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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병철 Jan 12. 2024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를 읽고....  


이윤기 작가가 그동안 출간한 그리스로마신화 5권을 합본한 버전을 접하게 되었다.

두께가 자그마치 1,200쪽에 이르는 종합본인데 완독을 하고나니 뿌듯함이 절로 우러나오는 것이 그간 내가 관심을 가져왔던 그리스로마신화에 대한 전체적인 가닥이 더욱 공고히 잡히는 것 같아 마음이 상쾌하다.

허나 에필로그에 서술된 내용을 보고 심히 안타까운 맘을 금할 길이 없었는데, 내용인즉 이윤기 작가님는 2010년 별세하셨고 동 합본 판은 이작가의 따님이 결속하여 2020년 인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내용상 중복되는 부분이 제법 많고 같은 필체의 문단들이 자주 눈에 띄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신화 연구에 몰두하신 작가님의 땀과 열정과 혼을 느낄 수 있어 소장용으로 권하고 싶은 작품이다.


지난 9월 장장 6일간의 추석 연휴를 기해 짤막한 詩를 하나 지었던 적이 있다.

유난히도 더웠고 비도 무척 많이 내렸던 여름을 보내며 썼던 글이다.


이제 때가 되었노라

눈가의 이슬마저 깡그리 말려버린

뜨겁던 파에톤의 심술을 이겨낸 들판의 황금물결

억수같이 퍼붓는 틀랄록의 분노를 넘어선 그대들


이제 때가 왔노라

경건히 두 손 모아

천지신명께 그대의 성물을 바치고자 하니

판테온에 계신 모든 신들이여

우리의 경배를 축원하소서

가정의 평화와 마음의 고요

사랑의 완성으로 우리 삶에 의미를 부여하소서


상기에 언급된 파에톤이 누구이던가?

그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아들이다.

파에톤에 관한 신화는 다음과 같다.

태양신 헬리오스가 아이귑토스(오늘날 이집트)에 사는 클뤼메네라는 여자를 사랑한 적이 있다. 태양신 헬리오스가 다녀간 뒤에 클뤼메네는 메로프스라는 사람과 혼인을 한다. 10개월도 되지 않은 채 아들을 출산하게 된 클뤼메네는 메로프스에게 태양신 헬리오스와의 관계를 고백하고, 메로프스는 아들에게 파에톤(빛나는 자라는 뜻) 이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장성하게 된 파에톤은 자신의 이름으로 주변의 놀림을 계속 받게 되자 어머니 클뤼메네에게 따져 묻는데, 이에 클뤼메네는 출생의 비밀을 알려준다. 그리고 파에톤은 자신의 친아버지 헬리오스를 찾아 해가 뜨는 동쪽으로 정처 없이 떠나게 되고 오랜 방랑의 세월이 지나지만 결국 헬리오스가 있는 태양신의 궁전에 도착을 한다.

파에톤이 아들임을 한 눈에 알아 본 헬리오스는 파에톤에게 한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노라 말한다. 심지어 스틱스 강에 걸고 약속을 하는데, 스틱스 강을 걸고 맹세한 약속은 어떠한 신이라도 이를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묵계가 있으며 이를 어길 시에는 신이라 할지라도 약 100년간의 고통을 견뎌야만 하는 것이다.

이에, 파에톤은 헬리오스가 매일 모는 태양 마차를 하루만이라도 빌려달라고 한다. 날개 달린 네 마리의 말이 매일같이 동에서 서로 운행하는 태양 마차는 일출과 일몰을 의미한다.

이에 헬리오스는 난색을 표하지만 이미 스틱스 강에 약속을 하였기에 달리 도리가 없었고 그간 아비 없이 자란 파에톤의 서러움에 보상을 해주고자 헬리오스는 단단히 주의를 주고 태양 마차를 운행하도록 허락한다.

