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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한 May 21. 2023

3.다수의 존재는 그에 상응하는 소수가 있음을 시사한다

AI는 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The existence of a majority logically implies a corresponding minority.

“다수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그에 상응하는 소수가 있음을 시사한다.”

(『마이너러티 리포트』 P.102)     


 필립 킨드레드 딕 Philip Kindred Dick(1928-1982)은 20세기의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이자, 3대 SF 작가, 아서 C. 클라크, 아이작 아시모프, 로버트 A. 하인라인 등과 함께 SF계의 최고 거장으로 간주된다. 문학비평가 프레드릭 제임슨이 그를 SF의 셰익스피어라 칭했고, 그가 죽은 이듬해 1983년 만들어진 SF 문학상인 필립 K. 딕 기념상(The Philip K. Dick Memorial Award)은 딕의 존재감을 증명한다. 사실 SF 문학에서 그의 위치를 보여주는 것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딕은 할리우드에서 정말이지, 무지 사랑한 작가였다. 아니 지금도 ing중이다. 여기서 모두 거론하기 힘들 정도로 이미 엄청나게 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거의 대부분 흥행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 중 1956년 출간된 딕의 단편 『마이너리티 리포트 (The Minority Report)』를 각색해 2002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하고 탐 크루즈가 주인공을 맡았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The Minority Report)》도 대중적 관심을 받았다. 감독과 배우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 개봉하자마자 보러 갔다. 20년 전이었지만 폭발적 액션과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 최신의 영화 기술을 여지없이 보여주며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나의 정신을 쏙 빼놓았다. 당시 스크린을 통해 보았던 증강현실과 투명하게 공중에 띄어 놓은 터치스크린을 장착한 컴퓨터 화면, 최첨단 장비들과 수많은 컴퓨터가 미래의 정보들을 예측하는 장면을 보고 SF소설을 시각화시킨 영화적 상상력과 기술에 놀랐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요즘 나는 딕의 작품에 새삼 놀라고 있다. 70년 전 작가가 그려낸 미래 세상이 가까운 미래엔 거의 실현될 조짐을 보인다는 거다. 미디어를 통해 현대 과학기술 개발의 성과를 들으면 딕의 소설 속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는 착각이 들 정도다. 딕의 상상력이 너무 뛰어나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것인지 아니면 그의 소설 속 미래 세상을 우리 인류가 구체화 시키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딕의 소설 속 미래 세상를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 소설 속 미래로 가는 우리

『마이너리티 리포트 (The Minority Report)』는 2054년의 워싱턴 DC에서, 3명의 백치인 초능력자들의 미래 예지 능력을 가지고 첨단기술을 이용해 범죄를 분석하고 수사하여 예비범죄자들을 잡아들이는 범죄예방관리국을 배경으로 한다.  범죄 예방 시스템은 3명의 백치 예언자들이 무작위로 하는 예언을 조합하여, 그 가운데 다수결로 범죄예측, 즉 결론을 정하는 것이다. 3명의 예언 중 2명 이상이 일치하는 의견을 머조리티 리포트(majority report, 다수 의견), 나머지 1명의 다른 의견을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소수 의견)라고 한다. 그리고 다수 의견이 채택되고 소수 의견은 폐기되는 방식이다. 주인공인 존 앤더튼은 범죄예방관리국의 국장으로 범죄 예방시스템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그러나 어느날 국장 존은 프로그램에 의해 살인자로 지목되자 아이러니하게도 예상범죄보고서를 의심하며 그것을 숨기고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도주한다. 존은 예지자 3명 중 2명이 그의 살인을 예지했으며, 다른 백치 한 명이 예지한 결과는 소수 의견(마이너리티 리포트)으로 지목되어 폐기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그리고 그는 폐기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확보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 한다. 개인적으로 문학적 예술성은 부족하다 생각했으나 첨단기술과 백치 인간들의 초능력인 예지력을 통해 미래 범죄를 예방한다는 기발한 SF적 아이디어는 무척 신선하고 통찰력있다 느꼈다.

 실제 이런 시스템이 작동한다고 상상해보자. 예언과 기술을 통합한 범죄 예방? 물론 아직은 허구, 작가적 상상력에 국한된 영역에서나 용인되는 것이라 현실성은 없어 보이긴 해도 빅데이터 기반의 범죄예측 기술들이 발전하고 있는 현재에서 소설 속 세상의 실현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할 순 없다. 그렇다면 딕은 이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려 했을까?      


1. 일어나지 않은 일로 범죄자 되기? 나도 잠재적 범죄자?

