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새롭게 등장한 많은 용어들 가운데 ‘covidivorce’ 란 신조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뜻은 ‘코로나 이혼’ 이란다.
난 이혼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결혼을 한 적이 없으니, 이혼을 할 턱이 있나.
남들은 두 세 번은 너끈히도 잘만 가는 세상에, 난 그 한 번도 갔다온 적 없으니, 결혼생활이 정확히 어떠한지 말하는건 정말 어불성설 아닌가. 하지만 적어도 다년간의 연애경력과... 아무리 연애를 질적으로 양적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큼 했다 손 쳐도 결혼이란 혼인서약과 더불어 거행되는 갖가지 나와는 다른세계의 일들은 아는 척 하는 건 그만두기로 하고,
무튼! 남녀가 24시간을 붙어 지낸다는 게 어떤건지, 그게 하루, 일주일 한 달이 넘어가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 왜 저런 신조어가 코로나 사태 이후 만들어졌는지 조목조목 캐보지 않아도 우린 딱 감이 오지 않나. 슬프지만 현실이다.
남녀는 말이지...없으면 죽고 못 살거 같은 순간을 얼마나 지속시키는가가 연애의 승패를 좌우하는게 아니라, 서로에게 얼만큼의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사이로의 시간을 인정하는지, 사랑의 열정이 중요한 만큼 자유를 만끽하고자 하는 인간으로서의 욕구 또한 긍정해 줄 수 있는 사이. 물론 이 부분 때문에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삶의 통과의례와도 같은 절차 아니던가.
사랑, 연애, 결혼은 갖가지 변수와 복병들이 많기에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식장까지 들어가 바야 안다는 말도 이젠 옛날 말 아니던가. 결혼하고도 어찌될지 몰라 혼인신고를 미뤄두거나, 좀 살아보고 결정하겠노라 동거족들도 늘어나고 있고, 굳이 결혼 따위를 할 필요가 있는가 비혼족들의 싱글라이프 예찬도 이젠 평범한 얘깃거리에 지나지 않는 세상이다. 이럴 때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24시간을 붙어있게 되는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면, 정말 호흡곤란에 신경쇠약마저 올 지경에 까지도 이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재택근무와 육아분담을 실행하다 보면, 같은 공간 안에서 복닦거리며 종일을 쉴틈없이 서로에게 잔소리하고, 싸우고, 후아~박터지게 사랑을 해도 하루가 모자랐던 때는 기억 저편으로 가물거리는 마당에 동지애와 전우애로 이어가는 부부생활 속에 더 애정이 샘 솟을 일은 결코 없을거같다.
왜냐하면 분명 인간은 누구나 혼자 있는 시간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있다고 믿는 사람 중 하나인 나로선, 생각만으로도 좀 끔찍스러운 건 사실이다. 아무리 친한 친구, 사랑하는 엄마, 애정하는 남친, 여친이라 할지라도 하루종일 같이 붙어있으라면, 나중엔 서로를 견디기 위한 시간이 줄창 일 것이다.
맘먹고 갔던 여행지에서도 툭탁거리고 한 번이라도 싸우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이란 존재다 우린... 집에서 일해야지, 애들 신경써야지, 여친 신경써야지, 남친 밥해줘야지, 남편 시중 들어 줘야지, 와이프 눈치 봐야지 등등...역시 사람 사이 만큼 예민하고 기분을 오르락내리락 하게 하는 게 무엇이 있나 싶을 정도다.
동거족과 신혼부부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현재 나의 좌표는 싱글족이라 칭하자면, ‘혼자가 너무 편해요’ 라고 ‘만세 만세 만세’ 라고 삼창을 외쳐대고 싶지만, 난 사실 사랑하는 사람과는 머리 끄댕이를 잡고 싸우건, 24시간 붙어있어도 마냥 좋아할 타입이라ㅡ나이가 들면서부턴 죄다 귀찮아진다가 정답ㅡ 남친이 밀어내지만 않는다면 껌딱지처럼 온몸 어딘가에 붙어있을 수 있다. 섬뜩하게 들리겠지만, 어떤 때는 팔다리 묶어놓고 나만 보고싶을 때가 많았기도 했고, 사랑꾼으로 칭하긴 좀 병적으로 들려 무섭긴 하다.
난 아무리 싸워도 밥도 같이 먹어야 하고, 분노의 감정을 라이스 케잌(?)으로 승화 시키든 어쩌든, 잠도 같이 자야하고, 절대 등 돌리고 자는 건 안된다! ‘남자가 참 피곤하겠군’ 하겠지만, 하늘에서 내려준 백단의 눈치가 초롱초롱 살아있기에, 알아서 능숙한 낄낄빠빠로 아늑하고 편안하게 궁디 토닥토닥 해주며, 피 말리는 거머리가 아닌, 이쁜 껌딱지 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물론 이것 역시 나만의 착각일 수있다는 게 싱글이면서 솔로, 솔로이면서 싱글인 사람들의 비겁한 변명이자 궁색한 연애놀음이기도 한듯.
남녀는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서로가 질리고, 귀찮아지고 혼자 있고 싶어지는 때는 분명 있다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된다. 이해와 배려가 달리 있으랴.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믿음의 또 다른 표현 아닐까.
아빠는 늘 말씀하셨다. 달갈이 왜 신비한지에 관해 그림도 그려주시며, 설명하셨지.
살기 위해 누구나 이렇게 숨구멍을 트여놔야 한다고. 요즘은 데이트 후에 각자 집으로 귀가하느라 시간낭비, 돈 낭비도 싫고, 따로 사는 게 집세 나가는 것도 아까우니, 그냥 합치자 일단 그런 커를들도 많아지고, 또 성 역할 또한 많이 바뀌어 나가고 있어서 육아 일과 가사일을 남자가 맡고, 여자가 돈을 벌러 나가는 가정도 손가락질의 대상이 전혀 아니며, 분담의 역할을 서로 각자가 알아서 수행 해 알뜰한 살림에 보탬이 되게 열심히들 살고 있지 않은가.
이럴 때 일수록 짜증 섞인 말 한마디, 잔소리가 얼마나 스트레스를 주는지, 안 그래도 버티는 삶에 덜어주지는 못 할 망정 보태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잔소리 대마왕들, 프로 짜증러들을 위해 ‘칼릴 지브란’ 의 시를 끝으로 마무리 할까한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 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 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즐거워 하되 서로는 혼자 있게 하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줄은 서로 혼자 이듯이. 서로 가슴을 주라. 그러나 서로의 가슴 속에 묶어 두지는 말라. 오직 큰 생명의 손길만이 너희의 가슴을 간직할 수 있다.
함께 서 있으라. 그러나 너무 가까이 서 있지는 말라.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과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