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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수다 왕언니 Jun 14. 2023

죽음의 문턱에서 육체의 소유권?

[아주 편안한 죽음_시몬 드 보부아르 저_을유문화사]를 읽고...

 4~5년 전 엄마가 갑자기 안압이 올라가서 S병원 응급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적이 있다. 아기들을 키울 때 흔히 경끼를 하거나 열이 심해 응급실에 가기도 한다는 데, 나는 아들을 키우면서 그런 적이 한번 도 없었다. 그래서 응급실은 의학드라마에서나 보던 생소한 곳이었다. 응급환자들이 넘쳐나는 매 순간순간이 고비인 그런 곳이라는 선입견은 드라마가 나에게 심어준 것이다. 그런데 내가 하룻밤을 보내는 동안 급박한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곳에는 대부분 노인들이 누워있었고, 다들 잠을 자는지 끙끙대는 신음조차 없었다. 다만 의사들과 간호사들의 말소리만 이어졌다. 그것도 새벽 2시를 넘어서니 한산해졌지만 말이다.


 그런데 아침이 다 되어서야 알았다. 외상센터는 구분되어 있었고, 엄마의 침상이 있었던 구역은 내과질환 환자들만 머무르는 장소였다는 것을 말이다. 많은 환자들 중 특히 딱 봐도 고령으로 보이는 한 할머니가 계셨다. 온 밤을 지새도록 깨어난 적도 움직인 적도 없이 잠만 주무셨다. 자리가 불편해 이리저리 옮겨 다니던 나는 누군가가 할머니의 기저귀를 가는 모습을 우연히 보았다. 대낮처럼 불이 환하게 켜진 공간인 데도 불구하고 커튼도 치지 않고 기저귀를 갈았다. 그 거친 손길에서 할머니에 대한 예의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간호사였을까? 보호자였을까?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다만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생생하다. 그 경험은 질병으로 죽어갈 지도 모르는 나의 노년의 예행연습 이었다.


마구 만지고 마음대로 다루는 전문가들의 손길에 내맡겨진, 의지할 데라곤 하나 없는 가련한 몸뚱이. 거기에서 생명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관성적인 상태로만 연장되고 있을 뿐이었다.
p.26 중에서...


 그때 나는 동정심 없는 그 손길에 화가 나면서도 늙어간다는 것 병들어간다는 것에 두려웠다. 그리고 그 응급실 구석에 누워있는 늙은 육신이 미래의 나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자신의 육체를 스스로 돌볼 수 없는 노인의 육신은 마치 짐처럼 다뤄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 중 76.8%가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 책은 페미니즘의 선구자이자 철학자인 시몬 드 보부아르가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애도하기 위해 쓴 책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욕실에서 쓰러져 응급실로 이송되어 치료를 받던 중 온몸에 암이 퍼져 전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보부아르는 어머니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고, 그녀의 어머니는 복막염 수술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는 희망과 달리 점점 죽음을 향해 가는 그녀에게 몰핀과 진통제는 치료를 대신한다.


하지만 엄마가 살아있는 상태로 시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p. 103 중에서...

 

 저자가 처음 간병을 시작할 때 어머니의 잔주름이 진 복부와 음부를 우연히 보게 된다. 보부아르는 시선을 돌려버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엄마의 성기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서술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드러내 보이는 걸 태평스럽게 승낙하는 것에 더 불쾌해한다. 하지만 간병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죽음의 문턱을 넘나드는 어머니의 생사 앞에 육신의 정조 따위는 더 이상 중요해지지 않는다. 다만 고통에 몸부림치는 육신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워질 뿐이었다.


사실이었다. 전문가들이 내린 진단과 예측, 그리고 결정을 무력하게 따를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악순환에 갇힌 셈이었다. 환자는 의사들의 소유물로 전락해 버렸다.
"그대로 돌아가시도록 어머니를 내버려 두세요."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
p.79 중에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몸에 대한 생각이 바뀐다. 젊었을 때는 기능보다는 그 형태의 아름다움이 전부였다. 몸이 날씬한지, 허리와 팔다리는 가는지 하는 것에 더 관심이 쓰였다. 하지만 지금은 몸의 기능에 집중한다. 집안일을 많이 해도 무릎과 허리가 멀쩡한지, 오후에는 낮잠을 자지 않아도 체력이 남아나는지에 더 신경이 쓰인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 매년 건강검진을 하고 자잘한 질병 때문에 병원에 정기검사를 하러 다닌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하는 것은 아직 외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나의 육체에 대해 내 스스로 죽을 때까지 통제할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생겼다. 얼마 전 종영한 '나쁜 엄마'라는 드라마 속의 주인공은 마지막회에서 죽음을 맞는다. 암 말기에도 불구하고, 치를 떠는 고통은 보여주지 않는다. 밤에 잠자리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고 웃으며 떠난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내가 희망하는 죽음의 모습이 드라마 속에서나 존재하는 허구일 뿐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모든 인간은 죽는다. 하지만 각자에게 자신의 죽음은 하나의 사고다. 심지어 자신이 죽으리라는 걸 알고 이를 사실로 받아들인다고 할지라도, 인간에게 죽음은 하나의 부당한 폭력에 해당한다.
p. 153 이 책의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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