무엇보다 소설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은 일로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제기한다. 사실 경제성과 효율성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는 공공의 안전을 위한 예방적 조치를 취하는 정책이나 시스템을 현실화시키기도 했다. 사생활이나 인권 침해라는 부정적 시선은 있지만 어린이집과 수술실, 으슥한 골목길에 놓인 CCTV는 공적 안전을 위한 역할을 한다. 미국은 911 테러 사건 직후 테러 및 범죄 수사에 관한 수사의 편의를 위하여 시민의 자유권을 제약할 수 있도록 미 국회는 애국자법과 테러방지법을 통과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문제 많은 테러방지법이 2016년 3월 2일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 그것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무언가 찜찜하다. 공익을 위한 것이라는데 이토록 불편한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의 주어를 ‘나’로 한번 바꿔보자.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내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 있다는 이유로 나의 권리와 자유를 제한하는 것뿐 아니라 민감한 개인정보와 금융조사와 같은 예방적 검열을 한다면 받아들일 수 있나? 나도 예비 범죄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소설에서 범죄자로 지명된 범죄예방 관리국의 국장 존처럼 나 또한 공적 시스템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 대다수는 공동체의 안전과 발전을 위한 시스템에 찬성한다. 하지만 공동체 안전과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내’가 다수에 속하지 못하고 예비 범죄자로 지목되어 다수의 안전을 위해 저지르지도 않은 죄의 책임을 추궁당하고 희생되어야 할 때 문제가 달라진다. 그리고 ‘내’가 다수가 아닌 소수의 편에 있을 때도 문제는 달라진다.     


2. 다수의 이익과 소수의 이익은 충돌하지 않는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The Minority Report)》는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위해 개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인간적 삶을 박탈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일어나지 않은 범죄로 시민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것도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지만 백치 3명이 온종일 좁은 공간에서 몸은 고정되어 약으로 통제당하고 온갖 장치로 연결되어 범죄를 예언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참혹하다.      


“어두침침한 구석에서 세 명의 백치가 나란히 앉아 연신 무어라 열심히 지껄이고 있었다....철제수갑에 손목은 묶이고 온몸에 전선이 부착된 채 쉴새 없이 중얼거렸다. 그들의 생리적 욕구는 자동으로 해결되었다. 그들에게 정신적 욕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알아듣기 힘든 말을 자기 혼자 지껄이다가 지치면 잠을 자면서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었다. 게다가 어둡고 짙은 그늘 속에서 정처 없이 방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늘이 아닌 미래의 그늘이었다.

기형적으로 큰 머리통에 쓸모 없는 몸뚱아리로 쉴새 없이 중얼거리는 백치들은 아직 펼쳐지지 않은 미래를 응시하고 있었다.”( 『마이너러티 리포트』  P. 82)     



그들은 기형인 동시에 저능아이고 미래를 예측하는 능력을 가졌기에 갇혀 있다. 공공의 안전을 위한다는 다수의 명분이 3명의 인간에게서 인간적 권리를 박탈했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이익과 삶은 희생되어도 되는가? 이러한 가치 판단의 기준은 대체 어디서 온 걸까?   

  

     “최대 다수의 최대의 행복.”      


 제레미 벤담의 인간 윤리 행위의 목적인 이 슬로건은 지금도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다수의 이익이라는 윤리적 가치는 우리 사회를 질서 있게 작동시키는 지배적 원리이다. 사실 개인이 불이익과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있지만 그것이 다수 공익에 도움이 되는 사례가 많다. 지난 몇 년간의 코로나 시기의 거리두기는 그 대표적 사례일 것이다. 일상에서 사회가 질서를 잘 유지하기 위해 만든 규칙이나 법을 준수하는 시민의식은 공익성을 우선시하기에 작동된다. 공리주의적 가치는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잘 작동하면 공동체는 건강해진다.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중요하다. 소수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고 다수의 행복과 쾌락에 광적으로 집착할 때 인류에겐 꼭 문제가 생겼다.

