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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은 Nov 01. 2023

UCAT 시험의 실체

영국 의대 자격시험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 볼까? 고민하다가, 슬슬 영국 의대 자격시험들에 대해서 설명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제가 이번 해 9월에 보았던 시험인 UCAT, 통칭 유캇 시험에 대한 설명입니다.

    유캇은 영국 대부분 대학교들의 의학, 혹은 치의학 과정에 지원하기 위해서 추가로 필요한 자격시험입니다. 이 시험 성적을 요구하는 학교들로는 King's College London, University of Edinburgh와 같이 유명한 대학교들부터 QUB, University of Aberdeen, University of Manchester 등과 같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한 대학교들도 있습니다. 확실한 것은 BMAT 시험 점수를 사용하는 학교들의 수보다 UCAT 성적을 사용해서 학생들을 판단하는 학교들이 훨씬 많다는 것입니다.

    유캇 시험은 총 다섯 가지 영역으로 나뉘어 있으며, 총 2시간 동안 진행되는 시험이고, 대개 7월부터 9월 사이에 바라는 날짜를 선택하여 신청한 후 시험장에 직접 방문하여 치게 되는 시험입니다. 시험은 모든 부분이 컴퓨터로 진행되며, 무수히 많은 문제들 중 내가 풀게 될 문제들이 무작위로 선택되어 나오게 됩니다. 보통 나오게 되는 '어려운 문제들'과 '쉬운 문제들'의 개수가 비슷하기에 난이도의 편차가 크지 않다고 공식 기관에서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험의 가장 큰 특징은 문제들의 난이도는 그다지 높지 않은 반면에 한 문제당 주어지는 시간이 매우 짧다는 것입니다. '어려워 봤자 얼마나 어렵겠어?'라고 느끼실 수 있지만, 글쎄요, 이 시험은 높은 점수를 받기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유명합니다 - 영어를 나고 자랄 때부터 사용한 영국인에게도 말입니다. 아, 1년에 한 번밖에 응시하지 못하는 시험이기도 합니다. 각 영역의 문제들의 예시를 첨부해 볼 테니 난이도가 어떤지 직접 확인해 보시며 재미로 읽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유캇 시험의 첫 번째 영역은 21분 동안 치러지는 verbal reasoning입니다. 긴 글의 형식으로 제공되는 정보의 바다에서 유용한 사실만을 산출해 내어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한국 수능의 비문학 문제와 비슷한 항목입니다만 21분 동안 44문제를 풀어야 하니 굉장히 짧은 시간이(한 문제당 30초 정도) 주어지게 되네요. 학생들이 보통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영역이며, 실제로도 이 영역의 평균 점수가 네 영역 중 가장 낮습니다(다섯 영역 중 마지막 영역의 점수는 합산 점수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보통 지문 하나당 4개의 문제가 주어지며, 지문의 길이도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운 나쁘게도 제 시험에서는 매우 긴 지문들이 줄을 지었습니다). 예시를 들어 보자면 이런 질문들입니다. 

정답은 A입니다.

    혹시라도 유캇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도움말을 조금 드릴까 합니다. 비문학 문제풀이 방법과 비슷하게 우선 문제를 먼저 읽고, 지문은 전부 읽지 말고 문제에 해당되는 부분만 찾아서 읽으면 시간이 많이 단축될 겁니다. 책을 많이 읽어서 문해력이 높거나 논픽션 장르의 글을 많이 읽었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고급 영어를 요구하는 구간이 아니니까요. 


   두 번째 영역은 Decision Making이라고 불리며, 29분 동안 31개의 문제를 풀게 됩니다. 첫 번째 영역보다는 훨씬 문제당 주어지는 시간이 많죠? 무려 문제당 1분가량의 시간으로, 네 영역 중 가장 시간적 여유가 있는 영역이네요. 이 영역에서는 복잡한 상황에서의 논리력과 판단력을 평가받습니다. 쉬운 문제도 간혹 있지만, 어려운 문제는 꽤나 어려운 영역이랄까요. 이 영역에서는 특히나 문제 유형의 개수가 많은데요, 여러 논법을 사용한 추론, 논리적 퍼즐, 글에서 가정하고 있는 사실 짚어내기, 정보 해석, 벤 다이어그램, 통계적 추리 등이 있네요. 첨부된 문제는 '논법을 사용한 추론' 유형의 문제입니다. 

정답은 상단부터 Yes, No, No, Yes, Yes입니다.

