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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zard Writer Feb 03. 2024

하와이에서 한국 생각이 왜 날까요?

[프롤로그] 하와이에서, 가끔은 조국 생각

"가끔은 조국을 걱정하며"


생애 최고의 명강의가 끝난 후 서명을 받으려고 내민 책에 써주신 덕담에 마음이 출렁거렸다. 대학원 시절 어느 강의 마지막 시간, 교과서의 저자를 초대한 특강이었다. 양복 윗저고리를 벗자 멜빵을 매고 계시던 훤칠한 노신사. 분명 한국 사람이 한국말을 하는데 서양 영화에서나 보던 멋쟁이 교수님이 겹쳐졌다. 강의안을 세 번 복습한 다음 미사에 들어가는 심정으로 강의실에 들어가신다는, '천하가 어지러운 것은 학자들이 공부를 안 한 탓'이라는, 1~2년짜리 연구 말고 10~20년 읽힐 명저를 내는 세계적 학자가 나와야 한국의 미래가 열린다고 하신 신복룡 교수님.


벌써 14년 전 일이다. 그때만 해도 '조국'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는데, 지금은 조국이라고 하면 아이들이 그 뜻이나 알지 모를 옛날 말처럼 들리는 건 기분 탓일까.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나라', '자기의 국적이 속하여 있는 나라'. 조국. 관련 전공 대학원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조국 걱정하라는 말씀은 못하시겠는지 가끔 걱정하라고 수위를 내려주신 그 덕담에 나는 현실이 바쁘더라도 이상을 외면하지 말라는 중용이 묻어나는 그 글귀를 마음에 새긴 것 같다.




하와이에 와서 한국 뉴스는 물론 현지 뉴스도 의식적으로 거의 보지 않으려고 한다. 그간 쌓인 노폐물을 다 빼고, 돌아가면 다시 쌓일 노폐물을 잘 처리할 수 있는 힘을 재충전해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사건으로 도배되는 뉴스는 되도록 멀리 하고 인간사의 고통에서 벗어난 정신적 청정 지대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가끔 보는 한국인 혹은 심지어 외국인을 통해서도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 소식을 듣고야 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내가 물리적으로 한국에서 떠나 있고 대화 상대가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의 이슈가 새롭고 다르게 조명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세상을 떠난 배우 소식. 한국 사람으로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안타까운 선택을 한 그의 삶에 애도를 표할 뿐 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중국어 선생님은 나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한국 연예인은 왜 그런 일이 생기면 자살을 하느냐고. 중국 사람은 연예계에서 퇴출을 당할 뿐 자살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일을 하거나 이민을 가면 되지 않냐는 것.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나 역시 다른 길은 생각해보지 않은 걸까.




하와이에서 뜬금없이 무슨 한국 생각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하와이는 한국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곳임을 여기 와서 알았다. 역사적으로는 120여 년 전 사탕수수 농장을 통해 한인의 미국 이주가 최초로 시작된 곳이다. 일본인, 중국인이 더 많지만 한인도 5만 명이상 살고 있고 불고기, 갈비, 김치 등이 레스토랑의 식재료와 메뉴 이름에 심심치 않게 나타난다. 소설과 영화로 알려진 <파친코>의 주인공처럼 미국에서 최초로 김치를 상업적으로 판매한 곳도 하와이. 한국인도 잘 모르는 '김치의 날'이 있는데, 한국인이 많이 사는 조지아와 엘에이 등에 이어 2023년 '김치의 날'을 지정했다. 현재 하와이주 부지사도 한국계 재미동포 여성이다.   


이런 이민 역사는 물론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아시아와 아메리카의 중간 지점으로 미국의 (인도) 태평양사령부가 있고 육해공군, 해병, 해안경비대, 우주군까지 있는 군사적 요충지이다. 와이키키와 호놀룰루로 알려진 오하우 섬은 제주도와 크기가 비슷한데 인구는 30만 명가량 더 많다. 주둔 군인의 숫자와 비슷하다. 여기서 만나는 군인 중에는 미국 서부에 있는 국방외국어대학의 6개월 집중코스를 통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엘리트 병사와 장교가 많다. 한국 그리고 북한에 대한 관심과 질문을 받을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




그러고 보면 하와이에서 지내는 동안, 한국은 어떨까? 한국은 왜 이럴까? 우리도 이러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종종 있다. 국어사전에서 '생각'이란 '사물을 헤아리고 판단하는 작용', '어떤 사람이나 일 따위에 대한 기억',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상상해 봄', '어떤 일에 대한 의견이나 느낌을 가짐' 등을 말한다. 우리의 분단 역사보다도 짧은 불과 65년 전에 미합중국에 가입한 이곳. 여전히 로컬의 저항 운동이 사회 곳곳에 존재하지만 사회 갈등 통합에 핵심적인 다양성 수용과 공존이 높이 평가되는 곳. 이곳에서 가끔은 조국 생각을 해봄 직 하지 않은가.  




  


Reflecting on Home:

Contemplations from Hawai'i.  

하와이에서 쓰는 조국 이야기.

<국토환경 편>, <인생사 편>, <사회문제 편>에 걸쳐 12가지 에피소드를 통해 조국 생각을 풀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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