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금메달, 체육행정은 노메달
2024년 7월 26일부터 8월 11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제33회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다. 전 세계에 206개국 10,500명이 참가하는 지구촌 큰 축제이다. 특검법, 미국 대선, 중동전쟁 등 굵직한 국내외 메가톤급 핫이슈로 솔직히 금번 파리올림픽은 개최되는지 조차 모르고 있었다. 올림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방송과 뉴스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양궁, 펜싱, 사격, 태권도, 탁구선수들의 금메달 등 소식 덕분이었다.
8월 10일 현재, 대한민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8개, 동메달 7개로 올림픽 참가 206개국 중 종합 7위 성적으로 스포츠 강국 위상을 전 세계에 드높이고 있다. 애국가가 울려 퍼지며 태극기가 경기장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TV로 볼 때마다 남녀노소, 보수, 진보 불문하고 대한민국은 하나되어 짜릿한 감동을 느낀다.
그러나 금번 2024년 파리올림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분야는 아이러니하게도 스포츠가 아니다. 그것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방수현 선수 이후 26년 만에 배드민턴 금메달을 안겨 준 안세영 선수(22세, 삼성생명)와 배드민턴협회 갈등이다. 안세영 선수 기자회견으로 올림픽의 이슈가 배드민턴협회와 안세영 선수간 갈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정치권도 이 문제에 가세하면서 지구촌 스포츠 축제는 그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다.
안세영 선수는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걸고 기자회견에서 작심한 듯 배드민턴협회에 억눌렸던 감정을 가감 없이 쏟아붓는다. 더 이상 "대표팀과 함께 할 수 없다" "금메달을 따는 순간 말하는 것이 힘이 있을 것처럼 보였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5-6월에도 서릿발이 내린다고 했던가? 앳되 보이는 그녀의 발언에는 독기가 충만해 있었다. 26년 만에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걸고 영광스러운 감격에 취해 있어도 부족할 그녀의 발언에 국민들은 충격의 도가니에 빠졌다. "국가와 국민에게 감사하고 더 노력하여 큰 선수로 성장하겠다"는 것이 그간 금메달리스트의 일반적인 레퍼토리였지만 그녀의 소감은 모두의 예상을 뒤엎는 핵폭탄과 같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2024년 파리올림픽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 선수를 이토록 분노케 했는가? 그것이 궁금했다. 방송에서는 배드민턴협회와 안세영 선수간 갈등을 다양하게 분석하며 원인을 제시하고 있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안세영 선수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다리 부상을 입었음에도 배드민턴 협회는 제대로 된 치료조치 및 적절한 사후관리가 없었다 2. 안세영 선수를 전담하는 트레이너가 파리올림픽에 동행하지 못하는 등 배드민턴협회의 지원이 부실했다. 3. 안세영 선수 개인이 선호하는 특정 브랜드의 사용을 제한하고 배드민턴 협회가 지정하는 상품만 사용하도록 강요했다. 4. 단식, 복식 선수의 관리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관리되지 못하고 있다. 5. 비행기 좌석을 이용하는데 선수와 임원 간 차별이 있었다. 위 내용은 방송에서 나온 내용일 뿐 안세영 선수가 말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제시되는 증거 등으로 볼 때 충분히 신뢰 있는 주장이다.
배드민턴 협회는 안세영 선수 주장에 10장의 보도자료를 내며 구체적으로 반박한다. 1. 안세영 선수 개인을 위한 특별지원은 선수관리 형평성 차원에서 어려운 부분이다. 2. 전담트레이너는 본인 희망에 따라 계약이 종료된 사항이다 3. 항공기 좌석이용 차별은 선수는 국가예산으로, 협회는 협회규정을 적용하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 얼핏 보면 직무감사 과정에서 공무원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법령을 자의적이고 소극적으로 해석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복지부동의 행태로 배드민턴협회가 운영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갖게 하는 부분이다.
좌) 이기흥 대한체육회장 우) 안세영 선수
더욱이 안세영 선수가 본인의 발언이 올림픽에 참가한 선의의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를 줄 것을 우려하여 올림픽 기간 중 발언을 자제하는 반면, 배드민턴 대표팀 감독과 대한체육회장은 언론을 통해 안세영 선수와 갈등 관련 내용을 조장하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 배드민턴협회 주장의 당위성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선수를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관리해야 할 배드민턴협회의 선수관리 및 대응방식이 졸렬하기 짝이 없어 보인다.
금번 배드민턴 갈등 외에도 체육행정의 난맥을 보여 준 사건이 또 하나 있다. 바로 대한축구협회의 불통행정이다. 대한축구협회는 홍명보 감독을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으로 선임하는 과정에서 기술위원회 소집절차 미이행 등 절차상 요건에 흠결을 보이며 축구팬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급기야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감사를 하기로 결정하였으나 대한축구협회는 FIFA규정에 따른 축구협회 운영의 독립성 등을 운운하며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수장인 정몽규 회장은 사건 발생 이후 현재까지 금번 사태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내놓지 않으며 자신의 자서전에서 10점 만점에 8점으로 자화자찬하는 웃픈 상황이다. 대한민국 최대 체육단체의 부끄러운 민낯이 아닐 수 없다.
금번 배드민턴협회 갈등 사건을 보며 누가 옳고 그르다고 판단하는 것은 솔직히 어려운 부분이다.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정확한 사실관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엘리트체육을 담당하는 대한체육회와 가맹단체에서 선수관리 및 훈련시스템, 지원시스템 등을 획기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받은 부당한 처우를 공개적으로 강력하게 어필하기 위해 금메달을 따는 순간까지 노력하고 기다렸다는 안세영 선수의 절박한 울부짖음은 배드민턴협회뿐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체육단체에서 진정성 있게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안세영 선수의 외침은 금번 올림픽에서 메달획득에 실패한 다른 선수들의 간절한 외침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24년 파리올림픽이 마무리되고 있다. 아마도 금번 파리올림픽의 가장 큰 이슈는 대한민국 종합순위와 금메달 개수보다는 안세영 선수와 배드민턴협회 갈등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올림픽이 끝나면 선수와 협회 측의 진실공방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분쟁의 과정에서 승자가 얻는 전리품은 과연 무엇일까? 안세영 선수에게는 올림픽 금메달 이상의 사회적 정의를 관철시켰다는 희열감, 배드민턴 협회에게는 협회운영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무슨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대한축구협회와 배드민턴협회의 사례를 통해 대한민국 스포츠와 체육행정의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리고 2024년 파리올림픽 안세영 선수의 배드민턴 단식 금메달. 진심으로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