    Decision Making의 문제들을 풀 때의 팁은 딱히 없습니다. 그저 빠르게 생각하는 연습을 조금 하면 문제가 쉽게 제한시간 안에 풀릴 겁니다. 개인적으로는 평소에 논리적인 판단을 잘 내리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고득점을 노릴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영역은 Quantitative Reasoning입니다. 모든 영역들 중에서 가장 직관적이죠. 25분 동안 36문제를 풀기 때문에 시간이 아주 부족한 편도 아니고, 영역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저 실생활에서 사용될 만한 수학 문제를 푸는 것뿐이기에 대부분 학생들이 이 영역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습니다.  

정답은 B입니다.

    이 영역에서 조금 까다로운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계산기의 사용입니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신 분들은 공대나 다른 이과 학위과정을 수료하지 않으신 이상은 시험 중에 계산기를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저 또한 UCAT 시험에서 사용하는 이 계산기만큼은 정말로 생소하더군요. 사진 왼쪽 상단의 'Calculator'버튼을 누르면 튀어나오는 저 스크린 속의 계산기, 사용하기 정말 불편합니다. 마우스로는 버튼이 잘 눌리지도 않고, 느리고, 실수 없이 입력이 되었는지 확인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나마 컴퓨터의 키보드의 숫자들로 입력하면 계산이 조금 더 쉬워지기는 합니다.

    Quantitative Reasoning의 문제를 푸실 때는 우선 저 계산기를 사용하는 연습과 종이에 간단한 수식, 숫자 등을 메모하며 빨리 푸는 연습을 하면 좋습니다. 무엇보다 계산기가 필요하지 않은 문제들은 과감하게 암산으로 풀이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모든 문제들을 한 번씩이라도 훑어볼 수 있는 시간이 생깁니다.


    네 가지 영역 중 마지막 영역은 Abstract Reasoning이라고 불리며, 미친 시간제한을 자랑합니다. 25분 만에 69문제를 풀어야 하죠: 한 문제당 20초 정도이군요. 문제의 난이도가 그다지 쉬운 편도 아닙니다. 시험장에서 이 영역의 문제들을 풀 때마다 '와우, 이게 뭐지?'하고 끊임없이 머릿속에서 외치던 기억이 납니다. 마치 IQ 테스트 같은 문제들입니다. 밑의 문제를 보시면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오실 겁니다. 

정답은 B입니다.

    그렇게 직관적으로 패턴이 보이지는 않으실 겁니다. 따라서 이러한 그림들을 보고 패턴을 눈치챌 수 있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데요. 문제들을 보다 보면 패턴에도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한 규칙들을 니모닉 형태로 기억하고 판단하는 연습을 하면 좋습니다. 제가 사용한 니모닉은 조금 숭한 구석이 있는 - 그래서 기억하기 쉬웠던 단어들인 - SPERM ROSE ARSE였습니다. 처음부터 순서대로 Symmetry, Position, Enclosure, Rotation, Mirror image, Ratio, Opposites, Shape, Equivalence, Adjacent, Reflection, Shading, Equidistant입니다. 


    위의 네 영역들을 모두 해치우고 나면(한 시간 반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드디어 가장 숨통이 트이는 영역인 Situational Judgement입니다. 이 영역은 위의 네 영역처럼 직접적인 점수로 결과가 통보되지 않고, 아이엘츠 시험과 비슷하게 'Band'로 표현됩니다. Band 1, 2, 3, 4의 네 Band 중 하나에 포함되게 되며, Band 1이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점수입니다. 또한 이 영역은 시간도 충분하고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의학에서의 도덕심과 의사 결정에 대한 이해를 평가받는 부분이기에 긴장도 한층 덜합니다. 

정답은 A입니다.

    위의 문제만 보셔도 아시겠지만 상황이 주어지고 그중에서 가장 적합한 답을 고르는 문제들이기에, 애매할 수 있을지언정 어렵지는 않습니다. 이 영역의 문제들은 연습 문제를 적당히 풀어 보고, 어떤 답이 정답일지 예상할 수만 있다면 쉽게 Band 2를 받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대학교들은 Band 2 이상이면 이 영역에 대해서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자, 모든 영역의 소개가 끝났습니다. 이제는 이 모든 영역들의 점수 합산 방식을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첫 네 영역들은 모두 300점에서 900점 안의 범위로 점수가 산출되며, 이 네 점수들의 합계가 곧 최종 점수입니다. 제가 본 2023학년도 유캇의 평균 점수는 verbal reasoning부터 abstract reasoning까지 차례대로 591, 623, 649, 652점이고, 통합 평균 점수는 이 넷을 모두 합친 2516점이군요. 90 백분위수 - 즉, 90%의 학생들보다 좋은 성적을 받은 학생들 - 의 점수마저도 2890점부터 시작되므로, 만점인 3600점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 유캇 시험의 난이도를 증명하는 가장 큰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Situational Judgement에서는 가장 많은 수의 학생들(39%)이 Band 2를 받았습니다. 

