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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모 Sep 21. 2024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더 정확하게는, 내가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

처음부터 글 쓰는 걸 좋아했던 건 아니다. 

그렇지만 백지 같이 아득한 세상 속에서 내가 탈출할 수 있는 곳은 글자였다. 때로는 잠시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으려, 때로는 날 압도하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펜을 들었고, 노트북을 켰다. 그리고 빠르게 글을 써내려 갔다. 많은 경우 글을 갈겼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생각이 휘발되는 것이 아까워서 글로 최대한 많이 그 순간의 나를 기록하고 싶었다. 도피처로 찾았던 글쓰기는 글을 쓰고 있는 나와 글로 표현된 나를 분리하여 내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마치 거울처럼,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글쓰기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외로움을 느낄 때에 감정에 잠식되지 않고 더 넓은 세상을 보게 해 준 것이 글쓰기였다. 혼자 여행할 때는 글 속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욱 길어졌고, 글이 가진 힘을 동경하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나도 모르는 나를 발견하거나, 끝없는 고민의 실마리를 찾거나, 행복한 순간을 영원히 가두었다. 파리에서 밀라노로 가는 야간 버스 안에서도 핸드폰 메모장을 켰다. 앞으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고민하던 찰나였고, 여행하는 동안 들었던 생각 덩어리들을 얼른 정리하고 싶었다. 토로하듯이 시작한 글은 언제나처럼 길을 보여줬다. 그때 나는 평생 글을 쓰며 살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정제된 단어 하나하나를 내뱉는 글 속의 내가 좋았다. 글이라는 세상 속에서 살고 싶었다. 


‘기꺼이 모험’. 

몇 년 전 잠 안 드는 밤에 침대에 가만히 누워 떠올린 나만의 어구이다. 내가 살아온 방식, 지향하는 삶의 색을 함축하여 보여주는 단 다섯 글자가 마음에 쏙 들었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여 기꺼이, 매 순간을 모험하듯이 도전하고 새로운 세상에 나를 넣어보리라는 삶. 메신저의 상태메시지로 등록해 두었더니 어느 날, 한 친구가 그 말이 마음에 든다면서 인용해도 되는지 물어왔다. 나의 단어들이 다른 이에게 ‘인용’될 수 있다니! 그 뒤로는 그런 친구가 없었지만 그 순간은 나만의 표현이 처음으로 인정받았던 짜릿함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미사여구 없이, 어려운 말 없이, 생각을 담은 ‘시처럼 읽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뻔하지 않지만 쉽게 읽히는 글을 쓰리라는 목표가 생겼다. 


그렇다면 무엇을 모험하면 좋을까? 

내가 오랫동안 가졌던 꿈은 세상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이 방향성은 내가 ‘어떤 영향’을 가질지 끝없이 고민케 했다. 치열한 고민 끝에, 나는 세상과 예술의 접점을 탐구하겠노라, 다짐했다. 얼마 전 서점에서 만난 헤르만 헤세의 글귀를 빌리자면, 예술가란 ‘삶을 살아가면서 스스로 성장하는 사람들, 자기가 쓰는 힘의 근원을 알고 그 위에 자신만의 고유한 법칙을 쌓아 올리는 것을 꼭 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다. 헤르만 헤세 덕분에 나 또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 나의 예술은 호기심 가득한 시선 끝에, 정제되었으나 쉬운 글을 쓰려는 연필 촉 끝에 있다. 그리하여 나는 한 명의 예술가로서, 예술가들을 만나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 그리고 예술이라는 낭만이 없거나 결핍된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세상은 생각보다 넓다는 것을. 그렇게 나는 기꺼이, 세상과 예술의 접점을 모험하고자 또 한 번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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