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훈련소 제25연대 12중대 김 00 훈련병.
10월 20일(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국정감사, 10월 21일(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 수감준비를 위해 일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자정까지 2일을 사무실에서 야근하니 체력이 방전되었다. 50대 초반까지는 주 2회 밤샘근무도 무리가 없었는데 57세의 나이는 체력적으로 온전히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한다. 체력 회복과 정상적인 업무추진을 위해 수요일 하루 휴가를 내었다.
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나니 온몸에 피로가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간다. 아내와 딸은 출근하고 집 이곳저곳을 두리번 거린다. 발길이 갑자기 아들 방으로 향한다. 10월 13일 아들이 논산육군훈련소에 입소 후 아들의 방은 아내가 이용하고 있다. 평상시 같으면 아들이 웃통 벗고 대자로 누워서 자고 있을 공간인데 아무도 없는 빈 공간이 썰렁하게 느껴진다. 아들 책상에 앉아 책상 위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학교 전공서적, 그리고 각종 시험준비 서적들과 비품들로 가득하다. 논산훈련소 입소하기 전 준비물을 메모한 메모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동안 아들이 고민한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10월 12일, 논산훈련소 입소 하루 전 아들의 핸드폰이 고장 나다)
논산훈련소 입소 하루 전 교회에서 가족들과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린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아들의 장도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온 가족이 감사찬양을 올린다. 담임목사님의 축복기도와 성도님들이 따스한 격려로 사랑을 함께 나눈다. 입소 전 저녁은 아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에 양보하였다.
11시가 되어서야 아들은 집으로 온다. 내일 입소준비는 다 되었냐? 고 물으니 다 되었다고 담담하게 대답한다. 내일 아침 일찍 논산으로 출발하여야기에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거실에서 아들과 아내가 나누는 대화가 심상치 않다. 무슨 문제인가 확인하려고 거실로 나가보니 아들의 핸드폰이 비밀번호 오류로 잠겨버린 것이다. 갑자기 멀쩡한 핸드폰이 말썽을 부리다니 여간 당황스러운 일이 아니다. 늦은 밤 11시 AS센터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평소 같으면 욱하고 아들에게 성질을 내겠지만 내일 입대하는 아들에게 차마 그럴 수 없다.
내일 아침 논산시 AS센터 위치와 전화번호 확인하고 일찍 출발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나 그날 밤 한숨도 잠을 잘 수 없었다. 핸드폰이 고장 나면 입대 후 아들과 연락할 방법도 없고, 군인적금 등 가입 시 인증서 활용은 핸드폰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센터에서 고치면 다행인데 못 고치면 어떡하지? 여러 가지 상황과 걱정으로 입소 전 날 밤은 편안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마도 아들은 나보다 더 스트레스받았을 것이다
(10월 13일, 드디어 논산훈련소로 입소하다)
당초계획은 10시쯤 수원을 출발할 예정이었다. 훈련소 입소식이 오후 2시이므로 논산에서 점심까지 먹고 들어갈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아들의 핸드폰을 수리하여야 하므로 논산시 소재 AS센터 개점시간 10시에 맞추어 8시쯤 집을 출발하였다. 밖에는 주룩주룩 가을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다. 운전 중 시야확보가 힘들 만큼 비는 양동이로 퍼붓듯이 세차게 내린다. 아들 핸드폰 때문에 마음도 무거운데 비까지 내리니 입소식으로 향하는 차 안은 무거운 공기만 가득하다. 하필이면 훈련소 입소하기 전날 핸드폰이 고장날께 뭐람? 혼자 속으로 투덜거리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이가 없다.
그런데 9시 30분쯤 뒷좌석에 앉아있는 딸내미가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상담을 한다. 문제상황을 파악한 딸이 자기 핸드폰으로 아들 핸드폰 회사 고객센터로 전화를 한 것이다. 고객센터 직원은 딸 핸드폰으로 옆에 있는 아들이 본인임을 확인한 후 시리얼넘버를 불러주고 그것을 입력하라고 한다. 아들이 고객센터 직원이 불러준 시리얼넘버를 핸드폰에 입력하니 아들 핸드폰이 갑자기 살아난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홍해를 둘로 가르는 모세의 기적을 현실로 보는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아들과 딸, 아내는 손뼉 치고 환호성을 지른다. 나도 가슴속 깊이 감추었던 걱정과 두려움이 휴~ 하고 입 밖으로 나온다. 이제는 차창 밖 거센 빗소리가 은혜의 찬송가처럼 들린다.
(20분의 간소한 입소식, 준비되지 않은 이별)
오후 1시. 논산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에 도착하였다. 오후 2시에 시작되는 입소식에 도착하려면 입소차량 정체를 예상하여 1시간 일찍 도착해야만 한다. 논산시 건양대 근처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커피숍에서 차 한잔하고 입영심사대 도착하여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나는 1989년 단기사병(방위병)으로 입소하여 18개월 복무하였기에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지 못했다. 다만, 동생이 논산훈련소 입소하였을 때 오고 이번이 두 번째 오는 것이다. 시설규모는 웅장하고 깨끗하며 잘 정돈된 느낌이었다.