    여기부터는 사담과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제가 유캇으로 받은 점수는 사실 그렇게 높지도, 만족스럽지도 않습니다. 전체의 81 백분위수에 있는 2770점이며, 각 영역별로 620, 720, 680, 750점을 받았습니다. 보통 Quantitative Reasoning이 가장 쉽다고들 하지만, 저는 유난히 이 영역에서 높은 점수가 나와주지 않더군요. 그 대신 나머지 세 항목에서 적당히 잘 나온 점수로 부족한 Quantitative Reasoning 점수를 메꾼 듯한 느낌입니다. 보통 2700점 이상의 점수는 '좋은 점수'라고 평가받지만, University of Bristol 등의 학교들에서는 2870점 이상의 영국인, 혹은 2910점 이상의 외국인 지원자가 아닌 이상 의학 학부 과정에 무조건 불합격하게 됩니다. 지원할 수 있는 학교들에 제약이 생김은 굉장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저는 UCAT 시험이 아닌 BMAT 시험에 더 비중을 둔 선택을 했습니다. 영국에 지원할 때에는 4개의 의대밖에 신청할 수 없는데요, 이 중 세 개를 BMAT 대학교들로 선택했고, 하향지원으로 UCAT 대학교인 University of Aberdeen에 지원했습니다. 애버딘 대학교를 '하향지원'이라고 하는 것은 나머지 세 학교들이 꽤나 합격률이 낮은 대학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나중에 BMAT에 대해 글 쓰며 다시 한번 논해보고 싶습니다. 애버딘 대학교 또한 작년 면접 확정자들의 유캇 점수는 2670점으로, 그렇게 낮은 편은 아닙니다만 상대적으로 합격률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제 유캇 시험에 대한 감상은 조금 유감스럽지만 그렇게 아쉽지는 않은 정도입니다. 애초에 제1순위 영국 대학교는 유캇 대학교도 아니었고, 처음부터 유캇으로는 한 개의 대학교에만 지원할 생각이었습니다. 또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전 유캇 시험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았습니다. 보통 외국인들은 6개월에서 길게는 1년까지 유캇 시험 준비를 한다고 하더군요. 한국인들 사이에서는 1년 이상까지도 계획을 세워서 준비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영어에 약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의대에 지원하기로 확실하게 마음먹은 것도 8월 즈음이었습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유캇 시험 나흘 전까지 점수 계산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총 5개의 영역에서 300-600점 사이의 점수를 받아 3000점 만점의 점수로 산출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죠. 어쩐지 점수가 잘 나오더라고요. 하하, 저답지 않은 실수를 해서 시험 나흘 전부터 문제들을 열심히 풀었죠. 준비 시간에 비하면 나쁘지 않게 나온 점수입니다. 

    같이 시험을 준비한 친구들 중에서는 8개월 정도 유캇 시험을 준비한, 똘똘한 한국인 친구가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습니다. 무려 2900점 이상의 고득점이죠. 한두 달 정도 유캇 시험 준비를 한 다른 친구들은 2500-2600점 사이의 점수를 받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전부 한 달 후에 보게 될 BMAT 시험 성적만을 필요로 하는 대학교로 지원하는 쪽으로 경로를 틀었고, 다른 한 명은 영국 의대를 아예 포기하기로 결정했죠. 사람일은 역시 어떻게 될지 모르나 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영어를 잘 못하거나 유캇 시험이 처음에 어렵게 느껴지더라도 연습을 통해서 충분히 고득점을 획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제 똘똘한 한국인 친구처럼요. 저는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른 친구들보다 영어를 잘할뿐더러 수학적/논리적 사고에 능한 편입니다. 따라서 유캇의 영역들이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기도 했고, 며칠 간의 연습 동안 부족한 부분에 투자하여 최대한의 효율로 점수를 높이고자 했습니다. 당연히, 바보 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제대로 준비를 했다면 당연히 더 좋은 성적이 나왔겠지요. 그럼에도 큰 후회는 없습니다. BMAT 시험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어서이기도 했지만, 역시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고, 영국 의대에 지원하지 못하더라도 바라는 것을 이룰 길은 다분히 있어서일까요. 유캇과 같이 한 번뿐인 시험이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하도록 놔두고 싶지도 않습니다. 

    이 글을 읽으신 여러분도, 바라는 것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 듯해도, 세렌디피티 - 우연한 행운과 성공 - 이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야기의 가치를 아는 당신께서 제 이야기에 공감하여 누르는 구독과 라이킷은 현재 말레이시아 유학 중인 제게 큰 도움이 됩니다. 제 이야기를 읽으며 흥미로우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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