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넬로페 Oct 14. 2023

커리어 하이

IVE - I'VE MINE

커리어 하이(Career high)는 한 선수의 개인 통산 최고 기록을 의미하는 스포츠 용어이다. 최근 GOAT(The Greatest Of All Time)처럼 스포츠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서 볼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커리어 하이라는 단어를 왜 언급했느냐, 바로 이 앨범이 [IVE](이하 아이브)의 커리어 하이이기 때문이다.


아이브는 스칸디나비아 풍의 시원한 음악을 주로 해왔다. <ELEVEN>부터 <I've IVE>까지 그 전략이 유지되었다. 시원하고 통쾌하면서 아이브 특유의 진취적인 가사가 잘 맞아떨어져 아이브는 1군 아이돌이라고 불릴 위치에 서게 되었다. 또한 아이브의 전략 또한 나름 차별화된 지점이 있었는데, 정규 1집 <I've IVE> 이전까지 대중이라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타이틀곡 하나와 꽤 공들여 아이브의 테이스트는 유지를 하면서도 수록곡 자리가 아깝지 않은 곡 하나를 들려주었다. 억지로 EP나 미니 앨범을 내놓으면서 그저 그런 시답지 않은 수록곡을 발매하는 것에 비해 꽤 성공적인 전략이었다. 연속 싱글로 4개월이라는 짧은 복귀 텀을 가져가면서도, 음악성으로도 뒤지지 않았다.


https://blog.naver.com/axax_xxyyxxx/223071655759

그러나 <I've IVE>는 실망스러웠다. 타이틀곡은 좋았으나, 나머지 수록곡들이 구색 맞추기라는 인상이 강했다. 계속 싱글 앨범만 나오다가 정규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모르는 듯한 움직임이었다. 유기성도 떨어지고, 아이브에게 보여주었던 주제 의식도 희미해지고 딱히 음악적 진보나 특이점이 있지도 않았다. 이후에 6개월 만의 컴백은 아이돌이 평범한 아이돌의 궤적을 따르기로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컴백 주기와 EP 1집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평론과 무관하게 개인적인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실제로 나온 앨범은 만족스러웠다. 늘 담당하던 [라이언 전]의 음악은 생각보다 훨씬 뛰어났다. 선공개 곡 <Off The Record>와 <Either Way>가 발매되었을 때부터, 케이팝에서 탈피하여 더욱 팝적인 요소를 가미했기 때문에 앨범의 방향성이 이제까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직감했고, 실제 결과물도 그러했다. 1번 트랙 <Off The Record>는 그루비한 베이스와 몽환적이면서 감미로운 보컬과 백그라운드 신스가 따스하게 귀를 감싼다. [서지음] 작사가의 평범한 것을 재밌는 관점으로 풀어내는 가사 또한 인상적이었다. 3번 트랙 <Either Way>는 1번에서 이어져 아이브식 발라드를 형성하려는 것 같다. 케이팝의 정석 그 자체였던 아이브의 이미지를 벗어나려는 듯 팝의 정취가 가득 묻어있다; 두 곡다 어쩌면 테일러 스위프트가 느껴진다고나 할까(표절 시비가 아니라 분위기를 이야기하는 것). 몽환적인 신스, 서정적인 선우정아의 가사, 익숙하면서도 쏙쏙 박히는 훅은 현대사회에서 느낄 슬픔을 보듬으려 애쓰고 있다.


트리플 타이틀곡 이후에 배치된 수록곡 세 곡이야말로 이 앨범을 평가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트리플 타이틀이 일종의 승부수이긴 하지만, 앨범 전체를 평가할 때는 수록곡의 위치도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아이돌 앨범이 오로지 타이틀에만 모든 역량을 쏟고 구색 맞추기의 시시껄렁한 곡으로만 채우기에, 앨범 전체의 평가를 깎아먹는 경향이 가득하다. 하지만 아이브 앨범은 그렇지 않다. 이전 작 <I've IVE>에서 내가 줬던 점수에 발끈한 듯 한방 먹이려는 것 같다. 브라스가 틈틈이 끼어들어오고  강렬한 베이스가 재밌게 어우러져 타격 감고 가장 아이브스러운 <Holy Moly>, 장원영이 작사한 <OTT>는 포근한 신디와 정석적인 드럼 위에 뿌려지는 따뜻한 훅과 코러스는 마치 '그 그룹'의 <Cupid>가 생각나게 한다. 마지막 곡 <Payback>은 예상을 깨고 그저 그런 R&B 발라드가 아닌 아이브스러운 곡으로 만들어졌다. 아이브가 음악 전반에서 강조하는 임팩트 있는 드럼을 깔고 플럭과 피아노를 얹어 이해도 높은 팝스러움을 만들었고, 보컬 하모니가 인상적이다.


