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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cob Lee 이택동 Apr 17. 2023

어머니 자서전에 얽힌 이야기

87세 무학력 어머니가 한글을 배우고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까지...

고난의 역사와 함께 한 인생

누구든 책을 쓰고 싶어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특히 연세가 80을 넘겨 90에 가까우면 더욱 그럴 것이다.

더욱이 공적인 학력은 전무한 할머니가 자신의 한 많은 인생살이 이야기를 글로 옮긴 것에 자손들이 무척 놀랐다. 여기 나의 어머니가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기까지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려고 한다.


36년생 어머니는 지금은 북한땅인 개성근교에서 태어나셨다. 당시 일제치하에 있었으니, 당연 일보말을 사용했을 텐데, 할아버지가 일본말을 못 배우게, 공민학교 대신 집에서 "하늘천 따지 검을 현 누를 황..." 한문만 소리 내 읽혔다고 한다. 그러다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 통에 학교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식모살이를 했단다.

여기서 어머니 인생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한 여자의 일생이 시대를 잘 못 만나, 큰 사건들과 마주했지만, 한 남자를 만나고, 결혼해 가정을 꾸리는 소소한 인생을 살았다.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어머니가 까막눈이란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어머니는 지혜로우셨다. 내가 성인이 되고, 결혼한 후에 아내가 어머니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학원에도 보내, 새로운 눈을 뜨셨다.

교회에 나가시며, 성경을 읽고, 필사도 하셨다. 그래도 자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남기겠다는 생각을 하긴 쉽지 않았을 터인데...


무학력의 어머니가 책을 쓰다

어머니가 일기를 쓰고, 자신의 이야기를 틈틈이 쓰고 계셨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어머니는 3년 전에 림프암 판정을 받고, 하반신을 못쓰시게 되었고, 집에서 돌보기 어려워, 형제들이 의논해 가까운 양로원에 입원해 계신다. 어머니를 면회할 적마다, 자신의 이야기로 책을 내고 싶다는 말씀을 하셔서, 뭔 쓸데없는 말씀을 하신다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어머니의 채근은 잦아졌고,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이야기를 누군가 녹음하고, 글로 옮겨야 하는데, 누가 그럴 시간을 내겠는가! 그러나 어머니가 당신이 써놓은 종이가 어머니 책꽂이에 있다고 하신다.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어머니 말씀대로 책꽂이에 또박또박 연필로 쓴 손글씨가 A4지 40여 장이 있다.


소원대로 글이 책으로 출간되다

형제들이 어머니의 소원대로, 조카에게 이 글을 워드로 옮기라 하고, 내가 맞춤법대로 교정하되, 어머니가 쓰신 원본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여기에 어머니앨범에서 어머니 사진들을 스캔하여 미디어파일로 변환하고, 형제와 조카들에게 할머니를 기억하며 편지를 쓰도록 했다. 내가 먼저 편지글을 쓰고, 형제들에게, 조카들에게 독려하여 모두 참여하였다. 여기에 책을 구성하려면, 작가(?)가 누구인지, 각 단원마다 소제목도 달고, 그에 어울리는 사진도 배치했다. 마침 잡지사 표지 디자이너인 외사촌 동생이 있어, 책표지와 편집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도와주었다.

이렇게 해서 종이책을 20권 인쇄해, 형제들이 모두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자서전 헌정식을 가졌다. 어머니는 실감이 나지 않는지, 이게 무어냐고 계속 물으신다. "어머니가 쓰신 글을 책으로 출간했어요", "여기 어머니가 자주 들려주셨던 이야기, 어머니가 쓰신 시, 글이에요, 맞지요!" 그제야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도 빠짐없이 실렸는지 물으신다.


어머니의 사랑

어머니는 왜, 자신의 이야기를 자손에게 남기려 했을까! 사실 우리 형제들이 어머니가 요양원에 들어가시고, 각자 면회는 다녔지만, 서로 왕래가 뜸해 소원했었는데, 이를 계기로 형제들이 한마음이 될 수 있었고, 다시 부모님이 계실 때처럼 자주 소통하며, 왕래하자고 했다.

어머니가 한평생을 고생하시면서도 자식들에게 헌신하셨는데, 형제들이 하나 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셨는가 보다. 어머니, 감사하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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