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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을 영원처럼

by 개울건너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그리워

그 흔한 말들 우린 얼마나 할까

길지 않은 인생 잘 살아보고 싶어

마음껏 사랑을 해보려 해

흔하게 살자 아프지 말고

평범하게 사는 게

사랑을 하는 게

제일 어려우니까

그런 삶을 사세요

평범하게 웃는 일상과

사랑하는 사람과 담소도 나누며

남 미워하지 말아요

삶은 생각보다 짧아요

이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봐요

기쁜 날도 있을 테지

슬픈 날도 당연해

그렇게 사는 거야


그런 삶을 살아요

맘껏 웃고 사랑을 하며

슬픈 날도 있겠지만 괜찮아요

이기적인 그 마음은

어쩌면 당연한 거겠죠

이 순간을 영원처럼 살아봐요



김장을 평년보다 당겨서 한 이유가 있었다.

임영웅 콘서트에 가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저녁 6시에 있는 임영웅 콘서트는 이른 시간부터 팬들에 의해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지하철 안에는 임영웅 상징색인 하늘빛 후드티셔츠를 입은 이들이 여럿 보였다. 저이들도 나와 같은 장소로 간다는 것이 신기해 이 공연 관람이 처음인 나는 그들을 자꾸 바라보았다.

올림픽공원 역에서 하차해 오르는 계단은 하늘빛 사람들이 위로 빨려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지하철 카드를 체크하고 나오니 여러 개의 둥근 탁자에 많은 이들이 있었다.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있는데 공연 분위기는 이곳 지하에서도 넘실대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간식을 먹는다.

오십대로 보이는, 하늘색 캡을 똑같이 쓴 세 여인이 까르르 웃으며 비닐봉지에 들어있는 귤을 한 개씩 꺼내서 까먹더니 가방에서 먹을 걸 서로 자꾸 꺼냈다. 과자, 사탕, 껌..

모자 아래서 그녀들의 눈이 빛났다.

저쪽 의자에선 70대로 중반 정도로 보이는 두 여인이 샌드위치를 먹으며 보온병에서 따끈한 차도 따라 마셨다.

또 다른 여인들은 몇 조각의 사과를 나눠 먹고, 내 옆에 혼자 앉아있는 여인은 눈에 인공누액을 넣고 있었다. 그녀도 나처럼 같이 가기로 약속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6시 공연이면 식사시간이 어중간해 나는 만나기로 한 시누이와 같이 요기나 할 요량으로 싸 온 빵이 여기에 오는 동안 차에서 납작해지지 않았는지 종이 가방을 열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세 개의 소금 빵이 형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따끈한 보리차가 담긴 두 개의 보온병은 납작해질 리 없어 보온병이 들어있는 배낭은 굳이 열어보지 않아도 되었다.

몇 명의 여인은 하늘색 숄을 어깨에 두르고 오갔다.


만날 약속시간이 되자 시누이와, 첫 티켓 구매를 다섯 번 만에 성공했다는 상욱(시누이 아들)이 같이 왔다.

어려서 말도 배우기 전, 제 엄마랑 우리 집에 왔을 때 망치로 수족관을 탕탕 쳐서 거실을 물바다로 만들어 제 엄마한테 등짝을 여러 대 맞고 앙앙앙 울며 옆방으로 도망가던 녀석이다.

상욱인 잘 자라서 지금은 키와 덩치가 나보다 두 배는 커있고 독립해서 제 앞가림 잘하며 제 엄마와 외숙모를 이렇게 안내하고 있다.

상욱이가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 저녁 식사부터 하잔다.

우리는 일단 밖으로 나갔다.


그곳 공연 분이기는 지하와는 비교할 수 없이 술렁였다.

공원 입구에서 순대 떡볶이 잔치국수로 야외식당이 차려져 있었다.

처음은 늘 번거롭다.

