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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구 Aug 14. 2023

축구에 진심이면 생기는 일

다쳐도 다시 일어나

나는 남중남고를 나왔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축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체육시간만을 바라보며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게 축구를 열정적으로 하고 다니다가 고등학교 체육대회가 다가왔다.

당시에 우리반은 약팀으로 소문이 나있었고 나 또한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뛰었다. 반장이었던 나는 무시 받는 것을 못견뎌 체육시간마다 애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연습을 했다. 

첫 번째로 붙은 반과 축구를 하는데 역시 쉽지가 않았고, 날씨도 더워서 매우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가 공을 잡았는데 주위가 다 상대편으로 둘러쌓여있었다. 이기고 싶다는 집념밖에 없던 나는 절대로 공을 안뺏기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했다. 몸싸움도 치열했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던 와중에 갑자기 귀에서 삐~~~ 소리가 났다. 경기 도중엔 아무렇지 않았는데 끝나고 나니 계속 거슬렸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고막이 찢어졌다고 한다. 의사선생님은 아직 나이가 어리니 금방 붙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결국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어린 마음에 수술이 무서워서 계속 미루고 미루다가 군대에 가기 전에 수술을 했다. 전신마취를 했고 수술할 때 오염이 될 수 있으니 구렛나루는 하나도 안남기고 다 밀어야 한다. 그렇게 수술이 끝나고 눈을 떴는데 얼굴에 칭칭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꽉 묶어서 해서 그런지 살짝 얼굴이 비대칭으로 찌그러져?있었다. 의사선생님과 간호사분들이 회진을 도실 때마다 자꾸 웃으셨던 거 같다. 

'그래도 나로 인해서 누군가가 웃을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이것이 첫 번째로 다친 '고막' 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일이다.

그때 당시에 나는 과대를 하고 있었고, 학교는 기숙사가 없었기 때문에 1학년들만 따로 다른 지역에서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아는 선배라고는 학생회 선배들밖에 없었다. 매 주 주말마다 집에 내려가곤 했는데 그 주에는 선배들이 축구를 하러 버스를 타고 온다고 하셔서 일찍 올라올 수 밖에 없었다. 축구를 시작하기 한 2시간 전에 배가 너무 고파서 왕돈까스를 하나 먹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이게 화근이었을까..?

축구를 시작하니까 배가 미칠듯이 찔렀고 조금만 뛰어도 힘들었다. 

"나 잘해야 하는데... 내 실력 보여줘야 하는데.. 선배들이 축구 못하는 애로 기억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아무것도 못한 체 전반전이 끝났다. 너무 아쉬웠다. 더 잘할 수 있는데 나 이 정도는 아닌데.

아쉬움만 남긴 체로 후반전이 시작이 되었다. 소화가 되어서일까 몸이 가벼워져서 

이제 보여줄 수 있겠다!!! 하고 열심히 뛰는데 갑자기 쿵..


"야 괜찮아? 방금 엄청 큰 소리가 났는데??"


몸이 좋은 선배와 몸을 부딪힌 것이다. 그때 잠깐 기억을 잃었나 어떻게 부딪혔는 지, 어떻게 넘어졌는 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에 남는 건 팔꿈치가 되게 쓰라리다는 것.


"넵 괜찮습니다!! 팔꿈치가 살짝 쓸린 거 같아요!!"


라고 말하고 내 왼쪽에 있는 물을 왼손으로 집으려고 하는데 내 몸이 본능적으로 말한다 

" 너 왼손 쓰면 큰일나 멈춰!!" 몸이 움직일 수가 없었다. 뭐지?? 팔꿈치가 쓸렸는데 왜이러지?? 그때 한 선배가 " 너 이거 뼈 부러진 걸 수도 있으니까 병원가봐!!"

엥 그 정도는 아닌 거 같은데 왜 이렇게 오버하시지?? 라고 생각만 하고 선배님 말씀이니까 택시를 탔다. 근처에 병원이 없어서 한 40분쯤 걸려서 대학병원으로 갔는데 택시기사님이 내 표정을 보더니 심각해 보인다고 빨리 가겠다고 하였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알았다. 지갑이 없구나. 기사님께 죄송하다고만 했는데 빨리 들어가 보라고 돈은 여기 계좌로 주고 얼른 가!! 얼른 감사합니다 하고 응급실에 가서 몇가지 검사를 하고 앉아 있는데 엄마와 누나가 왔다. 그 때 엄마는 얼음길에 넘어지셔서 한쪽 발에 깁스를 하고 있었는데 깁스한 발을 끌면서 오는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뭐래??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야. 전화 받고 깜짝 놀랐잖아."

