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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zard Writer Jan 06. 2024

상쾌한 여름, 청량한 겨울

I. 정착기 - 1) 하와이를 하와이 답게 만드는 것

하와이. 너무 식상한 이름인가. 들으면 설레고, 가면 좋지만, 너무 많이 들어 익숙한 제주도처럼? 그렇다면 Hawai'i. 이건 어떤가? 하와이어 철자에는 따옴표처럼 생긴 아포스트로피(')가 들어가고, 이는 숨을 한 번 끊어 읽으라는 뜻. 그러니 우리가 아는 하와이는 사실 '하와이-이'가 된다. 이름조차 잘 모르니 이만하면 하와이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게 얼마나 많은지 인정하기 충분할 것이다.


하와이에 관해서는 여행 정보 책자도 많고 한 달 살기 등의 에세이나 전문적인 견문록도 더러 있다. 하지만 내가 하와이에 올 때 정말로 궁금한 것은 그곳에 사는 삶이 어떠 한가였는데, '하와이살이(Hawaii Living)"에 대한 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정보가 있더라도 에세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기 어려웠다. 나는 일주일이나 한 달을 보내는 게 아니라 적어도 일 년을 살 터였기 때문이다.


하와이에서 만난 원어민 친구들과 '하와이살이'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OO 살이, 영어로 OO living이라고 하는 것은 조금은 특별한 곳, 누구나 한 번쯤 살아보고 싶어 하는 공간에 붙인다는 것이다. 시골살이, 제주살이, New York living, Hawaii living 등이 되겠다. 이런 공간에서 일 년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기회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주로 신혼여행, 종종 어학연수, 가끔 가족여행이나 골프여행 등으로 하와이를 찾을 한국인에게 도움이 될, 그리고 소중한 나의 일 년을 오래 추억할 수 있는 하와이 견문록을 써보기로 했다.  




하와이를 목적지로 선택하는 이유는 바로 "날씨" 때문일 것이다. 한국인이나 외국인이나 하와이로 이주해서 정착한 사람 중 내가 만난 대부분이 그랬다. 신혼여행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여행인 경우도 그렇다. 부모님의 환갑이나 칠순 등 기념일을 맞아 대가족이 움직일 때, 할 거리는 날씨에 좌우된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더우면 활동에 제약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내 경우도 마찬가지다. 일 년간 유럽살이를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그 스산한 겨울을 떠올리니 온몸이 으스스해졌다.


하와이에 살면서 줄곧 생각한 것은 무엇이 하와이를 하와이답게 만드는 가였다. 20년 전 하와이의 다른 섬에 살았을 때 미국 본토에서 온 친구들이 말했다. 이곳은 하와이지 미국이 아니라고. 내가 느끼는 알로하 스피릿은 미국의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 알로하 바이브는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고 앞으로도 조각조각 풀어갈 테지만 기본은 날씨임에 틀림없다. 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목마름, 졸음 등 본능에 무차별적으로 취약한 나라는 사람은 이 점을 더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자, 아침에 눈을 떴는데 불쾌함이 전혀 없다.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다. 오늘만? 아니, 매일이 그렇다.


물론 하와이에도 계절의 차이가 있기는 하다. 크게는 건기(4~10월)와 우기(11~3월)로 나뉘고 일출과 일몰을 보면 신기하게도 6월 경을 기점으로 시간이 당겨졌다 늦춰졌다 한다. 마치 밀물과 썰물처럼. 잠시 지내면 늘 여름인 것 같지만, 그 안에서 더운 시절과 추운 시절이 있다.


내가 하와이에 도착한 4월은 우기의 끝자락에서 건기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분명 여름인데 잘 때는 추워서 이불을 더 사야 했다. 그러다가 점점 더워지더니 11월부터는 다시 잠잘 때 추워서 옷을 꺼내 입었다. 그동안 비라고 해봐야 샤워기 물 뿌리듯 흩날리다가 바람에 밀려 구름이 이동하면 30분 내로 그치곤 했다. 그런데 12월에는 하와이에 온 지 8개월 만에 처음으로 우산을 꺼냈다. 줄곧 비가 내린 것은 아니지만 이삼일 연속으로 흐린 하늘을 본 건 처음이었다. 이것은 오아후라는 섬의 호놀룰루라는 도시만의 경험이기는 하지만.




요컨대, 하와이를 하와이답게 만드는 것은 팔 할이 날씨다. 여름은 상쾌하고 겨울은 청량한 곳. 옷이 몸에 달라붙는 끈적한 습도가 없고 자라목을 만드는 추위가 없다. 본능적인 취약함으로 인해 짜증이 올라오거나 눈에 핏발 설 일이 적다는 뜻이다. 이 날씨가 소위 '알로하'로 알려진 스피릿,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는 마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마음,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돌봐주려는 마음의 토대가 되는 게 아닐까.


물론, 이 날씨로 인해 미국 본토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노숙인 - 말 그대로 homeless, 집이 없다 뿐이지 다 구걸을 하는 거지는 아닌 - 도 많아지기는 했지만.





이 글은 하와이살이 1년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와이에서 보고 들은 경험치를 꽉꽉 눌러 담은 견문록입니다. 언젠가 하와이에 한 번은 오실 분, 혹은 오지 못하실 누군가라도 하와이를 마음으로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Hawai‘i Living

Short for one month, Long for one year


하와이살이

한 달은 짧고 일 년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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