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산보다 높은 서기관 승진 도전기
2025년 7월 11일 오후 6시. 2025년 하반기 4급(과장급) 정기인사가 발표되었다. 신임 국장 업무보고 후 자리로 돌아와 컴퓨터 앞에 앉는데 우측 하단 메신저에 정기인사 공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번 주 과장급 인사를 예상했는데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 이스라엘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하는 전시작전처럼 기습적으로 밮표한 것이다. 공직사회에서 인사발령을 금요일에 발표하는 것은 탈락자들의 저항을 최소화하고 주말을 이용해 심신을 정비하며 승진자들에게 이동을 준비하는 인사부서의 고도의 전략이자 깊은 배려(?)가 숨어있다.
그런데 사무실 분위기가 조용하다. 순간적으로 이번에도 안되었구나! 하는 직감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간다. 승진자 명단에 들어있다면 자리로 와서 축하해 주고 반겨주는 것이 관행인데 사무실이 절간처럼 조용한 것이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상황이었다. 28년 공직생활의 짬으로 체득한 생활의 발견이다 不問可
인사발령 피일을 여는 것이 두려웠지만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마우스를 조심스레 클릭한다. 4급 과장급 전보대상자와 승진자 명단이 화면을 가득 채운다. 전보발령은 관심 없고, 승진자 명단에 눈길이 간다. 행정직렬 중 5급 사무관(팀장)에서 4급 서기관(과장)으로 승진한 인원은 총 11명이다. 내 이름이 있는지 재빠르게 스캔한다. 눈 씻고 찾아보아도 '김진욱' 세 글자는 보이지 않는다. 설마? 5번 이상을 확인해 보아도 내 이름은 없다. 순간 파일을 닫아버렸다. 분노의 감정을 느끼기에 앞서 부끄러움에 더 이상 자리에 얹아 있을 수 없었다. 주무팀장인 내가 승진해서 자리를 비워주어야 다른 사람이 오는데 순간 똥차 신세로 전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퇴근시간도 넘었고 빛의 속도로 자리를 정리하고 통근버스 주차장으로 향한다. 사무실에서 통근버스 주차장까지 걸어가는 10분이 10년처럼 길게 느껴지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길에서 누군가 만날까 두려워 고개를 숙이고 차량에 탑승한다. 뭔가 잘못되었겠지? 되새김하며 직원이 카톡으로 보내 준 인사발령 파일을 통근버스 안에서 조심스레 다시 열어본다. 사무실에서는 내 이름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면 이번에는 11명 승진자 명단을 찬찬히 확인했다. 2015년 사무관부터 2019년 사무관까지 승진하였다. 내가 2017년이니 나보다 2년 후임인 사무관도 3명이나 있다. 연차도 후배인데 나이도 한참 어리다. 뒤통수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듯하다. 저들에게는 무슨 도깨비방망이 같은 비책이 있길래 10년이 다 돼도 못하는 4급 승진을 6년 만에 할 수 있는 것일까? 혼자 되새김질하지만 그럴수록 속만 쓰리고 머리 아프며 스스로가 작아지고 비참해진다..
이번 7월 정기인사에서 서기관 승진을 기대한 것은 욕심이 아니라 충분한 이유가 있다. 2017년 5월 사무관 승진을 하였으니 금년이 사무관 9년 차다(팀장 근무기간 8년). 동기 중에서는 30% 이상 서기관 승진을 하였다. 2024년 1월 국 주무팀장으로 이동하여 3회 연속 근무성적평정과 가점 등으로 근평관리를 착실하게 하였다. 단체장 공약과 중점과제 추진 등 핵심사업도 성실하게 수행하여 민선 8기 성과들을 창출하는데 적잖이 기여하였다. 주변에서도 "팀장님은 이번에 승진하실 거다"라는 응원과 격려가 적지 않았다. 인사치레인 그 말을 모두 믿는 것은 아니지만 나름 열심히 일했다는 근거자료로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핵심사업부서가 아닌 기획, 자치, 행정 등 지원부서의 후배팀장들이 승진한 것을 보니 마음이 썩 좋지는 않다. "사촌이 땅을 살 때 배가 아프다"라는 말은 지금과 같은 살황을 빗대어하는 말인가?
솔직히 말하면 나는 처음부터 승진에 목매는 사람은 아니었다. 승진이 목적이라면 보직관리하고 네트워크 활용하여 나름 빠른 시일 내에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도 있었다. 그러나 좋은 사람들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는 웰빙을 만끽하는 것을 더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2024년 1월 재미있게 일하는 사람을 6개월 만에 어렵고 바쁜 부서 주무팀장으로 인사발령 낼 때 승진을 시키겠구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이후 조직에서 부족하지만 조직의 목표와 성과를 위해서 열심히 일해왔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계속 밀리는 것을 보면 그때 나를 왜 이 부서로 인사발령 냈는지 의아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돌이켜보니 내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퇴직이 2028년 6월이고, 공로연수 1년을 감안하면 직장 생활할 수 있는 시간은 총 2년 남짓이다. 이번에 4급 서기관 승진을 하였다 하더라도 직무수행기간은 2년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더욱 조바심이 났는지 모르겠다. 젊은 후배들의 승진에 속이 상한 솔직한 이유이다
"인사는 기관장의 고유권한이다"라고 말한다. 그 말에 반박하고 싶지 않다. 지난 정부 인서관리가 어땠는지 너무나 잘 알고 현재 국민주권정부 인사시스템이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을 보더라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 조직의 인사관리는 국가와 기업의 존립을 좌우하는 핵심적 기능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 4급 서기관은 조직을 운영하는 최소단위인 과의 운영을 책임지는 핵심보직이다.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 지역사회와 주민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막중한 자리이다.
2025년 1월과 7월 두 번 서기관 도전에 실패하였다. 인간이기 때문에 속이 상하고 쓰리다. 인사발령 소식을 접했는지 집으로 들어가는 길 지인들로부터 전화가 빗발친다. 위로와 격려의 전화일 것이다. 발신자만 확인하고 받지 않는다.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승진 조금 늦게 하는 것이 인생의 과오는 아니지만 가오 떨어지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2026년에는 가까스로 서기관 승진할지? 2027년 6월까지 사무관으로 백의종군할지? 그건 인사권자만 알 수 있다. 나는 주어진 시간 최선을 다하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하는 길 밖에 없다.
검사에서 중앙지검장, 검찰총장에서 대통령으로 초고속 승진했지만 구치소로 컴백한 윤석열 전 대통령과 칼 맞고 단식하는 등 모진풍파 겪으며 3번 도전 끝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당선한 이재명 대통령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고 금번 승진누락의 아픔을 성장통으로 승화시키는 인생의 지혜를 배양해야겠다.
이 글을 쓰며 구창모의 "아픈 만큼 성숙해지고"를 들으며 술 대신 쓰라린 가슴을 어루만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