"쇄골뼈가 부러졌다는데..? 세동강이 나버렸대..."

그때의 놀란 엄마의 표정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축구를 어떻게 했길래 뼈가 부러질 정도로 하냐는 그 표정. 수술은 바로 다음 날로 잡혔고 시간은 저녁이었다. 모든 게 갑작스러워서 놀란 것도 잠시 무서움이 갑자기 밀려왔다. 엄마와 누나는 갑자기와서 짐을 못챙겨 와서 다음 날 다시 온다고했다. 나는 어차피 수술은 저녁이니까 갔다오라고 말하고 뒤척이며 잠을 자고 있는데 간호사분이 커튼을 치고 조용히 1시간 뒤에 수술 하는 것으로 바뀌었으니 보호자께 연락드려주세요. 나는 부랴부랴 엄마한테 말하고 너무 피곤해 다시 잠에 들었다. 깨고 보니까 내 옆에는 엄마와 누나도 아닌 대학교 선배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이었다. 그 때의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 알고보니 엄마가 선배한테 연락해서 근처에 있는 선배가 아침부터 부랴부랴 왔던 것이다. 

수술실로 향하는 도중에 선배는 긴장을 풀어주려고 가벼운 농담을 건넨다. 나는 그런 선배의 마음을 헤아리듯이 미소로 보답을 하고 들어갔다. 생각보다 수술실은 많이 추웠고 온 몸은 갓 잡은 생선처럼 팔닥팔닥 떨고 있었다. 전신마취 수술인데 분명 마취를 한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정신이 멀쩡하지

나 마취 안되는 거 같은데 이거 마..ㄹ...ㅎ..ㅐ ....ㅇ...야 돼.... 하고 눈을 뜨니까 수술이 끝나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너무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렸고 꿈을 꾼 기분이었다. 그 때 친구들이 병문안도 많이 와주고 한 친구는 내 옆에서 자면서 병간호를 며칠간 해주었다. 

옆에서 오랫동안 병간호도 해주었던 친구에게 다시 한번 너무나 고마웠다고 말하고싶고, 선배님한테도 다시한번 고맙다고 해야겠다. 

'주변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 다 갚아나가면서 살아야겠다.'

이게 두 번째로 다친 '쇄골'이다.


군대에서의 일이다. 축구를 좋아한 나는 매일 축구를 해서 좋았다. 그렇게 매일 하는 와중에 다쳐서 종종 치료를 받으러 가곤 했지만, 이번엔 크게 다쳐서 큰 병원을 가기로 했다.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십자인대 전방 파열' 이라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 얘기를 듣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엄마한테 뭐라고 말하지?' 였다. 앞서 말했듯이 많은 수술을 하고 군대에 들어온 거라서 이번에도 다치면 엄마가 크게 걱정할 것이 분명했다. 엄마한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는 크게 걱정했고 아마도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을 것이다. 그리고 아빠한테 전화를 걸었는데 아빠의 말이 조금 상처였다.

"그래도 군대는 나오지 말거라."

몸이 아픈데 군대를 나오지 말라는 게 서운했다. 다치고 싶어서 다친 것이 아닌데 괜히 말했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군대에 적응을 거의 다했고 사람들도 좋고 축구도 많이 해서 나오기 싫었다. 하지만 수술을 해야 했기에 휴가를 써서 수술을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아팠다. 다리가 펴지는 게 안돼서 재활을 해야 했고 틈틈이 자리에 앉아서 다리를 피는 연습을 해야 했다. 할때마다 속이 너무 안좋았다. 이때 정말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던 거 같다. 화장실에 가려고 침대에서 휠체어 불과 30cm 거리를 가는데 30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평소에 화장실을 가는 것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2주 정도 병원에 있다가 퇴원을 하고 부대로 복귀를 했다. 당연히 부대 안에서도 눈치가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짐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가사 제대'를 하기로 결심했다.

'걷지를 못하게 되니까 평소에 걸을 수 있다는 즐거움, 아프지 않는 것에 대한 감사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것이 마지막인 '십자인대'이다.


이렇게 많이 다치면서 느낀 것은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고 내가 인생을 잘 못사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나쁘지는 않게 살았구나를 느꼈다. 무엇보다도 건강이 최고임을 알았다. 돈이 많아도 건강은 살 수 없기에. 건강은 돌아오지 않는다. 모두들 건강하고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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