오후 1시 50분 이제는 아들과 이별해야 할 시간이다. 그런데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세차게 내린다. 연병장 근처에 도착하니 우천상황으로 연병장에서 입소식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연병장 스탠드에는 구역별로 입소생들이 모여있다. 가족들은 입소생들과 떨어진 별도의 좌석에 앉도록 현지 관계자들이 질서 있게 안내한다. 아들이 입소생 구역으로 들어가려고 하길래 나도 같이 따라 들어가자 기간병이 제지한다. "여기부터는 부모님은 들어가지 못합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이 순간이 아들과의 마지막 시간이었다. 손도 잡고 멋지게 포옹하며 훈련 잘 받으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마침내 아들은 입소생들 가득한 군중 속으로 들어갔고 그 무리들 속에서 아들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짧은 머리의 건장한 남자들 속에서 아들을 눈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었다. 연대장의 인사가 끝나고 입소식은 그렇게 20분 만에 마무리가 되었다. "가족들은 이제 돌아가라"는 방송 멘트가 어찌나 그리 잔인하게 들리던지.. 그 순간 돌아서려고 하는데 아들이 내 눈에 포착되었다. 이때다! 핸드폰으로 찍어야겠다 싶어 카메라 배율을 높이고 숨을 멈추어서 아들 얼굴을 향해 셧터를 눌렀다. 그래 이렇게라도 보는구나! 차 안에서 핸드폰도 고치더니 아들 얼굴도 볼 수 있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입영심사대 문을 나서며 입소식은 마무리되었다.
(10월 18일, 아들과 첫 통화를 하다)
10월 18일 오후 2시 지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시내를 걷고 있는데 아들 핸드폰으로 전화가 온다? "주성왕자" 분명 내 핸드폰에 저장한 아들의 닉네임이다. 헐! 전화를 받자마자 주성이니? 물으니 아들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 헐! 이게 어떻게된더냐? 자초지종을 물으니 "매주 주말에는 1시간씩 핸드폰으로 통화를 할 수가 있다"라고 한다. 신세대 장병들을 위한 군 당국의 배려가 돋보이는 시책이다. 편지에 익숙한 올드보이들과는 달리 카톡과 문자에 익숙한 신세대 장병들에게는 핸드폰은 소통 그 자체이기에 이를 차단하는 것은 신세대 장병들의 사기진작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군대도 환경의 변화에 따라 변해야 하는 조직인 것이다.
아들의 목소리는 밝고 씩씩했다. 훈련소 생활 1주일 아직은 모든 것이 낯설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 잘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목소리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육성으로 못한 이야기는 편지로 써서 카톡으로 보내면 일요일 확인할 수 있으니 향후 아들과의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인다.
(11월 19일 아들의 퇴소식을 준비하다)
아들이 입소하면서 가장 많이 찾게 되는 인터넷 사이트가 육군훈련소 홈페이지다. 훈련소 시설, 훈련병 생활부터, 훈련내용, 연대 배치현황, 행사일정, 훈련병 사진, 질의응답까지 상세하게 안내하고 있다. 병무행정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외부와 소통을 강화하여 장병들의 사기진작과 병영문화의 개선을 도모하려는 정책적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제 훈련 2주 차인데 벌써 퇴소식 날짜가 궁금하다. 홈페이지 확인해 보니 11월 19일 오전 10시 제25연대 퇴소식이다. 그때 비로소 잠시 외출이 가능하고 아들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벌써 가슴이 두근거린다. 퇴소식과 부대복귀 등 동선을 고려하여 논산훈련소 인근 펜션을 예약하고 먹을 메뉴를 고민한다.
(진짜사나이로 성장할 아들의 모습을 기대한다)
아들과 군입대 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초 사회복무요원 판정을 받았지만 입영일정 지연으로 학업과 취업 등 준비에 상당한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었다. 부득이 대학교 3학년 과정 마치고 1년을 휴학하며 입영일을 기다렸다. 결국 아들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지인들과 접촉하며 현역 기술행정병으로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속으로는 나는 아들의 현역입영을 원했기에 아들의 결정에 만족한다. 아빠가 현역 복무를 이행하지 못한 대리만족이랄까? 그러나 그것보다 아들이 현역복무를 통해 지금보다 더 단단하고 깊이 있는 젊은이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 간절했기 때문이다. 11월 19일 퇴소식에서 군복 입고 거수경례하는 아들의 모습이 기대된다. 오늘은 아들이 무척 보고싶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대한민국 젊은이들. 당신들이 진정한 애국자입니다. 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