이렇게 쉽게 식사할 수 있는 곳이 있는 줄 알았으면 번거롭게 빵은 사지 않아도 됐겠다.

상욱이가 안으로 들어가 식당을 찾아보자고 했다.

하늘빛 굿즈를 파는 여러 상점을 지났다.


두 개의 식당이 보였다. 그러나 대기 줄이 너무 길었다. 긴 줄에 놀란 우리는 다시 몸을 돌려 입구로 도로 가서 국수와 떡볶이로 식사를 했다.

공연이 있는 체조경기장 쪽으로 걸었다.

광장은 온통 하늘빛 물결이었다. 배낭, 헤어밴드, 묶은 머리 끈, 손가방, 머리핀..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릿느릿 여유 있었다.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휠체어를 탄 남자노인도 있었다.

상욱이 응원 봉을 사서 충전했다. 머그컵도 두 개 사서 응원봉과 함께 하나씩 주었다.

등과 배를 하늘색 커버로 둘러 단장하고 제 주인과 함께 종종종 걷는 하얀 강아지도 있었다. 공연할 때 강아지 쟤는 어디 가서 있지? 하며 우린 웃었다.

딸인 듯한 이가 둘이서 같이 서있는 노부부에게 하트 표시를 하라고 시켰고 노부부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엄지와 검지로 하트 표시를 했다.

그렇게 포즈를 취한 노부부를 향해 하늘빛 목걸이와 머리핀을 착용한 그녀가 셔터를 눌렀다. 부부는 똑같이 하늘빛 겨울 목도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 모습이 이미 축제고 이벤트라고.


상욱이가 임영웅 브로마이드가 걸린 길에서, 포토 존에서, 나와 시누이에게 사진을 찍어주었다.

우리가 사진 찍고 떠나면 자기네가 찍으려고 기다리며 우리를 바라보고 서 있던 여럿 중 한 여인에게 상욱이 다가가 휴대폰을 건네주며 부탁했다. 우리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늘색 헤어밴드를 한 그녀는 손톱 매니큐어도 하늘색이었다.

상욱이 제 엄마와 내 뒤에서 양손으로 우리의 팔을 살짝 잡고 포즈를 취했다. 그 순간 나는 오늘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제 나서지 말아야 할 나이라고, 물러나야 하는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할 때라고.




공연을 팬들이 주도하고 있는 문화가 돼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밖에서 댄스동아리의 춤이 있었다고 지나가는 이가 말했다.

우리도 더 일찍 왔더라면 그 춤도 구경했을 텐데, 아쉬웠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공연장 입구에서 상욱이와 헤어져야 했다.

즐겁게 보시라고 말하며 떠나는 상욱에게 나는 고맙다고, 우리 상욱이 덕에 외숙모가 이 호사를 누리는구나 하는 말을 잊지 않았다.


시누이와 함께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먼저 화장실로 가서 상의를 상욱이가 미리 주문해서 사다 준 하늘색 후드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안전 안내 교육을 잘 받았을 젊고 친절한 스태프들의 안내로 자리를 찾아가 앉았다.

시누이는 사진 찍는 걸 즐겨하지 않는다. 그런데 임영웅을 많이 좋아하는 그녀여서 여기선 적극적이었다.


그녀가 휴대폰을 들고 그녀와 나를 한 화면에 넣고 셔터를 눌렀다.

우리가 화면에 눈을 맞추고 활짝 웃고 있다.

뭉치면 더 아름답다.

휴대폰 사각의 화면 뒤로 비치는 하늘색 물결에 하늘색 티셔츠로 합류한 우리도 이제 더 아름다웠다.



공연이 시작됐다.


사전 MC가 나와서 본격 공연에 불을 지폈다.


지피는 불은 소통으로 시작되었다.

가족끼리 오신 분 손 들라고 했다.

시누이가 말했다. "언니야, 우리두 들어야지." "오 맞아!" 우리는 손을 번쩍 들었다.

