니라. 이 돈 주고 이 집에? 하는 생각에 발걸음을 돌린다.


둘째, 웬만한 집. 이제 원룸이라고 하기에는 뿌듯한 공간이 있는 집이다. 침대와 주방, 화장실 사이에 오갈만한 공간이 있다.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미국에서는 아파트라고 부름)에 가깝다. 위치나 방향도 나쁘지 않다. 저렴한 집에 비하면 가격대가 높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살 수 있겠다 싶다.


셋째, 쾌적한 집. 하와이에서 보기 드문, 지은 지 몇 년 안 된 신축 콘도다. 크기는 앞에 본 집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작기도 하지만 이곳에는 어메니티라는 것이 있다. 헬스장(gym), 수영장, 바비큐를 기본으로 자쿠지, 파티룸, 도서관, 테니스장 등 건물에 따라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이 있다. 월세만 내면 모두 이용 가능하다.


자, 당신의 선택은?




집을 구할 때마다 저렴한 집, 웬만한 집, 쾌적한 집을 두고 고민했다. 아니, 어쩌면 선택지가 별로 없어서 고민이 덜했는지도 모르겠다. 가격의 절대치를 보지 않고 가성비를 따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선택에서는 가성비를 최대한 높이는 묘수로 쾌적한 집의 주차장을 팔아 웬만한 집의 가격대로 만들었다.


바닷가와 쾌적함을 기준으로 선택한 주거지. 매일 아침 눈 뜨면 첫 번째 집에서는 산을 보며 두 번째 집에서는 바다를 보며 아침을 먹는다. 일찍 눈 뜬 날은 해 뜨는 바다를 보러 산책을 나간다. 5분이면 닿는다. 아침은 주로 운동을 한다. 점심을 만들어 먹고 오후에는 할 일을 한다. 5시~6시 사이에는 해지는 바다를 보러 다시 나간다.

  

와이키키에 살 때는 이용하는 마트와 헬스장이 알라모아나에 있어서 하루 평균 편도 30분, 왕복 1시간을 운동 삼아 걸어 다녔다. 카카아코에서는 마트가 코 앞에 있고 헬스장이 건물 안에 있기 때문에 해지는 바다를 보며 1시간 정도 산책이나 조깅을 한다.


여행 온 것이 아니라 살기 때문에 애써 찾아다니지 않지만 와이키키와 카카아코의 주거지는 핫플로 둘러 싸여있다. 맛집으로 검색되는 곳들이 바로 길 건너. 어떻게 거기 살면서 모르냐는 말도 들었다. 검색하다 스스로 놀란 적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맛집에 다니러 온 게 아니라 핫플이 만들어내고 핫플을 만들어 낸 그 공간에 살 뿐이다. 그곳의 라이프스타일을 맛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물가가 비싼 하와이에서 맛집을 찾아다니며 돈을 쓰기보다는 체류인으로서의 경험을 더 많이 하려고 한다. 그 경험에 대해서는 차차 풀어가겠다.




이 글은 하와이살이 1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와이에서 보고 들은 경험치를 꽉꽉 눌러 담은 견문록입니다. 언젠가 하와이에 한 번은 오실 분, 혹은 오지 못하실 누군가라도 하와이를 마음으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Hawai‘i Living

Short for one month, Long for one year


하와이살이

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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