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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너 Jun 19. 2024

「팡세」 미분류 원고 11장

나는 가끔 신에 대한 믿음이 삶에 해롭다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권한이 신에게 있다면, 내 의지는 무용지물이다. 나는 신이 움직이는 꼭두각시이고, 세상 전체가 그렇다. 이 인형극에서 인형사가 의도한 '믿음'이라는 것 말고는 도대체 무슨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파스칼은 "세상은 자비와 심판을 행하기 위해 존속한다."라고 말하는데, 자비는 달콤하겠지만 꼭 심판을 받아야 하는 운명은 도무지 달갑지 않다.


하지만 파스칼은 우리의 삶이 인형극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형들과는 달리 우리에게는 이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성은 한계가 뚜렷하며, 결국 신 앞에서 꺾일 운명이다. 하지만 꺾일 순간이 오기까지는 이성을 고수하는 것이 사람의 특징이다. 이렇게 보면 사람은 모종의 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자신이 믿고 사랑하는 이성이라는 개념과 자신의 감각이 닿지 않아도 끌려가게 돼있는 믿음이라는 개념이 싸우는 것이다. 이 둘의 반목이 끝나고 한곳을 바라보는 그 지점이 인간성의 완성이다.


그러므로 믿음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 말자! 어차피 신이 짜놓은 운명 위에 우리가 산다고 해도, 결국 우리가 동의해야 우리 운명이 신의 의도대로 완성된다. 믿음을 굴복이 아니라 이성의 초월이다. 믿음이 주는 마음의 위안을 수용하는 사람은 분명 제 나름의 행복을 누릴 것이다. 신이 믿음을 대가로 보호한다는 계산이 이성에 의해 옹호될진대, 남이야 뭐라 하건 자신의 삶이 믿음을 가리킨다면 기꺼이 따라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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