뭐하나 빼먹은 것이 있는데 일부러 뒤로 미뤘다. 바로 타이틀곡 <Baddie>이다. 노래는 좋다. 공격적인 트랩 비트와 일렉트릭 베이스가 무게감을 형성하고 중독성 있는 훅과 랩은 아주 퀄리티가 높다. 이전에도 [레이]의 랩을 칭찬한 적이 있었는데, [Big Naughty(서동현)]의 참여로 랩 퀄리티 자체가 더욱 성장했다. 이제까지 없었던 스타일의 아이브 타이틀곡임에 인상적이다. 훅에서 이어지는 코러스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주는 포인트는 강렬하게 기억에 각인된다. 색다른 아이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브의 '자기 확신' 가사도 점점 더 성장해 억지스럽고 싸구려 자기 개발 서적 같은 느낌은 완전히 지우고 자신만의 논지를 찾은 듯하다. 기존에도 가사의 방향성이 여타 아이돌들과는 달랐지만(사실 요즘 1군으로 꼽힐만한 아이돌은 모두 자기만의 스토리텔링이 있긴 하다.) 이젠 완전히 독립해 '아이브식 자기 확신'이라고 정립된 것 같다.


다만 왜 굳이 타이틀을 뒤로 미뤘느냐 하면, 앨범적인 유기성에 대한 생각이다. <Baddie>는 충분히 좋은 곡이고, 다른 타이틀곡과 수록곡도 수작 이상이다. 그러나 따로 논다는 느낌이 강하다. <Baddie>를 제외하면 앨범이 하나의 서사와 사운드적 유기성을 확보해 굉장히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앨범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얹어진 <Baddie>가 너무 따로 논다는 인상을 지속해서 준다.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6개월 만에 컴백이고 신나고 중독성 있는 곡이 아무래도 차트에 오래 남기 유리하고 '잘 팔리기' 때문에 그랬으리라 생각이 되지만, 앨범적 유기성에서는 역 시너지를 낸다.


양쪽 모두 아까운 구성이다. 서정적이고 소녀의 감성과 현실의 고찰이 잘 드러나는 곡과, 강렬하고 인상적이며 이제까지 아이브가 보여주지 못한 신선함을 준 <Baddie> 모두 좋은 곡이다. 그러나 한 앨범에 있는 것이 에러다. 어느 한쪽도 섣불리 버리기 힘든 구성이고, 아이돌 앨범에서 사실 앨범적 유기성이라는 게 평가 지표로 꼽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필자는 일부러 각기 다른 곡을 배치한 콘셉트가 아니라면, 적어도 하나의 주제나 테마에서 다양한 재미를 보여주는 '유기적 구성'을 중요시하고 이 잣대는 아이돌의 음악 소비 구조가 다르다고 해서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비록 아이돌 앨범이라도 사운드적 유기성, 서사, 의미 있는 주제 의식의 연결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아이돌 명반들도 이런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기도 하고. 따라서 <I've MINE>은 아쉽다. 부족해서 아쉽다기보다, 상술했던 묘한 이질감이 아쉽다. 내가 프로듀서여도 고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매출을 내야 하고, 강렬한 타이틀을 깔고 가야 하는 입장에서 고퀄리티에 나머지 곡을 버릴 수는 없고 그렇다고 <Baddie>에 맞춰서 앨범 전체를 다시 만들자면 컴백은 끝도 없이 늦춰질 테니 이해는 할 수 있으나 아쉬운 걸 아쉽다고 하지 뭐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곡과 타이틀간에 배타적인 부분이 이 앨범의 평가를 심각하게 훼손하느냐? 그렇지는 않다. 앨범은 충분히 좋다. 아이브의 커리어 하이다. 신선함과 중독성을 동시에 잡은 <Baddie> 유기적으로 서정적인 아이브스러움을 표현한 나머지 곡들은 아이브의 무한 변주다. 다만 딱 한 가지 발에 채는 점이 있다는 것일 뿐이다. 현대 한국 음악의 대중성을 상징하는 케이팝 걸그룹에서 특유의 컬러, 관통하는 메시지를 가진 채로 이런저런 스타일리시함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이 앨범의 가치를 높인다. 아이돌의 테두리 안에서 아주 잘 만들어진 EP이다.


<<IVE - I'VE MINE>> 8/10점

"THIS IS IVE"


[전곡 추천!]

1. Off The Record

2. Baddie

3. Either Way

4. Holy Moly

5. OTT

6. Payback

작가의 이전글 아이들의 본격적인 미국 공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