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본래 유대인의 종교인 만큼 파스칼도 유대인에 관심을 많이 기울인다. 미분류 원고 6~10장은 유대인에 관한 파스칼의 탐구라고 볼 수 있으니 묶어서 감상을 쓴다.
확실히 유대인은 뿌리가 깊다. 세계 곳곳에 퍼져 있으며, 영향력도 거대하다. 물론 유대인들이 신에게 특별히 선택받았다는 이야기는 믿지 않는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성공 신화가 주는 교훈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당장 「탈무드」를 팔지 않는 서점이 얼마나 되는가?
다만 유대인들은 우수성에 비해 핍박을 많이 받았다. 성경에 적힌 역사가 사실이라면 유대인은 역사 대부분을 타국에 지배당하며 보냈다. 성경에 적힌 역사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유대인은 서양사 내내 부정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홀로코스트는 정점이었을 뿐이다. 당장 「베니스의 상인」만 해도 샤일록이 악당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용케 명맥을 잇고 있다. 아니, 그들이 받은 핍박만큼이나 창대한 부를 누리고 있다. 정말 성경의 약속대로 다윗은 항상 후계자가 있다.
그들을 묶어주는 것은 무엇인가? 여러 풍속들이 있겠지만, 파스칼은 믿음이 주효하다고 본다. 성경에서 얻은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자부심, 자신들의 수난에 절망하지 않고 신이 내릴 구원을 기다리는 마음가짐이 생존 비결인 셈이다. 공유된 믿음은 외적인 풍속과는 별개로 유대감을 만든다. 유대인들을 할례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외적인 것은 내적인 것 없이는 아무 소용이 없다."
유대인들의 믿음이 잘못됐는지 옳은지는 판단할 수 없다. 하지만 그 믿음 덕분에 그들이 살고 있는 것이라면, 진위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세상의 순리가 이끄는 힘보다 마음이 스스로 이끄는 힘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믿음을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