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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랑 Oct 29. 2023

스웨터 다시 뜨기

잘 못 뜬 스웨터를 고쳐 입을 수 있을까요?


 취미 부자인 내게, 가을은 뜨개질의 계절이다. 실 몇 가닥을 엮어내는 것만으로 포근한 편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은, 여러 번 뜨개질을 해본 입장에서도 신기한 일이다. 도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인지 스웨터나 카디건 하나가 뚝딱 만들어져 있을 때는 과장을 좀 섞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뜨개질은 생각보다 인고의 과정이다. 사람들은 내가 뜨개질을 하는 걸 알면 본인을 위한 스웨터를 만들어 달라고 한다. 뚝딱하면 스웨터가 만들어지는 줄 아는 모양이다. 하지만 해본 사람들만 안다. 스웨터를 뜨는 것이 웬만한 정성과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작년 겨울에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스웨터가 있다. 그 스웨터를 처음 만들기 시작할 때는, 단조로운 무늬는 지겹다며 여러 가지 무늬를 넣은 도안을 찾아 완성하려고 했었다. 스웨터 도안은 아주 화려했다. 니트 하나에 보여줄 수 있는 기술들은 모두 다 넣은 듯한 그런 스웨터였다. 그런데 무늬를 만드는 일이 어찌나 신경 쓸 것이 많은지,  그만 해를 넘겨버리게 된 것이다.


 스웨터를 만들면서 문제를 발견했는데 애써 모른척한 것이 있었다. 문제의 발단은 이러했다. 스웨터를 만들기 전에 도안을 내가 가진 실의 크기에 맞게 도안을 수정하지 않으면 스웨터가 내가 원하는 사이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처음 떠보는 꽈배기가 잔뜩 들어간 디자인에 압도된 나는 애써 이 과정을 무시했다. 패턴을 떠서 도안 사이즈와 내 패턴의 크기가 맞는지 비교하는 일을 꼭 해야 할까, 생각하기조차 겁이 났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으로 인해서 스웨터의 모양은 예상과는 점점 달라지기 시작했다. 500그램짜리 실을 다 사용했음에도 실이 부족해서 여분의 실을 사용해야 했다. 스웨터의 무게는 1kg에 육박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가 막힌 점은 아직 소매를 달지도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몸통만 입어보았는데도, 코트를 입을 수 없을 정도로 옷이 너무나 무거웠다. 스웨터를 입으면 저절로 말린 어깨가 된다니. 저절로 거북목이 되어서 바다로 나아가야 할 정도라니.


 문제는 무게만이 아니었다. 스웨터의 크기가 너무 커져서 풍채가 좋은 남자 사이즈가 된 것이었다. 스웨터를 입어보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아이가 된 것 같았다. 그러면 사이즈가 맞을 수 있는 아빠에게 줘도 되지 않냐고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문제는 스웨터의 색깔이 말도 안 되게 깜찍한 라일락 색이었다. 가뜩이나 까만 아버지를 흙톤으로 만들고도 남을 컬러였다. 게다가 아무리 불효녀라고 해도 아버지께 1kg짜리 스웨터를 선물하여, 환갑이 넘은 아버지 승모근의 근성장을 도울 이유는 없었다.


소매도 달지 않은 거인의 스웨터


 나는 고민에 빠졌다.


 1) 계속 떠서 거인 사이즈의 스웨터를 만든다.

 2) 만들어온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만 버린다.

 3) 실을 풀어서 심플한 디자인의 스웨터를 뜬다.



 그리고 나는 4번을 선택했다. 4) 모른척하고 처박아 둔다.


 그렇게 시간은 다시 봄, 여름을 지나 가을이 되었다. 다시금 뜨개질의 계절이 돌아오니 방 한편을 흉물처럼 차지한 스웨터를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어졌다.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다 풀고 심플한 디자인의 스웨터를 뜨기로 결심했다. 그동안의 시간과 노력이 아깝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준비과정에서 사소할 수 있다고 실수를 한 결과, 눈덩이처럼 커진 결과는 나를 압박했다. 스웨터가 처음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을 알았을 때 미리 풀었다면 이처럼 많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껏 뜬 스웨터가 입을 수 없게 만들어진 것을 알았을 때 풀 수 있는 것도 큰 용기인 것 같다.


 요즘은 쌓아온 커리어가 다 소용없는 것은 아닐까, 새로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하는 고민에 잠을 못 이루곤 한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스웨터를 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내 몸에 맞지도 않고, 누구에게 줄 수도 없는 거대한 스웨터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늦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하다.


 망쳐버린 스웨터를 다시 뜨며 인생을 생각했다. 지금 이 스웨터를 고치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맞도록 커리어를 수정해 나갈 수 있기를. 못 입게 된 스웨터를 뜨면서 여러 가지 기술들을 배운 것을 다른 스웨터를 뜰 때 써먹을 수 있는 것처럼, 지난 커리어에서 배운 기술들도 다른 커리어를 만들어갈 때도 활용할 수 있었으면 좋겠노라고 바랐다. 그 시간과 노고가 나에게 남기고 간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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