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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넬로페 Oct 25. 2023

가사에 사실 관계란?

평론 분리수거 EP.3

가사에서 사실 관계란 뭘까? 정말 애매한 위치에 있는 단어다. 언뜻 생각해 보면 굉장히 중요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또 어떻게 보면 하나도 중요하지가 않다. 이런 경향은 장르에 따라서 더욱 두드러진다.


발라드를 듣는 모든 청자들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K-발라드는 슬프기만 하면 됐지 술을 몇 잔을 마셨는지, 버스 정류장에서 헤어졌는지, 집 앞에서 헤어졌는지 아빠인가? 어찌 됐건 슬픔을 전달하고, 공감을 사기만 하면 그만이다. 아무도 해당 발라드에게 본인 이야기가 맞냐고 반문하지 않는다. 물론 묻더라도 인터뷰에 간간이 있는 개그성 질문 정도 선에서 끝이 난다.


하지만 사실관계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장르도 있다. 바로 힙합이다. 결국엔 '내가 이만큼 센 놈이다, 난 이만큼 위험한 놈이다.' 이러한 이미지를 형성하고, 강조하기 위해 쓰는 가사들일 뿐인데 래퍼들에겐 사실 관계에 대한 의구심을 가지는 의견이 자주 표출된다. '뭔 한국에서 갱이여~', '된장찌개 먹고 자란 애들이 뭔 드릴이여~' 같은 문화권에서 오는 있을 수 없는 일에 대한 반문이라던가... '총기 금지 국가에서 뭔 총임?', '마약을 파니, 마약을 하니 이러는데 왜 안 잡아감?' 등등 다양한 사실 관계에 대한 해명을 요구한다.


해당 가사가 범죄랑 관계가 있어서 그런 걸까? 딱히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다수의 힙합 가사들은 아까 말했듯이 '내가 이만큼 세다.', '내가 이만큼 위험하다.'의 표현인 것이고, 그런 맥락에서 형들도 나 보면 눈을 깐다던가, 난 예의범절 없이 다 팬다던가, 난 하루에 몇천만 원을 벌어서 하루 만에 다 썼다던가 등 한국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힙합은 유독 사실 관계가 요구된다. 이는 장르의 뿌리로 갈수록 때 놓기 힘든 일이기도 하다.


위 두 장르와 다르게 아예 가사가 중요하지 않은 장르도 있다. 전자음악 계통이 주로 그런데, 가사가 단순한 문장의 반복이어서 그냥 통일감을 주기 위한 요소거나, 목소리 그 자체가 악기가 되어서 하나의 Midi(미디)로 쓰일 뿐이다. 결국 청각적 쾌감과 그것을 통해 어떠한 감정을 일으키는 것이 전자음악이기 때문에 내용 자체가 중요하지가 않다. 가사가 없는 경우가 많기도 한 이유가 그렇다.


락처럼 자유로운 장르는 이러든 말든 상관없다는 식의 논리도 있다. 오아시스처럼 오피셜로 아무 의미 없는 가사라고 하는 밴드도 있고... 퀸처럼 아예 이해하기 힘들고 해석의 여지가 있는지 없는지도 애매한 가사를 쓰는 경우도 있으며(보헤미안 랩소디), 비틀스처럼 아예 시적인 경우(아마도 이쪽은 연식이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경향도 있다)도 많다.. 레드 제플린의 <Stairway To Heaven>처럼 문학적으로 가장 훌륭한 가사 중에 꼭 포함되는 곡이지만, 해석에 대해선 모호한 곡도 많다. 또한 걷다 대고 '천국으로 가는 계단을 사려는 여인을 본 적 있나요!?'라고 질문하는 이도 없다...


그러니까 이게 가사에서 사실관계라는 건 사실 중요하지가 않다. 필자의 생각도 그러하고, 실제로 발매되는 음악들을 봤을 때 사실이지 않은 게 더 많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잘 만들어진 음악이 사실에 기반한다면 더욱 감탄하긴 하겠다만, 사실 여부 그 자체가 중요하진 않다. 현대 대중음악은 희곡, 클래식, 오페라, 뮤지컬 등등 굉장히 많은 음을 이용한 매체들의 용광로다 보니 사실은 애초부터 중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면 왜 유독 힙합만큼은 가사에서 사실 여부를 검증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일까? 힙합이라기보단 정확히는 랩에 왜 이렇게 사실을 찾을까? 그 이유는 랩, 그러니까 힙합 자체가 저항 의식을 근거해서 태어난 장르이기 때문이다. 억압과 차별에 대한 저항, 뭐 그런 것들에서 비롯되는 비통함의 표현들에서 힙합의 근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힙합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무언가 표현하는 방법이 랩이다 보니...


그래서 오히려 사실에 기반한 힙합의 삶, 그러니까 갱스터의 삶을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할수록 그 가치가 올라간다. 에미넴이 출연한 영화 <8 마일>을 보면 알 수 있지만 딱히 할 말이 없는 안정적인 배경을 가진 것이 오히려 놀림거리나 디스의 대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장르와는 달리 제발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는 가사들이 나오는 것이다.


해당 영화에서 에미넴과 랩 배틀을 벌이는 래퍼(파파독)는 번듯한 집에서 잘 자란 것 같다고 까인다...


그래서 필자는 가사에 사실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고 묻는다면 위에서 설명했던 것처럼 '아무런 상관이 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고 단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사실로 쓰인 명가사들은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질문에도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 가사가 아름답고, 시적이고, 매력적인 것과 사실 관계는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시대에 휩쓸려 이런 의견을 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오래도록 그렇게 생각해왔다. 심지어 요즘은 힙합에서조차 조롱거리는 될지언정, 래퍼로서의 수명에 불우한 가정환경과 그것을 사실적으로 서술한 가사가 요구되지 않는다. 더욱이 한국 랩은 심한 편이고. 명가 사라는 것 자체가 사실과는 관계가 없다. 다만 좋은 가사가 사실이기까지 하면 더욱 매력이 있기야 하겠지만,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을 판단하기는 힘들다. 더욱이 사실이라는 명제 자체가 굉장히 불분명하기도 하고 말이다. 같은 사건을 보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게 해석하고 다르게 판단하니, 누군가에겐 사실인 곡이라도 누군가에겐 완전히 날조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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