카메라가 화제의 관객을 스크린에 비추어주니 어느 좌석에서든 편히 볼 수 있었다.

사회자는 또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늘색인 분 손 들라고 했다. 조금 긴 단발머리를 하늘색으로 염색을 하고 옷 신발까지 하늘색으로 치장한 여인이 손들고 일어섰다. 와... 모두가 손뼉 쳤다.

MC가 또 말했다. 3대가 같이 온 가족 손들라고.


학창 시절 송창식 윤형주 공연에 가려면 가난으로 하루하루의 삶이 버거운 어머니들은 쉰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었다. 거길 가면 거기서 밥이 나오냐 쌀이 나오냐.

그때의 소녀들이 노년이 돼있는 지금은 다른 세상이 돼있다.

함께 온 노부부와 자식 손녀, 이렇게 삼대가 손을 들었다. 이 모습에 관객들은 모두 환호와 함께 박수를 보냈다.

세대 통합을 보는 마음이 흐뭇했다.




MC와 관객이 함께 10부터 카운팅 했다. 1까지 하자 임영웅이 범선을 타고 내려오며 본격 공연이 시작됐다.

그를 본 인상은 티브이에서 볼 때와 같은 인상인 바른 청년이라는 느낌이었다.




첫 노래가 끝나고 임영웅이 인사를 건넸다. 그 안부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아들이 저녁에 퇴근해서 오늘 잘 지내셨느냐고 부모님께 묻는 안부처럼 친근했다.


그는 앞뒤 옆 관객과도 인사를 나누라고 했다. 자기 콘서트에서 만난 인연이 사돈으로 연결된 경우도 있단다. 하긴 인연을 누가 알까. 인연은 신비스러워 기적을 낳기도 하니까.

우린 서로 인사를 나눴다.


영웅은 지난주에 수능이 있었는데 수능 본 친구들 왔느냐고 물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른이 손들었나 보다. 그가 말했다. 수능을 늦게 보셨나 보다고.

또 같은 질문을 했다. 그가 또 말했다. 이분도 수능을 늦게 보셨나 보다고.

그와 눈 맞춤이라도 하려는 어른들이 손을 여럿이 든 모양이다.

관객들이 같이 웃었다.


나는 임영웅 노래를 많이 알고 있질 않아 미리 영웅 노래를 공부 좀 하고 올 걸 생각했다.

그가 건강검진 다 받으셨느냐고. 안 받으신 분은 내년 2월 까지는 꼭 받으셨으면 좋겠다고, 약속하자고 했다.

그리고 안전도 함께 당부하며 끝까지 즐거우시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가 나누고 챙기는 건 교감과 소통이었다.


처음은 실수를 발생시킨다.


그가 <돌아보지 마세요.>를 부를 때 내가 아는 그의 노래 중 유일하게 가사를 다 아는 게 이 노래이기에 나는 작게 따라 불렀다.

오늘이 네 번째 참여라는 옆 좌석의 여인이 나에게 말했다.

노래를 감상하는 관중에게 방해가 되니 따라 부르지 말라고. 나는 얼른 멈췄다.

아무래도 오늘 나와 그녀와의 인연은 신비스럽진 않은 것 같다. 내가 그녀에게 혼나는 인연이지 싶다.

지인들에게 현장을 알리고 싶어 휴대폰을 들고 촬영을 했다. 그녀가 또 말했다. 이렇게 하는 거 역시 민폐라고, 노래에 집중하는 관객들에게 방해가 된다고. 그녀의 말이 다 맞았다.

나는 얼른 멈추고 그의 노래에 같이 집중했다.


노래를 같이 부르고 싶은 맘을 어찌 알았을까.

‘영웅 노래자랑’ 프로그램이 시작됐다.

그가 무작위로 누른 번호가 화면에 떴다. ‘천년지기’였다.

“친구야 우리 우정의 잔을 높이 들어 건배를 하자...”