아들을 위하는 헬리오스의 당부가 재미있고 당시 그리스인들이 천체의 구성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하늘에는 권역이 없는 것 같지만 엄연하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 하늘에는 다섯 권역이 있다. 자세히 보면 세 권역이 경계선 안으로 조금 휘어진 샛길이 있다. 이 길로 들어서면 남극 권역과 북극 권역을 피해갈 수가 있다. 마차의 바퀴자국이 보일게다. 하늘과 땅에 고루 따뜻한 빛을 나누어주려면 너무 높게 몰아서도 안 되고 너무 낮게 몰아서도 안 된다. 너무 높게 몰면 덮개에 불이 옮겨 붙을 것이고, 너무 낮게 몰면 대지가 그을리고 만다. 그 중간이 가장 안전하니 명심하여라.

혹 내 말을 듣고 네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느냐? 변했거든 천마의 고삐를 놓고 내 말을 따르거라. 네가 이 위험한 일을 해보겠다고 우기기는 한다만, 대지에 빛을 나누어주는 일은 나에게 맡기고 너는 그 빛을 누리기나 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

   

그러나 파에톤은 제 젊음과 힘만 믿고는 태양 마차 위로 올라가 벅찬 가슴으로 고삐를 받았다. 평소와 달리 무게가 가벼워진 마차를 느낀 천마들은 하늘을 누비며 흡사 빈 마차처럼 흔들렸다. 이렇게 되자 잘 알고 있던 궤도까지 이탈하여 제멋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마부석에 앉은 파에톤은 기겁을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고삐를 잡도리할 재간이 없었고, 어디가 어디인지 위치 분간도 되지 않았다. 마침내 파에톤은 아득히 높은 하늘에서 대지를, 아득히 먼 하계에 펼쳐진 대지를 보고 말았다. 그 순간 파에톤은 자기가 얼마나 높은 곳을 달리고 있는지 깨달았다. 결국 기겁을 한 파에톤은 고삐를 놓치고 말았고, 그의 손아귀를 벗어난 고삐는 천마의 잔등을 때렸다. 이것을 채찍질로 여긴 천마는 또 한 번 궤도를 벗어나 질풍같이 내달았다. 높디높은 하늘 덮개에 박힌 별자리 쪽으로 가는가 하면, 길도 없는 곳으로 태양 마차를 끌고 가기도 했다. 하늘 덮개에 닿을 듯이 솟구치는가 하면, 갑자기 대지의 사면에 닿을 만큼 고도를 뚝 떨어뜨리기도 했다. 대지는 높은 곳부터 불길에 휩싸였다. 습기가 마르자 대지가 여기저기 갈라지기 시작했다. 나무, 풀 같은 것들은 순식간에 재로 변했고, 다 익은 곡식은 대지의 파멸을 재촉하는 거대한 산불의 불쏘시개 같았다.

파에톤은 불바다가 된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뜨거운 연기로 주위가 칠흑 어둠이라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일 길이 없었다. 발 빠른 천마가 끄는 대로 끌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날 에티오피아로 불리는 아이티오페이아 사람들의 피부가 새까맣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신들의 지배자인 제우스 신은 자기가 손을 쓰지 않으면 천지만물이 비참한 지경에 이를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서둘러 신들의 회의를 소집했다. 결국 헤파이스토스가 새로운 태양마차를 만들기로 하고, 제우스는 자신의 벼락으로 태양 마차를 없애고자 한다. 벼락 하나에 파에톤은 마차를 그리고 이승을 하직하게 된다.

파에톤의 애처로운 죽음을 슬퍼하던 형제들 중 다섯 자매가 갑자기 나무로 변신하기 시작했고, 이들의 나무껍질에서 수액 대신 눈물이 흘러 나와 태양빛에 굳으면서 호박 구슬이 되어 가지에서 강물로 떨어졌다. 뒷날 로마 부인네들의 장신구가 된 호박 구슬이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현대 심리학 용어 중에 파에톤 콤플렉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바로 이 파에톤 신화에서 나온 말로 어린 시절 겪은 애정 결핍에 의해 지나치게 타인(또는 부모)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강박증을 의미한다(출처: 파에톤 콤플렉스-‘인정투쟁<recognition struggle>’/작성자 박형근).


