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됐다.
그렇게 됐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나에게 벌어졌다. 내 예상점수 성적이 잘못 입력되어 대학교들에 제출된 것이다. 지금은 많이 회복했지만 여전히 가슴 아프고 조심스러운 이야기이다.
예상점수란 무엇인가? 에이레벨에 대한 이해도가 있는 사람이라면 조금 알고 있겠지만, 1년 차 시험인 AS 시험 이후 학생이 2년 차 A2 시험에서 어떤 성적을 받을지 선생님들께서 예측하여 입력하는 점수로, 영국 입시 중에 매우 중요하게 사용되는 점수이다. 이 점수에 따라서 conditional offer (예: 3과목 이상에서 최고 점수인 A*가 나올 경우 학교에 입학 가능)이 제시되곤 한다.
나의 예상점수는 에이레벨 5과목에서 최고 점수인 5A*였다. 그러나 학교의 입력 실수로 모든 과목에서 한 등급 낮은 5A가 되었다. 한국의 기준으로 치환하자면 5과목에서 1등급이 예측되었는데 2등급으로 바뀐 것과 같았다.
이 실수를 인지하게 된 것은 올해 2월의 어느 날이었다. 면접조차 보지 못하고 떨어진 학교에 내가 떨어진 이유를 물어보니, '에이레벨 점수가 너무 낮아서'였다. 이상했다. 5A*는 최고 점수로, 이 점수보다 높은 점수를 입력할 수가 없으니까. 당연히 대학교에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를 순화시킨 이메일은 보내니, 자신들이 받은 점수는 5A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다음 수순은 나의 입시 담당자에게 넣은 연락이었다. 그는 나의 학교에서 맡긴 입시용 업체의 직원으로, 입시에 관한 거의 모든 부분을 담당하던 사람이었다. 그가 확인한 결과 5A가 입력된 것이 맞았다. 공교롭게도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 영국 의대의 온라인 면접 5분 전이었다. 손이 떨리고 온몸의 피가 빨리 흐르는 것이 느껴졌지만, 중요한 것은 내 눈앞의 대학교 면접이었다. 정신을 차리고 임해야 했다.
2시간 정도 이후, 면접을 마쳤다. 우선 속된 말로 내게 던져진 이 똥을 치우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당장 면접을 마친 학교의 교수님께 면담을 요청하여 성적이 잘못 입력된 사실을 알렸다. 실제 성적의 증명서를 보내니 교수님께서는 걱정하지 말라고, 많이 놀랐을 것 같은데 본인 대학교에 한해서는 잘 처리해 주겠다고 하셨다.
다음은 어떤 과정에서 이 실수가 일어난 것인지 확인을 했다. 확인한 결과 나의 에이레벨 담당 선생님께서 내 입시 담당관에게 5A가 입력된 잘못된 서류를 보낸 것이었다.
며칠 이후 말레이시아에 아빠가 찾아왔다. 학교와 면담을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잘 끝나지는 않았다. 딱히 바뀌는 것은 없었고 이미 끝난 입시에 바꿀 수 있는 것도 없었다. 이 실수가 입시 결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대학교도 있고, 그다지 큰 영향이 없었던 대학교도 있다. 다만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음에도 내가 받은 보상은 딱히 없고, 실수를 하신 선생님께서는 아주 잘 일하고 계신다. 만약 다시 대학교들에 입학하고 싶다면 1년을 기다려 다음 입시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다.
정리해 보니 생각보다 더 웃길 정도로 비극적이다. 그러나 나는 심적으로 괜찮다. 이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으며, 사건에서 배운 것도, 얻은 것도 많았다.
우선 인생에서 억울하거나 비극적인 일이 있었던 것이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불공평하지 않는가. 나는 이 일로 인해서 전보다도 엄청나게 강하고 단단해졌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또다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사실을 알게 된 직후 면접을 본 의대에는 합격했다. 모르긴 몰라도 침착하게 대처한 내 행동이 플러스 요소가 되지 않았을까.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논리적으로 평온하게 결정을 내리는 연습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선택을 내릴지도 더 확실히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우선 나는 다음 입시 기회를 노려 다시 한번 영국의 의대들에 지원을 할 생각이다. 한국의 재수와는 달리 에이레벨 시험을 다시 볼 필요는 없다. 따라서 내게 남는 1년 동안은 장학금 조건이 좋은 오퍼를 받은 홍콩과학기술대학교에서 의생명공학 공부를 하고 싶다. 이에 대해서 또다시 글을 적어 보고자 한다.
마음은 안온하다. 정신과에 다니기도 했고, 이제는 받아들였다. 배운 것도, 얻은 것도 많은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