모두 응원 봉을 흔들며 떼창을 했다.

<바램>도 함께 불렀다. 이 노래는 그와 관객이 번갈아 가며 불렀다.


그가 <들꽃이 될게요>를 부르자 시누이가 저 노래 신곡이라고 내 귀에 살며시 일러줬다.

학창 시절 송창식과의 눈 맞춤에 김세환의 미소에 윤형주의 작은 몸짓과 한 마디 멘트에 혼자 마음대로 생각하고 해석했던 허상들에 속절없이 악악 대며 하던 열광과는 이젠 달랐다.

소통하려 노력하고 챙기는, 반듯한 청년이 부르는 노래에 신뢰로 곡과 가사에 집중하고 있다.





<순간을 영원처럼> 가사가 무대 벽 스크린에 자막으로 떴다.


‘남 미워하지 말아요 인생은 생각보다 짧아요’ 내려앉는 가슴에 바람이 지나갔다


노래는 계속되고 무대 뒤쪽 삼면을 감싼 대형 스크린에 팬들의 사진으로 가득 찼다.

영웅이 말했다. 진정한 영웅은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진 속의 저분들인 여러분일 거라고.



그가 <육십 대 노부부 이야기>를 부르기 시작했다.

예순두 살의 시누이가 옷소매로 눈물을 자주 닦았다.


그녀가 농협에 다니는 옆집 총각과 연애를 시작하자 동네 결혼은 안 된다고, 특히 상규(신랑감 이름)는 더 안 된다고 어머니가 반대하셨다.

어머니가 살아오고 있는 당신 친정동네에서 가난하게 살아 부자인 손아래 시누이에게 괄시를 받았고, 연애 중인 옆집 총각에 대해선 윗대 조부들 생전에 손자들로 시작한 싸움이 양가 조부끼리의 감정싸움으로 번졌는데 그 현장에 함께 있었던 어머니는 양쪽 조부가 세상 떠난 지 여러 해가 됐는데도 그쪽 집에 대한 감정이 내내 좋지 않던 터였다.


그때의 자세한 정황을 그때는 어렸던 자식들은 특히 어느 부분에서 어머니가 맘이 더 상했는지 모르니 오랫동안 가지고 있는 당신 상처의 깊이는 오직 어머니 당신만의 몫이었다.

그쪽 조부가 우리 쪽 집안에 자존심을 크게 상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했나 보다 정도만 추측만 할 뿐이었다.

어머니가 시누이에게 말했다.

타고난 니 팔자가 좋다면 상규가 아니고 다른 데로 가도 좋은 팔자로 살아갈 것이니 다른 데로 가라. 팔자는 좋든 안 좋든 제 주인 따라다닝게.


아버님 제사 다음 날, 제사를 지낸 집인 맏동서네로 신랑감이 왔다. 일월 말 몹시 추운 날이었다.


안방에 둥그런 안주 상을 놓고 어른들이 둥그렇게 앉았다. 담판이 시작된 것이다.


남편이 맏형인 시숙에게 물었다. 이 결혼 허락을 어떻게 할 것인가.

시숙이 말했다. 좀 더 생각해 보겠다고.


주방에서 그 말을 들은 맏동서가 안방을 향해 말을 쏘았다. 뭘 더 생각해! 기다린 지가 몇 년인데 또 생각해! 이젠 끝장을 내야 할 거 아니여!

그 소리가 안방까지 들릴 정도는 아니었다.

남편이 시숙에게 말했다. 형님이 지금 당장 결정하시라고, 가족이 다 모인 지금 여기서 매듭짓자고. 시숙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허락을 도와주려고 같이 온, 집성촌에서 동네 큰일에 결정을 책임지는 웃어른(어머니에게는 조카뻘)이 말했다. 우리가 이 사람 어렸을 때부터 보아오지 않았느냐고, 좋은 사람이지 않느냐고 허락해 주시라고, 둘이 잘 살 거라고.