다시 상기에 언급한 시로 돌아와서 ‘파에톤의 심술’이라 표현하였지만, 지난 여름 폭염이 마치 파에톤의 서투름과 젊은 객기로 인한 태양마차의 미친 질주처럼 느껴졌다는 것이다.

틀랄록(Tlaloc)은 멕시코 아즈테카 족이 섬기던 비의 신인데 무언가에 격노한 것 마냥 거침없이 비를 뿌려대던 지난 장마를 표현한 것이다.


파에톤처럼 하늘을 날다 추락한 또 다른 인물이 있는데 바로 “이카루스의 날개”에 나오는 이카루스이다.

이에 대한 얘기는 이카루스가 밀랍 날개로 높이 날다가 녹아 떨어졌다는 식의 단순한 내용보다 이카루스의 등장 배경과 실제 그리스 역사 및 제우스 신의 족보(?)를 따져가며 전반적인 사항을 훑어보고자 한다.


먼저, 제우스와 에우로페(Europe)의 사랑 이야기로부터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에우로페라는 아리따운 여인에게 맘을 뺏긴 제우스는 탐스런 황소로 변신하여 에우로페의 이목을 끈다. 그리고 갑자기 에우로페를 등에 태운 채로 온 유럽 땅을 다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그리스 남부에 있는 크레타섬에 상륙을 하게 된다. 당시 제우스가 에우로페와 돌아다닌 지역을 현재 우린 유럽(Europe)이라 부르는데 바로 에우로페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다.

제우스는 크레타섬에 도착하여 에우로페와 사랑을 맺게 되고 여기에서 태어난 아들이 후일 미노스왕이 된다. 실제 역사적으로도 크레타섬에서 발현한 미노스 문명이 전 그리스 반도를 지배하게 되는데 후에 반도에서 성장한 미케네 문명에 복속하기까지 미노스 문명의 세력은 절대적이었다.


에우로페의 아들 미노스는 다른 형제들과의 왕위 쟁탈전에서 포세이돈에게 기도하기를 황소 한 마리를 크레타 섬으로 보내주시면 왕이 되는 날 그 황소를 제물로 삼아 포세이돈 신을 섬기겠다고 한다. 이를 어여삐 여긴 포세이돈은 황소를 보내줌과 동시에 미노스가 왕위에 오르게끔 도와준다. 막상 왕이 되자 미노스는 그 멋들어진 황소를 대신하여 다른 소를 잡아 제물로 올리게 되는데 이는 당연히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게 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포세이돈의 첫 번째 저주는 미노스의 아내 파시파에에게로 향하게 되는데, 파시파에는 포세이돈 이전에 바다를 다스리던 오케아노스의 딸로서 에우로페의 아들인 미노스에 대적할 만한 명문가의 자손이다.

파시파에는 아주 정상적으로 아리아드네라는 딸을 비롯한 여러 자식도 낳았고 딱히 이상 행동을 보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포세이돈의 그 황소가 그녀의 눈에 매우 매력적인 존재로 다가오게 되었고, 그 황소의 우람한 근육에 눈이 멀어 상사병에 빠질 지경이 되어버렸다.

황소에 대한 욕정을 참을 길이 없던 파시파에는 크레타섬 최고의 손 재주꾼 다이달로스(땅위의 헤파이스토스라 불리는)를 불러 간청하기를 황소를 유인할 암소의 형상을 만들어 달라고 한다. 나무로 만든 암소의 형상에 비집고 들어간 파시파에는 결국 그 황소를 유인하여 관계를 맺게 되고, 이 때 잉태하여 태어난 존재가 미노타우로스(미노스의 소라는 뜻)인데 머리는 황소 머리, 몸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난 해괴한 생명체가 만들어 진다. 그리고 이 미노타우로스는 그 모양 값을 하는지 먹는 것도 사람 고기 아니면 입에 대지 않았다.

