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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괴괴랄랄 Mar 03. 2024

제가 매운걸 먹어야 아기를 낳는 사주라고 합니다(2)

그 사주쟁이는 어머니에게 제 몸에 오물이 막혀있다며

그 기운을 뚫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니 하수구냐고요;;;


몸에 부족한 기운을 과하게 채우면

미처 나가지 못한 몸 속의 노폐물들이

마치 폭포수에 밀려가듯이...

밖으로 배출된다는 논리였어요.


정말 그렇게 믿으셨던건지

실비김치를 먹고 오만 구멍에서

물을 뽑아내는 저를 보고

어머니는 내심 기뻐하셨던 모양입니다.


"아가, 눈물 흘리고 싶은만큼 흘려라"


이런 미친.

저는 요단강을 건널 뻔했는데.


솔직히 저도 유사과학 많이 좋아하는 편이라

사주 보러 많이 다녔습니다.


어렸을 적 사주를 보러가면

저는 늘 불의 기운이 부족하고 

금의 기운이 강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빨간색을 가까이하라.

집에 불 그림을 걸어두어라. 등등

철학관 선생님들에게 질리게 들었던 말이에요.


불의 속성 중에 쓴맛과 매운맛이 있다는 것도

그 때 사주를 보러 다니면서

어렴풋이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저에게는 그저 매년 1월 재미로 보는

하나의 유흥거리였으니 당연히 신경쓰지 않았죠.


아니 유사과학도 재미로 적당히 해야지..


어머니는 이렇게 생각하셨대요

보통 매운 것으로는 새아가 몸 속에 있는 악귀를 

배출 시킬 수가 없다.

5년이나 아이를 갖지 못했으니 

보통 오물덩어리가 아니라고 생각하셨겠죠.

사활을 걸고 매운 음식을 수소문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집이

청주 미친만두와 대전 실비김치입니다.

뒷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어서

이 외에 다른 음식들도 있냐고 따져 물었더니

김치를 정말 종류별로 사다놓으셨더군요.


선화김치, 실비 파김치, 송주 불냉면 가장 매운맛,

캡사이신, 베트남고추, 페퍼론치노 등등

박스 안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빨간음식을 보고

정말 머릿 속에 멍해지고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모든 비상식적인 행동을 떠나서

얼마나 그동안 답답하게 생각하셨으면

이런 말도 안되는 사주에 의지하셨을까요.

솔직히 말해서 오만정이 다 떨어졌습니다.


명절이고 제사고 다 뒤집어엎고 

집으로 달려오고 싶었지만 

억지로 이성을 붙잡아봤습니다.

화 좀 삭히고 집에 가서 차분하게 전화드리려고요.


그렇게 마음을 추스리던 와중에

어머니가 한술 더 뜨시더라고요.

집에 가기 위해 짐을 챙기는 저희 부부에게

어머니는 저를 위해 사다놓으셨다는

매운 음식을 남편에게 안겨주었습니다.


my 이성 is gone.


차라리 병원에 가라고 타이르셨다면

이렇게까지 서운하고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말도 안되게 매운 그 음식들을 먹고

뇌 척수액을 질질 흘리는 제 모습을 보고도

꾸역꾸역 그것들을 제 짐에 쑤셔넣는 걸 보니

서러움이 북받치더라고요.


애초에 아이 못 낳는게 저 하나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계신 거 아닌가요?


사주에 불이 없다고 화까지 없는 건 아닌지

이성 잃고 대폭발한 나머지

시댁에서 사자후를 질렀습니다.


솔직히 저 상스러운 욕도 잘하거든요.

30살 이후로 많이 컨트롤한 게 

이번에 빛을 발한건지

애써 고르고 거른 말들만 뱉어냈더라고요.


아이 못 갖는게 그렇게 마음에 안드시면

이 자리에서 오빠랑 갈라서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거기서 우왕좌왕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남편 모습도

여간 꼴뵈기가 아니었거든요.


정말 이판사판이었어요 저는.

이렇게 눈물콧물 줄줄 싸면서 

오물에 막힌 하수구 취급을 받느니

그냥 이혼녀로 혼자 사는게 낫잖아요?


그제서야 남편이 허둥지둥 나서더라고요.

우리 문제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

이렇게까지 하는 거 우리 둘 다한테 못할짓 이라면서


그 때 이후로 저는 시댁에 가지 않고 있습니다.

가서 캡사이신으로 살해당할까 두려워

나는 못 가겠다고 선언했어요.

남편도 아직까지는 저에게 한마디도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 소중한 아이가 제게 찾아오면

그 때는 조금 누그러진 마음으로 

찾아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까지는 좀 마음이 많이 힘드네요.


시어머니가 많이 생각하셔서 그런건데

조금 이해하라는 말도 꽤 들었어요.

솔직히 지금 기분으로는

즐..

이거든요.

그치만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도 한 번 자신을 돌아보려구요.


이상 제 얘기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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