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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랑 Mar 13. 2024

잿빛 인생

단조로운 일상 속 소재 찾기

 컴퓨터 앞에 앉아 몇 시간 째 머리를 쥐 뜯었다. 에세이의 소재를 찾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다니.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소재의 신이 나에게 미소 지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작년에는 매주 한 편씩 52개의 에세이를 썼었는데, 지금은 삶에서 흥미로운 소재를 하나도 발견할 수가 없다. 결국 글쓰기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절필을 해야 하나보다. 재능은 부족하지만 성실함 하나로 꾸준히 에세이를 써보고자 했던 다짐은 여기서 끝나는 걸까.


 복직을 하니 일상은 단조로워졌다. 아침에는 정신은 반쯤 나간 상태에서 껍데기 뿐인 몸을 이끌고 일터에 간다. 일을 하다보면 화장실에 가는 것도 잊을 때가 많다. 때로는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집에 온다. 복직 전에는 퇴근 시간이 이른 편이라 집에 오면 무언가 할 수 있을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내가 집에 와서 주로 하는 일은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다. 온몸이 다 아파지기 때문에 서있거나 앉아있을 수 없다. 그러고는 어떤 생산적인 일은 하지도 못한 채 한심하게 유튜브만 보면서 저녁 시간을 보낸다. 내일 또다시 출근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도저히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일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 또 희로애락을 느낄 여유도 없는 존재. 글을 쓰기 위하여 잿빛 그 자체인 삶을 더듬거렸다.


 작년에는 총천연색이었던 일상을 보냈다. 핸드폰으로 꽃 축제 사진을 보는 지금과 달리 작년 이맘때에는 노란 산수유가 가득 핀 구례에 갔었다. 평일의 지리산은 고즈넉했다. 몇몇 은퇴하신 분들과 함께 고요히 자연을 누릴 수 있는 한가로움에 감사했다. 그 외에도 휴직 중에는 친구들과 함께 초록빛의 공원으로 피크닉을 가서 와인을 마신다든지, 홀로 어두운 푸른빛의 강가에 앉아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삶이라는 도시락을 열었을 때 좋아하는 반찬들로만 가득 차 있었다. 다음날을 기대하는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에 하루에 한 편씩 글을 쓰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작년을 생각하고 에세이 강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나는 변했다. 아니 내 일상이 변했다. 삽시간에 색을 잃어버린 삶을 살다 보니 일주일 동안 무슨 글을 쓸까 머리를 쥐 뜯어도 인생이 너무 고된 것 같다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어영부영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제출하고 보니, 피드백을 받는 시간에는 부끄러워졌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께 물었다. 미문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고. 선생님은 대답했다. 책을 많이 읽으세요. 아하. 그렇군. 그리고 나는 다시 침대에 누웠다. 무엇을 읽을 기운도 의지도 없다. 하지만 미문을 쓰지 못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정말 묻고 싶었던 것은, 선생님 소재는 어떻게 찾아야 하나요? 제 인생은 너무 의미가 없어 보이는걸요.


 일상에서 글을 쓸 소재 찾기는 왜 이리 어려운 것일까. 하지만 휴직은 특별한 일이었고 일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먹여살려내기 위해서, 앞으로도 평생을 지금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삶이 시시콜콜한 불행과 말하기도 민망한 소소한 기쁨으로 채워져있을지라도 쓸 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은 쓰는 이의 숙제일 것이다. 내가 그런 것을 해낼 수 있을까. 평범한 삶에서도 보석 같은 것들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있을까. 지금은 잿빛 인생을 살고 있긴 하지만, 그 속에는 사실 총천연색이 숨어 있을지도 몰라하고 억지로 희망적인 생각을 하려 애쓰며 나는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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