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은 May 01. 2023

에이레벨 하지 마세요

한국 입시가 그리운 이유들

    입시생입니다. 한국은 아니고, 영국이요.

    사실 당장 사흘 후 수요일에 수학 시험이 있습니다. 물론 수학 공부는 안 한지 꽤 됐습니다. 흠, 제가 한국에서 다녔던 수학학원 선생님께서는 들으시면 기절초풍하시겠군요. 

    안심하세요, 선생님. 다 이유가 있답니다. 왜인지 알려드리기 전에 잠깐 제가 자리 잡은 새로운 입시에 대해서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아, 우선 제가 영국에서 공부 중인 건 아니고, 말레이시아에서 영국 입시를 준비하는 중입니다.

    공부하는 과정의 이름은 에이레벨(A level), 말이 영국 입시지 호주, 유럽(독일, 스위스, 프랑스, 기타 등등), 중국, 한국, 일본, 싱가포르, 캐나다, 미국 등등 다양한 대학교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2년, 실제로는 1년 반 정도 공부하면 대학교들에 지원할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렇게만 들으면 정말 좋은 입시제도인 것 같지 않나요? 3년도 아니고, 고작 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난이도도 생각보다 높은 시험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사이에 숨겨진 함정이 있죠. 우선 돈이 문제입니다. 국제 대학생의 왕도는 국내 학생보다 훨씬 부담스러운 학비를 각오해야 합니다. 당장 영국만 생각한다면 1년에 1억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닙니다. 

    시험 성적만으로 대학교에 입학한다는 생각도 오산입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어떠한 외부활동들을 해 왔느냐가 중요한 요건이 될 수 있습니다. 반드시 고등학교 재학 기간 동안 한 활동일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증명할 수 있는 활동이어야 하고,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이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 점은 한국과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대학교마다, 나라마다 바라는 것이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영국의 대학교들은 전공 적합성을, 미국의 대학교에서는 다양성과 개성을 중시한다고 들은 반면에 아시아의 어떤 대학교들은 외부활동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기도 합니다(대학교 입시 정보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은 점이 있을 수 있으므로 참고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시험이 쉽다는 말도 사실 사람에 따라 다르죠. 외국인으로서 가장 큰 문턱은 언어일 것입니다. 모든 과정이 영어로 진행됩니다. 영어에 능숙하지 않다면 당연히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도전입니다. 더불어서 선택하는 과목에 따라 대학교 1학년 수준까지 난이도가 올라가기도 합니다. 대부분 영국 대학교의 학부 과정이 3년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 이외에도 여러 가지 불편한 고려사항들이 많더군요. 생각보다 복잡하고, 어쩌면 한국 입시보다 귀찮습니다. 이 귀찮은 '대학예비과정'이 제 배경이고 현재 제 가장 큰 정체성입니다. 

    그래서 왜 지금 수학 공부를 안 해도 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첫 번째 이유는 정말 안 해도 될 만큼 시험이 쉽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수학을 공부했던 제게는 이곳의 수학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제 자신감에는 근거도 있습니다. 얼마 전 모의고사를 볼 때 제 나름대로 수학 공부를 얼마나 해야 만족스러운 성적을 받을 수 있을지 시험해 보았습니다(저만의 시간 관리 방법이죠!). 개념만 복습하고 시험을 봐도 만점이 나올 정도입니다. 정말로 한국에 비교하면 수학 시험이 쉽습니다. 심화 수학이 아닌 이상은 말입니다(심화 수학은 어렵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다음 주에 훨씬 어려운 생물과 화학 시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에이레벨의 생물 시험은 악명이 높습니다. 1등급(쉬운 이해를 위해 한국의 표현을 차용했습니다만 에이레벨은 등급제 또한 복잡한 구석이 있습니다)을 받기 위한 합격선도 상대적으로 상당히 높고, 공부량이 많은 편입니다. 기출 시험지 자체를 분석하고 공부하는 데도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시험 일정도 꽤나 난해합니다. 사흘 후에 순수 수학 시험이 있고, 다음 주에는 확률과 통계, 생물과 화학의 서술형 및 논술형 시험이 있습니다. 그다음 주에는 물리의 서술형 및 논술형 시험과 심화 수학 시험이, 그다음 주에는 심화 역학과 물리 실기 시험.... 이렇듯 과목들이 뒤섞인 일정이 6월까지 계속됩니다.

    제목에는 당당하게 에이레벨을 선택하지 마시라는 충고를 담았습니다만, 시간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에이레벨이 적성에 맞을지도 모릅니다. 입시 공부와 함께 취미생활이나 다른 공부, 외부활동 등을 충분히 병행할 수 있는 스케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아직 부족하지만 제게 주어지는 시간과 자산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활용했는지는 시험 결과가 나오면 알 수 있겠지요? 응원하는 마음으로 후기를 기다려 주시지 않을래요?

    이상으로 제가 몸담고 있는 입시를 간단하게 설명드렸습니다. 아, 오늘의 이야기는 지루한 설명문이 된 것 같아 유감입니다. 제 배경을 충분히 설명드린 후에 재미있는 이야기들도 많이 해드릴게요 :D 


    

쉽다고 말씀드린 수학 기출 시험지에서 가져온 문제들입니다. 아무리 쉬운 문제라도 서술형/논술형으로 모든 풀이과정을 적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아, 참고로 제가 풀었습니다.

   이야기의 가치를 아는 당신께서 제 이야기에 공감하여 누르는 구독과 라이킷은 현재 말레이시아 유학 중인 제게 큰 도움이 됩니다. 제 이야기를 읽으며 흥미로우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말레이시아의 첫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