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아이들과 여름방학을 보내며
6월 첫째 주 금요일에 시작해서 무려 74일간 이어진
미국 초등학교의 여름방학.
그 기나긴 방학도 이제 딱 이틀 남았다.
처음 방학을 시작할 때는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나’ 막막했었는데,
아이들과 어울려 신나게 놀다 보니 이제는 방학이 끝나는 게 아이들 못지않게 아쉽다.
여름방학이 워낙 길다 보니, 미국에서는 여기저기 다양한 곳에서 여름 캠프를 운영한다.
프로그램도 다양해서 수영, 축구, 테니스 같은 스포츠부터 시작해서 그림이면 그림, 악기면 악기, 어학이면 어학.. 원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특히, 바닷가에서 직접 배우는 서핑 강습이나 미국의 자연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캠핑처럼 한국에서 접하기 힘든 프로그램들은 한 번쯤 참여해보고 싶을 만큼 솔깃했다.
주변에서도 여름방학 동안 내내 아이들과 집에서 붙어있는 게 쉽지 않을 거라며 캠프에 보내기를 적극 추천했다.
현지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영어회화가 늘 수 있는 기회라는 조언과 함께.
주변에서 다들 방학 때 캠프 한두 개 정도씩은 보내는 분위기라, 처음엔 우리 부부도 아이들을 어디든 보내야 하나 고민이 됐다.
캠프 일정과 비용을 보니, 보통 수업이 2주 단위에
우리나라 한 달 치 학원비보다 더 비싸긴 했다.
그래도 미국까지 왔으니, 아이들에게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하지만 비용은 둘째 치고, 무엇보다 아이들이 완강하게 거부했다.
방학만큼은 마음 편히, 집에서 쉬면서 미국 생활을 마음껏 즐기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한국에서도 우리 집 방학은, 말 그대로 '학업을 쉬는 기간'이었다.
선행이나 부족한 학업을 메우기 위해 따로 학원을 보내지도 않았고, 맞벌이를 하면서도 유치원생이던 둘째를 돌봄 교실을 보내는 대신 집에서 돌봤다.
어릴 때 우리가 그랬듯, 방학 때만큼은 학교와 학업의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집에서 쉬면서, 마음 편히 원하는 걸 할 수 있게끔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랬던 아이들이 미국에 왔다고 방학 기간에 캠프를 간다고 할 리가 없었다.
학습과 관련이 없는 운동이나 취미 활동 관련 캠프들도 마다했다.
그렇다고, 긴 시간을 마냥 집에서 아깝게 보낼 수는 없었다.
'그래! 우리가 언제 이렇게 오랫동안 같이 시간을 보내겠어.
캠프 보낼 돈으로 아이들이랑 미국 구경이나 실컷 하자.'
이런 마음으로, 미국에서의 길고 긴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그리고 지난 70여 일의 시간 동안 우리는,
암트랙을 타고 나이아가라와 뉴욕까지 기차여행을 다녀오고,
45도가 넘는 뜨거운 그랜드캐년 사막을 누비기도 했으며,
캘리포니아 1번 도로를 따라 해변의 도시들을 거닐었다.
끝없이 펼쳐진 협곡 사이로 해가 뜨고 지는 모습과
캄캄한 사막 한가운데서 쏟아질듯한 별들을 보며 감탄했고,
한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가운 바다에서
추운 줄도 모르고 해가 질 때까지 해변에서 모래놀이를 즐기기도 했다.
눈에 담기는 풍경들은 때론 눈물이 날 만큼 경이로웠고,
그 속에 우리는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행복했다.
우리 생에 주어진 행복한 순간들을 너무 한 번에 다 써버리는 게 아닌가,
문득문득 불안이 찾아올 정도였다.
그러다가도,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면
저 눈과 마음에 이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구나 싶어, 마음이 벅차올랐다.
미국에서의 여름방학을 '머리에 무언가를 채우는 시간'이 아니라,
'눈과 마음에 소중한 무언가를 채울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어서 다행이다.
평생을 두고 아이들과 꺼내볼 수 있는 추억들이 선물상자처럼 쌓였으니
이보다 멋진 방학이 우리 생에 또 있을까.
끝나가는 방학이 아쉬운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나 역시, 지난 시간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