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 살이를 마무리하며

성수동 거주 6년. 나의 신혼집이 있던 곳.

by 흰눈썹

2017년 3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오래 살았다면 오래 살았다. 성수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앞두고 아쉬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성수동에서의 추억을 기록해 본다.


결혼을 석 달쯤 앞두고 신혼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송파구, 강동구를 먼저 돌다 마지막으로 본 곳이 성동구 성수동이었다. 어떤 동넨지는 몰랐고 그저 지도상으로 봤을 때 나와 남편 회사의 딱 중간지점이라는 점, 지하철 더블 역세권이라는 점에서 후보지가 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부동산 직거래 카페에 올라온 예쁜 집 사진에 반해 보자마자 바로 결정해버렸다.


신혼집 보러 간 날 마주한 성수동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지는 않았다. 집 앞 도로와 나란히 서 있는 지하철 지상 구간의 우악스럽고 커다란 다리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웬걸, 살다 보니 동네 자체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 신혼부부의 성수 살이 - 성수의 변화를 지켜보다

우리의 신혼집은 뚝섬역에서 6분, 서울숲역에서 8분 거리다.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서울숲, 문화체육센터, 도서관... 웬만한 관공서도 다 가깝다. 동네 자체가 서울 가운데쯤에 위치해 어디를 가더라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편과 골목골목 숨은 보석 같은 공간 찾는 재미도 쏠쏠했고 주말에는 집 근처 구민체육센터에서 같이 수영도 배웠다.


마침 우리가 성수 살이를 시작했을 때가 성수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때였다. 밖에 나올 때마다 '이런 곳이 있었어?', '여기 없어졌네?' 소리가 나올 정도로 매일 같이 새로운 공간이 들어서고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한때 가정집이었던 곳들은 주택을 개조한 카페와 식당이 되었다. 공사 소음이 있긴 했지만 변화무쌍한 성수는 너무 흥미진진했다. 과거 공장지대에서 도시재생의 상징 같은 곳이 되기까지 동네가 가진 스토리도 사랑스럽고.


어느새 성수동은 '서울의 브루클린'으로 불리며 힙하고 핫한 동네가 됐다.(브루클린 안 가봐서 의미는 모름)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가게에도 사람들이 줄을 섰다. 동네 주민 입장에서 저긴 줄 설 정도는 아닌데~ 싶은 곳에까지. 익선동이나 서촌 주민들이 이런 기분일까?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북적이니 관광지에 사는 것 같기도 했다.


슬슬 올리브영이 들어올 때가 됐나 싶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성동구청이 나서서 서울숲 부근 주택지역을 젠트리피케이션 없는 동네로 지정하고 대기업이 진출하지 못하게 했다. 덕분에 골목 상권 망테크의 흔한 과정인 올리브영이나 이니스프리의 입점 없이 골목 특유의 분위기가 유지될 수 있었다.(성동구청 일잘함 인정하는 부분...)


공장과 공업사뿐이던 성수에 젊은 회사도 많이 생겼다. 특히 스타트업과 사회적 기업이 우르르 들어왔다. 카우앤독, 헤이그라운드, 패스트파이브, 스파크플러스. 앞으로도 몇 개나 더 지어질지 모를 공유오피스와 지식산업센터. 누구나 알만한 회사로는 쏘카, SM, 무신사, 크래프톤... 이 동네 갑자기 왜 이래?


나 같은 사람에게 성수는 일자리 천국이긴 했다. 신혼 초에 이직을 준비하다 아이 낳고 나서도 계속 일하고 싶어서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의 회사로 옮겼다. 퇴근하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우리 집에 가고 싶어서 매일 집까지 뛰어갔다. 정말, 말 그대로 뛰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게까지 좋았나 싶다.



| 아이와 성수 살이 - 엄마가 더 재밌는 성수

그렇게 1년 신혼생활을 하다 계획했던 시점에 임신에 성공! 쌍둥이를 낳았는데... 후둥이에게 장애가 생겼다. 출산 이후에는 평범하게 살 수 없게 되었고 일도 그만둘 수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간에 성수가 좋긴 마찬가지였다. 후둥이가 주로 다니는 병원까지 그리 멀지 않았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서 재활치료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건강한 선둥이와 같이 놀 수 있는 곳도 무진장 많았다. 에스팩토리에서 과학축제나 로봇박람회 같은 재미있는 행사가 수시로 열렸다. (사실 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행사는 아니어서 갈 때마다 최연소 관객으로 주목받음...) 새로운 전시나 팝업스토어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리면 애보다 내가 더 신나서 달려갔다. 더서울라이티움에서 어린이 공연을 보기도 했다. 날씨가 좋을 땐 서울숲, 정말 정말 할 일이 없을 땐 이마트 본점에 데리고 갔는데 매장도 크고 시식하는 재미가 있어서 좋아했다. 올해 다섯 살이 된 아이는 자기가 나고 자란 성수동에 애착이 생겼는지 이사 가지 말자고 한다.



| 성수 살이를 마무리하며

그칠 줄 모르고 오르는 집값과 학군 문제로 이사하는 사람들. 성수 살이에 만족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성수에서 계속 살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내내 아쉬웠다. 이런 얘길 사람들에게 했더니 누구에게나 내가 지금 사는 동네가 최고라고 한다. 새로운 동네에 이사하면 그럴 수 있을까?


서울 올라와서 가장 처음 살았던 동네는 반포동이었지만 신혼집이 있었던 곳이라 그런지 성수동이야말로 나에게 서울에서의 고향 같은 곳이다. 누군가 성수에 대해 이야길 꺼내면 “거기 다 논밭이었어!” 하던 어른들처럼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살았던 건 10년도 안되지만 성수의 변화가 그만큼 빨랐으므로.


남편과 나는 돈 많이 벌어서 성수동에 다시 오기로 했다. 서울숲이 잘 보이는 높은 곳으로. 이사 후에도 종종 보러 올게. 잘 있어라, 성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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