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야구를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리틀야구를 했었지만, 코로나가 오면서 중단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코로나가 이유이긴 했으나, 그 무렵에 한국 리틀야구의 안 좋은 단면을 많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잠깐 한국의 리틀야구에 대해 얘기해 보자면, 한국의 리틀야구는 보통 취미반과 선수반으로 나뉜다. 취미반은 야구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깝다. 해당 자치 리틀야구팀의 운영비를 확보하기 위해, 최대한 많은 취미반 아이들을 유치한다. 이들로 받은 회비가 팀 운영에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씨가 좋은 봄, 여름이면 코치 한 명이 30 ~ 40명의 아이들을 감당해야 하는 웃픈 장면도 연출한다.
취미반은 좀 시시하고, 전문 선수가 되는 것을 바라는 건 아니자만 그래도 좀 더 제대로 야구를 배우고 싶은 생각에 아이를 선수반에 넣었다. 물론 선수반에서 운동을 하는 친구들이 전부 중학교 야구부로 진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선수반"이다 보니 중학교 야구부 진학을 희망하는 아이들과 동일한 방식으로 훈련받는다. 코치가 부모가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들에게 소리치고 무안을 주는 것은 예사고 욕설도 쉽게 들을 수 있다. 야구는 단체운동이다 보니, 본인이 빠지게 되면 팀운영에 피해가 있다. 그래서 거의 매일 연습을 하는 선수반에 참여하는 것은 아들의 학업 또한 신경 써야 하는 부모라면 부담스럽기도 하다.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제법 부담이 든다. 미국과도 비슷하게 부모들이 운영에 상당히 관여를 하는데, 연맹이나 혹은 지자체로부터의 지원금이 적다 보니, 부모들로부터의 각출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리틀야구팀의 감독과 코치자리는 자리가 부족한 우리나라 생활체육 업계에서 나름 이권에 해당하기 때문에 이를 차지하기 위한 암투도 있어 이 또한 볼썽사납다.
미국에 와서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가 사는 인구 7만 도시에 야구협회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 등록을 하였다. 미국나이 6세부터 15세까지 참여할 수 있는데, 나이별로 리그가 나뉘고 해당리그에 6~7개의 팀이 구성된다. 팀당 약 11~12명 정도이다. 1년에 봄, 가을 2번의 시즌이 있는데, 봄시즌은 2월에 신청을 받아 3월 초에 tryout을 갖는다. 실력에 따라 드래프트 순서가 결정되고 코치진들이 상의하여 선수를 픽업하여 팀을 구성한다. 3월 말부터 시즌이 시작된다. 2월에 선수만 등록하는 것이 아니다. 코치진도 자원봉사로 아빠들로부터 신청을 받는다. 코치 2명 혹은 3명이 팀 훈련도 시키고, 시즌에 돌입하면 게임별로 타자, 수비, 투수 라인업을 짠다. 코치진으로 뛰는 아빠들 외에도 나머지 부모들은 가만있지 않는다. 팀에 허들렛일을 하거나, 게임이 있는 날이면 관중석에 앉아서 자기 팀의 선수아이들이 기죽지 않게 목청 높여 응원한다.
정규 시즌의 개막을 앞두고 일주일에 한두 번 모여서 훈련을 한다. 생업이 있는 40대의 아빠가 가르치는 것이다 보니 전문적이지는 않지만, 꽤나 열정적이다. 내야 외야 수비 연습을 위해서 뜬 공과 땅볼을 계속 쳐서 보내줘야 하고, 배팅 케이지에서 배팅볼 또한 선수당 50개씩은 할 수 있게 던져준다. 아빠 코치의 역할은 이것이 메인이 아니다.
아이가 신이 나서 뛸 수 있게, 잘했던 한 개의 플레이를 기억해 내어서 그 부분을 구체적으로 칭찬해 준다. 배팅연습을 끝낼 때도 제대로 맞은 타구가 나와야 그때 끝낸다. 게임이 끝나도 다시 모여 서서 게임을 복귀한다. 플레이어 한 명 한 명이 잘한 플레이를 모두가 둘러 서있는 가운데, 언급해 주고 칭찬하다.
정규시즌으로 10~12개 게임을 하고 순위가 정해지면 토너먼트를 한다.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게임을 거듭하면서, 아이들은 이기고 싶은 간절함을 느낀다. 졌을 때 실패의 경험도 한다. 게임에 지고 나와 분해서 혹은 속상해서 우는 아이들을 달래고 독려하는 것도 코치 아빠의 일이다.
"너희들은 너무 잘했지만, 상대가 너무 강했다."
"비록 지기는 했지만 나는 끝가지 최선을 다한 너희들이 너무 자랑스럽다."
"너희들은 정말로 대단했고, 너희들과 함께 훈련을 할 수 있어서 나는 너무 영광이었다."
반대로 아이들은 이겼을 때 혹은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했을 때 승리의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아이들이 느끼는 승리의 기쁨은 엄청날 것이다. 야구라는 스포츠의 특성상 혼자만의 성과가 아닌 팀의 멤버하나하나가 노력해서 만들어낸 성과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서 이런 성취감과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운동을 시키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이가 소속된 팀이 이기면 부모들도 엄청 행복하고 즐거워한다. 조금 과장을 섞자면 야구팀에 속해 한 시즌을 보내는 것이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다.
어떤 팀이든 한번 지더라도 바로 탈락이 아니다. 한번의 기회를 더 주고 만약 나머지 경기를 다 이기면 우승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한번 실패하더라도 아이들이 다시 한번 도전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냥 가족들 전체가 참여하는 동네잔치 같은 야구 리그라고만 생각할 수 있는데, 그 와중에도 엘리트 선수 선발 시스템이 마련되어 있다. 각 팀에서 1명 혹은 2명의 우수 선수를 협회에 추천을 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협회 관계자가 선수들을 관찰한 후에 리그가 끝나면 이 도시(우리로 치면 "동" 혹은 "구" 정도 되겠다.)를 대표하는 팀 구성 한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시즌이 끝나면 영입 대상 선수 아이 아빠에게 다음 시즌은 travel team에 참여하겠냐는 연락을 한다. Travel team에 참여하게 되면 다음 시즌은 다른 도시의 travel team들과 리그 시합을 하게 된다. Travel team에서 활약을 한다면 아마도 county 대표팀에서 연락이 올 것이다. 그래서 state 레벨의 대회도 참가하지 않을까 싶다.
travel team은 야구에 만 있는 것이 아니다. 축구, 라크로스, 펜싱 등 다른 종목에서도 travel team이 있다. 그래서 주변에 다른 부모들을 보면 traverl team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타 주에서 개최되는 대회에 온 가족이 출동하여 시합에 참가한다고 한다. 시합에 참가하는 목적도 있지만 여행을 하면서 온 가족이 유대감을 돈독히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조지아주에서 앨라배마주의 대회에 참여하는 수준이 아니라, 조지아에서 저 멀리 시카고에서 개최하는 대회까지도 참가하고 한다.
말 그대로 "TRAVEL"이다.
누군가는 우리나라에 프로야구를 도입했던 것이 우민정책의 일환이었다고 얘기한다. 그런 의도였을지는 모르겠으나,
"스포츠가 국민의 삶에 이렇게 깊숙이 녹아들어, 본인의 신체를 개발하고, 정신을 맑게 하고 가족과 친목을 도모할 수 있고,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 즉 사회와 융합할 수 있는 도구로 잘 사용된다고 하면 이건 우민 정책이 아니라, 계몽정책이라고 얘기해야 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