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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왓섭브로 Jul 03. 2023

10년이 지나도 태국을 잊을 수 없는 이유

정신없이 짐을 챙겼다. 이내 공항에서 빠져나왔다. 곧바로 숙소로 향하는 차에 탔다. 내 자리는 뒤쪽이 뚫려 있는 트렁크였다.


이제야 숨을 돌렸다. 어두컴컴한 한밤 중에, 태국이라는 나라에 도착하다니!! 나갔던 정신이 들어온 듯, 그제서야 나는 함께 있던 일행의 얼굴을 살폈다. 아빠, 어른들, 형, 누나들. 함께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두렵고 연약한 막내의 마음은 이내 진정이 되었다. 나돌아다니던 내 정신이 바로잡힌 순간이었다. 14살 꼬맹이였던 내게는, 조금 벅찼던 모양이다.


인원 확인이 끝나자, 곧바로 차가 출발했다. 도로를 달리며 덜컹거리는 차 안, 뒤를 돌아보았다. 점점 멀어지고 있는 공항. 그리고 한 사람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공항 외곽, 도로에 누워있는.


노숙자였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어두워 잘 보이지 않는 와중에도, 그의 뒷모습만큼은 선명히 보였다. 공항 밖을 나와 마주한, 처음 본 태국 현지인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차는 계속해서 달려,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한 시간은 새벽. 다음 일정을 위해, 우리는 잠깐 눈 붙일 수 있었다. 숙소 안, 이불 없이 맨바닥에 누웠다.


낯선 환경, 딱딱한 바닥. 매일 포근한 이불 덮고, 푹신한 침대에서 자던 나. 맨바닥에선 도저히 잠이 오지 않나보다. 피곤해 곯아떨어질 만 한데도, 지쳐서 잠들기 전까진 조금 시간이 걸렸다.


으윽, 정말 불편했다. 조금이라도 편한 자세를 찾으려고, 몇 번은 뒤척였다. 아마 좀 더 체력이 있었더라면, 아빠한테 불평하지 않았을까. 아까 봤던 그 뒷모습은 잊은 채로 말이다.


그는 나보다 더 춥고 딱딱한, 도로 위 길바닥에서 잠을 청했을 것이다. 물론 당시 내겐, 안중에도 없었던 사실이다. 당장 내가 힘드니까. 끝내 나는 그를 외면하고, 눈을 감으며, 잠에 들었다. 그렇게 태국에서의 첫 일정을 마쳤다.


10년 전, 어렴풋한 이 기억 속에서도, 태국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뚜렷하게 떠오르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한밤중 길바닥에 누워있던 그 노숙자다. 내가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한 건, 어쩌면 봉사를 하러 갔음에도, 정작 도움이 절실한 그에겐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해서일까.


그렇다면 10년이 지난 지금, 난 남을 도우며 살고 있을까? 지인이 아니라, 생판 모르는 ‘남’말이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거리에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종종 보곤 한다. 자리를 잡고 앉아계신 노숙자, 수레를 끌고 종이를 모으시는 노인 분들.. 속으로 온갖 핑계를 대며, 여태껏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쳤다. 뒤돌아선다. 쉬우니까. 잊는다. 당장은 그게 편하니까. 하지만 막상 마음은 또 불편하다.


불편한 감정이 들긴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엔, 돌아서면 그만이니까. 그리고는 이내 머릿속에서, 이런 생각이 든다. ‘해외 봉사는 여러 번 다녀놓고, 정작 거리에서 마주친 사람에겐, 작은 도움 하나 건네지 못하다니. 이게 웬 모순이란 말인가?’ 이렇게 내 양심이 만족할만한 위선적인 물음을 던지고는, 이내 다시 그들을 잊고, 내 삶을 살아간다.


참나, 삶이라는 녀석은, 자기가 태국에서 내가 탔던 트럭인 줄 아나보다. 멈추지도 않고, 날 트렁크에 태운 채로, 계속해서 달려간다.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내 삶은, 쫓아가고 움켜쥐기도 바빠, 남을 돕기 어렵게 만든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가든, 나 또한 ‘남’이라는 이름을 가진, 내가 모르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이렇게 살아있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엔 반박할 수 없다.


그러니 이제라도 가끔은, 삶이란 트럭을 잠시 멈춰 세우고, 트렁크에서 내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건네고 싶다. 그것이 아직도 10년 전 태국에서, 그를 돕지 못해 죄책감을 느낀 내 안의 꼬맹이를 달래며, 그동안 내가 받은 도움과 은혜에 보답하는 방식이라 믿는다. 쉽지는 않지만, 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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