이런 황당한 일을 당한 미노스왕은 이 미노타우로스를 궁전 안에다 두되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파시파에의 나무 소를 만들었던 명장 다이달로스를 불러 명령을 내린다.

“미궁을 만들어라. 들어가면 신들도 나오기 힘든 미궁, 만든 너도 나올 수 없는 미궁, 미노타우로스나 인간은 절대 나올 수 없는 미궁을 만들어야 한다. 만약에 미궁에서 살아 나오는 인간이 있으면 너와 네 아들 이카루스를 여기에 가둘 테니 그리 알라.”


다이달로스는 미노스왕의 명을 받들어 복잡하게 꼬부라지는 복도에 수백 개의 방이 딸려 있는 미궁을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크레타의 미궁(labyrinthos, labyrinth)이다.

미궁에 갇힌 미노타우로스에게는 그리스 본토에 있는 도시 국가들로부터 사람을 조공으로 받아 먹이로 바치게 되었고, 아테네의 왕자인 테세우스는 미노타우로스를 없애고자 조공인 양 위장하여 미궁으로 들어가게 된다.

미노스왕의 딸 아리아드네는 테세우스의 남자다움에 반하게 되었고, 그녀는 꾀를 내어 미궁에 들어가는 테세우스에게 실타래를 만들어 건네준다. 미노타우로스를 없앤 테세우스는 들어갈 때 풀어 놓은 실을 따라 되돌아옴으로써 미궁을 탈출하게 되고, 자신을 도와준 아리아드네와 함께 크레타섬을 벗어나게 된다. 아리아드네의 실타래라는 말(주로 너무나 어려워서 해결할 방법이 없는 일을 해결해주는 물건 혹은 방법)이 여기서 유래가 된다.

테세우스의 탈출에 화가 난 미노스왕은 그의 말대로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루스를 미궁에 가두게 되는데, 아리아드네의 실타래 경우처럼 도움을 줄 조력자가 없는 상태에 처한 다이달로스는 직접 밀랍으로 날개를 만들어 공중으로 부상하여 탈출을 하고자 시도한다.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에게 먼저 날개를 타고 탈출하도록 하는데, 밀랍 날개의 도움으로 하늘을 나는데 신이 난 나머지, 이카루스는 내친 김에 태양에까지 다가가겠다고 허세를 부리다가 태양열에 밀랍 날개가 녹아들고 그는 결국 추락하여 죽음에 이르게 된다. 이는 인간의 오만에 대한 경고의 의미로 이카루스가 소환되는 이유이다.


실제 그리스 역사를 보면 크레타섬에서 발현한 미노스 문명이 최초이자 그리스 본토에까지 진출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리스 본토의 미케네 문명으로 패권이 넘어가게 된다. 미노스 문명과 미케네 문명이 바로 헬레니즘의 골격을 이루는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미케네라고 하면 아가멤논왕이 떠오르고 이는 바로 트로이의 목마로 유명한 트로이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자연스레 다음 얘기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되리라.


그리스로마 신화를 대할 때마다 우리는 이를 오래된 옛이야기 마냥 전설에 가까운 얘기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당시 그리스로마 신화는 신화가 아니라 종교였고 이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영혼에 영감과 가르침과 내세관을 심어준 사상이었다. 단적인 예로, 로마인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이지만, 율리우스 시저의 경우 그의 첫 정치적 입문을 위해서 그의 어머니는 그를 대제사장의 자리에 앉힘으로써 그의 정치적 행보에 새로운 길을 열어 주고자 했다. 종교적 기반을 발판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지고자 했던 것이다. 기원전 100년이란 시기에 예수의 존재는 있지도 않았고 당시 로마는 기독교란 종교가 존재하는지 조차도 염두에 두질 않았다.

그리스로마 신화를 종교로서 대할 때 그의 가치는 더욱 빛날 수밖에 없으리라. 게다가 굳이 그의 자리를 현존하는 종교로써 메우려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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