     

우생학(eugenics)은 찰스 다윈의 조카, 프랜시스 골턴 경이 1883년에 만든 말로 유전적 구성을 통해 인간의 종을 개선하려는 야심찬 시도였다. “자연이 맹목적으로 천천히 그리고 경솔하게 하는 일을 우리 인간이 계획적으로 신속하게 그리고 사려 깊게 할 수 있다....무리를 개선하는 것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최고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p.105)     



우습게도 골턴의 우생학적 시도는 20세기 초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미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렸다. 국가의 발전과 다수의 행복을 위해 훌륭한 유전자만을 남기고자 하는 열망은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을 정당화했다. 당시 1920년 롱아일랜드의 우생학기록 사무소는 미국 전역의 감옥, 병원, 정신병원, 구빈원 등에 현장 요원을 파견시켜 유전적 결함이 있는 아이들의 출산을 예방하기 위한 우생학적 자료를 수집했다.(『생명의 윤리를 말하다』p.106) 사실 히틀러의 광적이고 터무니없는 생각은 미국의 우생학에서 영향을 받았다. 히틀러는 열등 인자의 제거를 넘어 유대인 대량학살과 인종 말살을 자행한다. 대체 이런 정신 나간 교리가 어떻게 세계를 집어삼킬 수 있었지? 물론 히틀러의 사악한 권력 의지와 당시 독일 시민들의 무지와 무력함도 한 몫 거들었겠지만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 확보라는 그들만의 윤리적 목적, 공적 이익이 폭력의 근본적 이유였다. 열등한 인간을 제거하고 우월한 인간을 번식시키는 것이 인류의 발전에 이바지 할 것이라 본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적 이익에 대한 통제와 왜곡된 집착은 소수의 이익을 묵살한다는 문제를 넘어서서 개인과 공동체 모두에게 재앙일 수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3. 다수의 가치는 다양성의 가치와 충돌하지 않는다

사실 공리주의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 다수결의 원칙과 유사한 원리로 작동된다.  둘다 어느 정도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The Minority Report)』에서 범죄 예방국의 백치 예언 시스템은 3명의 예지 중에서 다수가 일치하는 의견을 채택하고 다양한 소수의 의견을 배제시키는 시스템이다. 다수결의 원칙과 정확히 일치한다.

유발 하라리는 민주주의의 가치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지만 이것이 다른 어떤 체제보다 그나마 성공적으로 작동하고 있었기에 대체 서사가 나오지 않는 한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이 붕괴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달리는 ‘설국열차’가 궤도이탈을 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 원칙인 다수 의견으로 정책이 만들어지고 법안이 제정될 것이다.

 그래서 무엇보다 다수가 예측한 결과값과 혁신적 기술이 결합한 사전 범죄예방 통제 시스템에 관한 소설  문제는 현실의 것이기도 하다. 이제 인류는 생명기술, 유전공학, 첨단기술이 개발되면서  혜택을 맛보고 있다.  이상 물리적으로 원시사회처럼 고단한 삶을 살지 않는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는 건강한 사회 속에 살고 있는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없다. 미디어, SNS, 각종 포털, 생성형 Chat gpt까지 온갖 문명의 이기들이 대활약을 펼치는 시기에 인류의 지적 물리적 행동 반경은 어째  좁아지는 듯하다. 사람들은 유투브나 미디어가 들려주고 보여주고 만들어 주는 이미지에 자신을 맡기고 있다. 그리고 알고리즘에 우리의 뇌를 의탁한  사고하는 것을 게을리한다. 그런 환경 속에서는 건강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올  없다.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 출현한 최재천 교수는 자연은 점점 다양성을 늘려가는 방향으로 진화 하지만 인간은 오히려 역행한다며 어쩌면 인간의 질서를 향한 욕망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회가 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말했다. 다수의 통일된 의견에 집착하며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일침이다.    

 

“자연은 순수를 혐오한다”

윌리엄 헤밀턴     


우리가 잊은 것이 있다.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 또한 중요한 민주주의의 정신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고 다양한 의견들이 대화와 타협을 거쳐야 한다.  다수결은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의견을 조율하지 못할 때 사용하는 최후의 방법이다. 건강한 민주 사회는 소수 의견을 무시하지 않는다. 다양한 의견을 모두 수용하는 것엔 한계가 있지만 다수 의견이 우선시되어도 다양한 소수 의견을 고려하는 민주적 시스템을 포기하지 않는 사회가 건강하고 단단한 공동체를 만든다. 기술 혁신의 시대, AI가 인간의 노동과 다양한 능력을 대체할 수 있는 가까운 미래의 시대에 인간은 더욱더 기계에 의존하게 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정보기술과 감시체계가 강화되면 인간 삶의 양과 질을 더 제한적이 된다. 그래서 다양한 시선과 의견들이 서로 치열하게 이야기될 수 있는 건강한 사회는 다가올 미래에 너무나 절실히 필요한 공간이다.    


            

*참고 문헌

1. 『마이너리티 리포트』, 필립 K. 딕 저, 이지선 역, 집사채, 2002.

2.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마이클 샌델 저, 강명신 역, 동녘, 2011.

3. https://www.youtube.com/watch?v=Y-eOebKkS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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