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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넬로페 Aug 02. 2023

E SENS - 저금통 앨범 리뷰

최근에는 앨범이 풍년이다. 덕분에 써야 할 글이 밀리기 시작했다. 평론가이기 이전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먼저 출시된 음악을 충분히 즐기기 이전에 또 좋은 음악이 나와버리면 들을게 넘치게 된다. 마치 주말에 누워서 세일 기간에 잔뜩 쓸어 담은 게임 목록을 찬찬히 보고 있는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유독 빛나는 앨범은 있기 마련이다. 힌트를 주자면 힙합이다. 힌트를 듣기만 해도 알만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이센스의 정규 3집 저금통에 대한 이야기다.



빈지노의 앨범 <NOWITZKI> 리뷰에서 말했던 것을 떠올려보자, 국힙원탑이 누구냐는 질문에 과연 어떤 사람의 이름이 거론될까? 빈지노도 틀림없이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이센스도 언급되어야 마땅한 사람인 것임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센스는 국내 최정상 래퍼로써 한 번도 커리어에서 구린 랩을 뱉은 적이 없으며, 트렌드와도 섞이지 않고 자신의 길을 완고히 닦으며 랩 게임, 그리고 래퍼 간의 서열 그 바깥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탄탄하게 다지며 커리어를 이어왔다. 


그런 이센스의 정규 3집인 <저금통>은 제목답게 돈에 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센스답게 돈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을 풀어나가는 것이 주가 되는 앨범이다. 힙합 하면 연상되는 흔한 머니 스웩이 아닌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 한 발자국 나아가 이것은 돈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대한 이센스의 인생 스탠스로 확장해 이해할 수도 있다. 돈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앨범인 <저금통>은 진한 힙합과 랩 앨범을 재밌게 만들고 싶어 한 이센스의 자유분방함과는 별개로 완성도는 결코 자유분방 하지 않다. 즉흥적이고 유기적이지 않은 앨범 구성을 띄고 있으나, 트랙 하나하나와 벌스 하나하나의 완성도는 이센스의 발전이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랩이 늘고 있는 것은 물론이요, 독창적이다. 트렌드와 다른 것이 아니라 유행이라는 거대한 흐름 바깥에 무언가이며 완전히 다른 독창적 영역이다. 차원이 다른 박자감과 특유의 목소리에 더욱 발전한 라임 배치가 'Rap Shit'으로써 앨범의 완성도에 엄청난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이센스와는 차별화되는 점도 꽤 보였는데, 타이트한 랩이 꽤 많았다. 특히 <Gas>와 같은 트랙이 그랬다. 이센스는 흔히 물 흐르는 듯한 플로우와 독특한 톤으로 이어지는 오묘한 랩 스타일로 알려진 래퍼였고, 타이트한 속사포 랩은 초창기 시절 이후에는 잘 보여주지 않았으나 이번 앨범은 오밀조밀하게 라임을 박아 넣은 랩도 보여주며 색다른 모습 또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기존에 보여주었던 이센스 특유의 완급조절이 있는 랩은 앨범의 후반부에 배치된 차분한 트랙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앨범은 클럽에서 틀어도 괜찮을 정도의 신나는, 속된 말로 빡센 트랙이 이어지는 전반부와 차분한 후반부의 트랙으로 양분되어 있다. 좋게 말하자면 그루비한 이센스와 초창기의 빡센 이센스라는 두 가지 맛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앨범이고, 나쁘게 말하면 뒤로 갈수록 처지는 앨범이다. 둘 중 어떤 것이 이 앨범에 어울리는 문장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전자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센스는 두 가지 스타일을 모두 잘 소화하고 있으며, 뒤로 갈수록 처진다기보다 적절한 완급조절 통해 앨범을 잘 마무리하고 있다. 앨범의 무드는 천천히 차분해짐과 동시에 뉴 블러드 피처링 진들이 치고 들어오며 힙합의 세대교체 분위기까지 함께 만들어내고 있는 이센스의 큰 그림은, 이 앨범이 결코 막무가내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주저리주저리 칭찬들이 길었으나 한 단어로 이야기하자면 'Rap Shit'이다. 흔히 정규 앨범에는 사운드적으로나 가사적으로 유기성이 요구된다. 어떤 거대한 서사나 이야기를 다루기를 기대받는다. 그러나 <저금통>은 돈이라는 주제를 따를 뿐 대부분 즉흥적으로 좋은 비트 위에 좋은 랩이 얹어져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좋다. 그렇기에 이센스답다. 허키 시바세키의 좋은 프로덕션과 이센스의 좋은 랩이 만난 것이 이 앨범의 전부이자 가치이다. 유기성이나 구조적인 완성도는 빈약한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완성도가 충분하다. 좋은 앨범이라기보다 좋은 플레이 리스트에 가깝다. 좋은 작품이라기보다 생활에 밀착한 앨범에 가깝다. 앨범끼리의 비교는 실례이지만 빈지노의 <NOWITZKI>가 공교롭게도 동시기에 나와서 비교를 해보자면, <NOWITZKI>는 하나의 예술 작품에 가까우며 작품성, 구조적 유기성을 띄고 있으며 난해한 부분이 이곳저곳 있다. 그렇기에 하나의 앨범 전체로서의 가치가 크다. 그러나 이센스의 <저금통>은 곡 하나하나가 빛난다. 곡끼리의 시너지나 이 곡들이 한 앨범에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이 곡들이 이 앨범에 같이 있지 않다면 다른 앨범에서 타이틀곡이 되어야 할 정도로 킬링 트랙이다. <저금통>씩이나 되는 앨범에 있기에 수록곡으로 전락해야만 하는 좋은 곡들이 무더기로 포진해있다. 따라서 좋은 플레이리스트, 랩 앨범으로써 막 듣기 좋은 앨범이다.


<<E SENS - 저금통 >> 9/10점

랩 앨범이란? 질문에 대한 아주 단순하고도 거친 대답


[전곡추천!]

1. No Boss

2. 저금통

3. A Yo

4. What the Hell

5. Piggy Bank

6. Gas

7. 줘

8. How to Love

9. 열심히 해

10. Vanilla Sky

11. 기분

12. I'm Back

13. Real 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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