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고통 그 자체로 머물면서 절대 우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은 아픔과 괴로움을 주지만 극복할 힘도 준다. 그렇게 얻은 힘은 고통을 보살피고 아픔을 연습하며 새로운 힘을 얻는다"
헤르만 헤세의 삶을 견디는 기쁨 중 p109
엄마는 내 삶의 많은 부분에서 나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IMF때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주셨다.
하지만, 한결같이 차가운 말투와 지나치게 엄격한 태도, 무표정은 내게 큰 돌덩이 같은 답답함을 주었고 아직도 나의 쓴 뿌리이다. 그저 엄마를 비판하고 싶지 않지만, 엄마의 영향으로 인해 겪는 감정은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아들이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으로 입원하게 되면서, 병실의 엄마들과 자연스레 관계가 형성되었다. 겉으로는 즐겁게 대화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뒤돌아서면 그 관계가 깊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특히 한 엄마의 아이를 향한 차가운 말투가 나의 엄마와 겹치면서 피해야겠다는 뇌의 명령이 1초 간격으로 내려왔다. 이런 현상은 나를 괴롭혔고 아들 간호에 타격을 줄 정도로 불편감이 커졌다.
물감과 물감이 섞이듯 경계선이 마구 얽혔다.
연락처 공유를 원하는 그 엄마에게 주고 싶지 않은 나의 마음은 깊은 과거의 상처와 연결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나의 엄마는 나에게 매우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셨다. 몸이 아프든,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감정이나 상태보다는 상대에 대한 예의를 우선시하였다. "너는 항상 이렇게 해야 해"라는 식의 말은 결국 내가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각인되었다. 결국 비슷한 상황에서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만들었다.
남편은 병실에서 다른 부모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아들을 위해 그들과의 연결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과일을 나눠주며 친분을 쌓으려 노력했지만, 난 그런 모습이 너무 불편했다.
난 접촉은 최소한으로 하며 나의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여기서 온 화는 자연스레 남편에게 향했고, 불만이 쌓여 다른 일에 틱틱거리게 되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남편의 의도는 내게 부담을 주려던 게 아니었다. 여기서 생각을 멈추고 경계를 설정하며 그와 나의 감정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림자는 빛의 방향에 따라 변한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나 거부감은 단순한 감정이 아닌, 나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자연스럽고 정중하면서 단호하게 의사를 밝히고 편한 범위 안에서 소통하는 작은 연습을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관계의 범위에 대해 생각해 본다. 불편한 관계를 피하는 것은 때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훈련을 통해 나의 의사를 정중하고 단호하게 표현해 가며 내 영역을 지킬 것이다.
오늘 퇴원시키러 병원에 간다. 마주치게 될 그 사람이 나의 연락처를 물어본다면 난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