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한 피난처를 짓는 사람
올해부터 나는 급식 대신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아이들을 인솔해 급식실로 향하고, 밥을 챙기고, 식사 지도를 하는 그 모든 과정이 하나의 전투처럼 느껴졌다. 쫓기듯 밥을 입에 밀어 넣고 나면 오후 내내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작은 도피처, 혹은 최소한의 숨 쉴 틈이 절실했다.
다행히 도시락 메이트가 있었다. 미술 교사인 소희(가명) 샘이다. 우리는 시간이 맞으면 교무실 한편에서 함께 도시락을 열었다. 선생님이 건네는 과일 조각이나 "이안샘, 요즘 바쁘시죠? 이거 먹고 힘내요!"라며 챙겨주는 후식은, 그 어떤 말보다 다정한 위로였다. 어쩌면 선생님은 올해, 내가 가장 절실하게 기댔던 '믿을 구석'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별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었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내게, 교사로서의 책임과 개인 작업을 열정적으로 병행하는 선생님의 존재는 그 자체로 귀감이 되었다. 예술과 삶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지닌 선생님이 담담하게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그 어떤 화려한 조언보다 큰 힘이 되었다.
올해 6월, 나는 서울 국제 도서전을 찾았다. 솔직히 말해 그곳은 도피처였다. 매일 아이들 앞에 서는 일상의 어려움에, 채 가시지 않은 이별의 잔상까지 겹쳐 있었다. 텅 빈 마음에 뭐라도 채워 넣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고, 어떻게든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며 그 모든 생각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소음과 군중 속이면 내 마음의 빈자리가 덜 도드라질 것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도서전 티켓을 예약했다.
"이안샘, 도서전 가요? 나도 대학생 때 알랭 드 보통 온다길래 갔었는데."
내 이야기를 들은 소희샘은 자신의 대학 시절을 추억했고, 우리는 자연스레 알랭 드 보통의 책들에 대해 한참이나 즐거운 대화를 나눴다.
"혹시 도서전 가면, 예쁜 키링 있으면 하나 부탁드려도 될까요?”
선생님의 작은 부탁이, 나에겐 그날의 가장 큰 목적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정작 나를 위한 책은 한 권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선생님의 선물을 고르는 동안에는 오롯이 그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기념품 가판대를 서성이며 이 색이면 샘이 웃으실까, 이 크기는 가방에 걸기 좋을까를 계산했다. 결국 다채로운 색감의 미니북 키링을 골라 작은 쪽지를 붙여 건넸다. '샘과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누군가를 위한 선물을 고르는 행위가 때론 나 자신을 구원하기도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그렇게 위태롭던 여름이 지나가고, 2학기가 되었다.
선선한 바람이 교실을 드나들던 어느 날, 내 자리에는 작은 선물과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이안샘~공예 비엔날레에서 키링 하나 사 왔어요. 더몬이라는 친구인데, 걱정을 대신 먹어서 없애준대요. ㅎㅎ 힘든 일이나 나쁜 감정은 얘한테 다 줘 버리시고 매일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심장이 덜컥, 하고 내려앉았다. 고작 키링 하나의 무게가 아니었다. 내가 흘려보낸 작은 다정함이, 2025년 청주공예비엔날레의 주제였던 ‘세상 짓기(Re-Crafting Tomorrow)’라는 거대한 이름을 등에 업고 내게 돌아온 것이다. 걱정을 먹는 친구라니. 선생님은 내게 키링이 아니라, 나의 힘듦을 기꺼이 함께 나눠지겠다는 가장 따뜻한 응답을 선물한 것이었다.
그 쪽지는 11월 1일, 나를 청주로 이끄는 가장 완벽한 초대장이 되었다. 생애 첫 비엔날레, 생애 첫 도슨트 관람이었다. 소희샘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곳에 갈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혼자 보았다면 그저 '독특하네', '예쁘다'로 그쳤을 작품에, 도슨트의 해설은 시간과 철학을 입혔다. 어떤 작품은 스쳐 지나가기엔 간단해 보였지만 10년의 결과물이었고, 어떤 작품은 억겁의 시간이 필요해 보였지만 의외로 금방 작업한 것이기도 했다.
그날의 메모장에 이렇게 적었다.
... 한 사람의 1분 남짓한 시선 뒤에는 수만 시간의 고독과 고뇌가 있고, 그 고뇌를 인문학 언어로 풀어내는 도슨트의 목소리와, 그 목소리에 응답하는 관객의 마음이 모여야 비로소 ‘예술’이 완성된다.
전시를 나서자, 하늘은 맑았고 거리의 모든 것이 낯설 만큼 평화로웠다. 아이의 손을 잡은 부모와, 서로를 부축하듯 걷는 노부부, 지나가는 이들의 걸음걸이까지도 어느새 한 폭의 장면처럼 보였다. 주머니에 매달린 더몬이 키링을 손가락으로 만지며, 나도 작은 선물을 하나 샀다. 전시에서 받은 따스함을 누군가에게 건네고 싶어서였다.
돌아오는 길, 작은 상상을 해보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다정함이 실제로 작업이 된다면 어떨까? 누군가의 하루를 견딜 수 있게 하는 순간들이 모여, 저마다의 작은 건축물을 쌓아 올리는 일, 비엔날레의 제목처럼 '세상을 짓는' 작업 말이다. 소희 샘의 키링 더몬이는 나의 걱정을 대신 먹겠다고 했지만, 그 키링이 내게 준 건 걱정 없는 날이 아니었다. 오히려 걱정을 담아두고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며칠 뒤, 학교 복도에서 한 아이와 마주쳤다. 피곤해서 자느라 점심을 못 먹었다며 배고프다고 하소연하길래, 조용히 교무실 옆 작은 상담실에 데려가 컵라면을 끓여주었다. 허겁지겁 먹는 아이의 얼굴을 보며, 알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는 걸 느꼈다. 다정함은 위로에서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누군가의 하루를 바꾸고, 때로는 누군가를 전시장으로 데려가며, 결국은 새로운 작은 세계를 세우는 초대장이 된다.
'오늘도 다정하게 살아남기'는 그런 일이다. 누군가의 하루를 견딜 수 있게끔 손을 내미는 일. 받은 다정함을 조금 덜 움켜쥐고, 손을 내밀어 다른 사람의 오늘을 지어주는 일이다. 나는 아직 지어가는 집 안에서, 더 많은 작은 다정함을 골라 담고 싶다. 언젠가 그 집이 누군가의 피난처가 되기를, 조용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