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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란 Apr 21. 2023

이해할 수 없는 일과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이천이십삼 년 사 월 십구 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그냥 외출. 이유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목적이 그다지 크지 않은 외출. 나는 그런 외출은 거의 하지 않지만 왠지 이번에는 그러고 싶었다. 외출의 시작점부터 달라서 그랬을까. 유난히 많이 꼬인 하루였다.

 

집을 나서기 전에 늘 지도 앱으로 버스가 오는지 확인한다. 밖에서 핸드폰도 보지 않고 버스를 기다리는 건 지루하니까. (야외에서 핸드폰을 보려면 화면도 최대한으로 밝게 해야 하니 환경에 좋지 않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최대한 늦게 집을 나서서 버스 정류장에 가 보면 거의 이삼 분 뒤에 버스가 온다. 그런데 이 분 뒤에 온다던 버스가 갑자기 증발했다. 정말 아주아주 가끔 있는 일이 그날 일어났다. 고장이 난 걸까. 이유는 모른다. 다음 버스를 타려면 십 분 이상 다시 기다려야 했다. 그럴 바에는 걸어가는 게 더 빨랐다. 걸을 일도 많은 날 아침부터 좋아하지 않는 유산소 운동을 했다.


지하철역까지 걸어가다가 열차를 놓쳐서 또 십 분을 기다렸다. 그럴 수 있었다. 출근 시간이 이미 지났으니 말이다.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튼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내게 익숙한 공간이다. 코로나 때문에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던 시기를 제외하고도 이 년 반이나 지하철을 타고 거의 왕복 네 시간 가까이 통학했었으니까. 통학할 때는 아침 일찍 일어나 늘 피곤했기에 지하철에서 잘 잤다. 졸업한 뒤로는 잠이 예전처럼 부족하지 않아서 그런지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래서 주로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멍 때린다. 내려야 할 역이 가까워지면 이마저도 하지 않는다.


그날 역시 그랬다. 졸지도 않았고 핸드폰을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쳤다. 이번 역은 어디라는 안내 방송이 분명 나왔을 텐데 듣지 못했다. 나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났다. 그저 그렇게 일어날 수 있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큰 목적 없이 외출하기로 결정했듯이. 가끔은 나답지 않아 보이는 행동을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나였던 것처럼.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할 필요도 없는 일들. 그런 하루가 새롭게 한 겹 쌓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일어난 날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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