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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괴랄랄 Feb 29. 2024

제가 매운걸 먹어야 아기를 갖는 사주라고합니다.

사연을 바탕으로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구리시에 살고 있는 33세 여성입니다.


28세에 결혼했으니 결혼한지

딱 5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사연을 적으면서도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오는데요.


어르신들에게 사주, 역학이 중요하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집착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결혼하기 전부터 궁합도 보고 부적도 쓰고

이미 할 수 있는 건 다 하신 상태더라고요.


솔직히 저희 집이 무교기도 하고

저도 사주 타로 이런 역술쪽에 흥미가 있어서

종종 사주를 보러가기도 했어요 물론 재미로요.

딱히 불편함이 없어서 관여 하지 않고 있었는데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시는 것 같아

의견을 묻고 싶어 이렇게 사연을 올립니다.


결혼한지 5년째,

사실 저희 부부는 아직도 아기가 생기지 않고 있어요.

남들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하는데

아무래도 주변의 기대(시어머니, 친정어머니)도 있고

저 역시도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아기에 대한 기대가

꽤나 큰 편이에요.


저 자체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인데

최근에 시가에서 압박이 조금씩 들어오더라고요.

저희 남편은 집안에서 맏아들이에요.

동생들은 전부 아이가 있는데도

그런데도 맏아들의 아이들이 너무 보고싶으시대요.


그렇게 은근슬쩍 명절에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남편에게 더 이상 이런 압박 받고 싶지 않다

한 번 대차게 잡도리하고 이번 설에 내려갔습니다.

웬일인지 이번에는 아이 얘기를 딱히 안하시더라고요.


저희 시댁은 조상님에게 지극정성이라

차례도 정석대로 지내고 늘 제사도 지내세요.

그래도 며느리에게 크게 바라는 건 없으셔서

딱히 불편함없이 제사를 지내왔네요.

그렇게 모든 제사가 끝나고 다같이 식사를 하는 자리였어요.


설날이라 다같이 만둣국을 먹는데

이상하게 제 만두만 색깔이 다르더군요.


"어머니, 제 만두가 조금 다른가봐요~"


편식없이 모든 걸 고루 잘 먹긴 하지만

다들 고기만두인데 제것만 김치만두로 준비해주셔서

의아한 마음에 여쭤봤어요.


"그래, 성훈(남편이름)이가 너 김치만두 좋아한다더라"

???

제가 한 번도 한 적 없는 얘기라 남편을 쳐다봤지만

남편도 으쓱하며 머리를 긁적이더라고요.

뭔가 어디서 잘못 들으셨나 싶었지만

굳이 정정하지는 않았어요.

어차피 둘 다 좋아하니까요.


만둣국과 함께 먹을 김치와

함께 부친 갖가지 종류의 전이

상다리가 휘어지게 올라왔고

다같이 숟가락을 들어 식사시간을 시작했습니다.


김치만두를 크게 한입 베어물자마자

정말 총에 맞은 기분이었어요.

입에 들어오자마자 그 강렬한 청양고추? 향에

코까지 뽀뚜루를 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매운 걸 잘 못먹거든요.


굳이 다른 어르신들 드시는데

다 뱉어내고 호들갑 떨고 싶지가 않아서

그냥 슬쩍 빼내 휴지로 덮어두었습니다.


만두없이 떡이랑만 먹으니 김치가 너무 당겨서

제 옆에 덜어놓여진 김치를 먹었어요.

저희 시가는 개인별로 반찬을 다 따로 담아먹어요.


진짜 이게 웬열

너무 매워서 다 뱉어내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세상에 있는 모든 매운 재료는 다 넣은 것처럼

매콤 매움 이 모든 걸 떠나 쓴 맛까지 느껴지더라고요.


이쯤되니 이건 단순히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저에게 매운걸 먹이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었어요.

이건 먹이는 거다. 이건 실수가 아니다.


혀가 얼얼하고 눈물이 질질 나는데

당최 제가 왜 이런 꼴을 당해야하는지 모르겠으니

억울한 마음에 생전 안쓰던 악을 쓰더군요.


"어머니! 이게 진짜 뭐예요??"


모양 빠진다, 추하다를 사람으로 만들면

그 때의 제가 아닐까 가끔 생각합니다.

입으로 코로 눈으로 얼굴에 있는 모든 구멍에서

물이 쏟아지는데

뇌 척수액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두려워졌습니다.


버럭 소리를 지른 저를 쳐다보던 어머니가

제가 다 뱉어낸 김치만두와 김치를 보더니

무섭게 인상을 구기셨습니다.


"얘, 너 때문에 신경써서 준비했는데

다 뱉고 뭐하는거니"


"예? 아니;;"


"그거 어렵게 구한 만두랑 김치다~

어디 멀리 있는 대전에서부터 건너온거야"


엥 진짜 뭐하는

이 얼얼한 캡사이신이 뇌를 침투해서

나를 바보로 만든 것이 분명하다.

짧은 순간에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상황이었거든요.


왜 갑자기 나는 김치만두처돌이에

대전에서 건너온 유명난 실비김치 덕후가

되어버리고 만것일까.


사건의 전말은 이러했습니다.


어머니에게는 아주 오래된 유사 인생 동반자

철학원 역술인 지인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종종 코인과 주식을 하셨는데

그 때마다 성공으로 갈 수 있게 해준

귀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머니는 인터넷이나 세상 돌아가는

요즘 일에 관심이 진짜 개많으세요)


저와 남편의 결혼 궁합도,

결혼 택일도, 상견례 택일, 이사택일도

모두 그 분이 해주신 거였어요.


어머니는 그 선무당에게 가서

제 아이에 대해서 여쭤보셨다고 합니다.

결혼한지 5년이 넘었는데 아직까지 아이 소식이 없으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는지

하소연하셨다고 합니다.


그 해결책이 정말 가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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