신랑감이 따르려는 술을 어머니는 돌아앉아 받지 않으셨다.

무릎을 꿇고 술병을 들고 예비 사위는 벌서듯 그렇게 계속 있었다.


어머니의 세 아들이 어머니를 설득했다. 신랑감의 인성을 문제 삼는 형제는 없었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어려워할 만큼 진정한 어른이셨던 어머니보다 나이가 훨씬 어린, 함께 온 예비 안사돈은 그녀의 아들 옆에서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며느리 감에 욕심을 낸 예비 안사돈은 그 시간을 아들과 함께 그렇게 견뎌내고 있었다.

집성촌 웃어른이 한 마디 더 거들었다.

멀리 있는 단 나무보다 가까이 있는 쓴 나무가 낫다고, 다른 자식들은 이미 멀리에 살고 있고, 곁에서 살아갈 상규가 장모한테 잘할 거라고.


또 시간이 흘렀다.



어머니가 결국 술을 받으셨다.

술을 따르는 신랑감의 손이 떨렸다.


그들의 결혼 허락은 그렇게 매듭이 지어졌다.

주방으로 나와서 바닥에 앉아 신랑감의 한 팔을 잡고 시누이는 계속 눈물을 흘렸고 지금은 나의 애들 고모부가 된 그녀의 남자는 눈을 아래로 힘없이린 채 그녀 옆에 앉아 말이 없었다.

나와 맏동서는 손님들 상차림을 건사하느라 주방과 안방 사이를 자주 오갔다.


그렇게 어머니에게 반 억지 허락을 받고 집성촌 웃어른과 예비 사위, 예비 안사돈이 돌아가자 이번엔 어머니가 우셨다.


니가 나를 이렇게 배신하고 갈 것이냐, 상규가 내 사위가 된다니 이게 웬일이냐며.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한참 후 어머니가 독백처럼 말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응게..


남편이 시누이에게 말했다. 막내야, 이제 됐지? 니가 상규하구 잘 사는 일만 남었다. 그리곤 긴장 속에서 결정을 이끌어낸 안도감으로 곯아떨어졌다. 그는 많이 취해있었다.

3개월 후 꽃샘바람이 불 때 고향에서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

36년 전 얘기다.


어머니는 상욱이가 태어나고 백일이 안 돼 돌아가셨다.


집성촌 웃어른은 몇 년 전에 고인이 되셨다.


시누이 내외는 그렇게 이룬 사랑을 별 고비 없이 갈등 없이 고향에서 지금까지 잘 이어가고 있다.


제 부모의 고향이며 저희들 고향이기도 한, 그곳에서 흙 밟으며 풀꽃처럼 자란 그들의 남매도 잘 성장했다.

독립해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상욱이는 미혼이고 직업군인인 그들의 딸은 결혼해서 얼마 전에 딸을 낳았다.


지금 87세인 그들의 어머니는 아들 내외와 국이 식지 않는 거리에 살면서 아들 내외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 역시 점잖은 어른인 그분의 건강이 나쁘지 않아 다행이다.

우리 형제들은 모이면 지금도 얘기한다. 어머니가 오래 사셨다면 가까이에서 사는 속 깊은 사위가 잘했을 텐데, 서둘러 가셔서 아쉽다고.

그때 결혼식 가족사진을 보며 웃기도 한다. 어머니가 시누이와 조금 떨어져 고개는 살짝 바깥쪽으로 돌리셨다고.

어머니가 떠나신 지 35년이 된 지금 모두가 잘 살거라 확신했던 당신 딸과 사위의 결혼을 극구 반대할 만큼의 상황이 어떤 것이었는지 깊이가 얼마만큼이었는지 사실 나는 궁금하다.

나는 가방에서 사용하지 않은 가아제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눈물 흡수는 가아제 수건이 잘 되니까.


영웅의 목소리도 젖어있었다.


노래를 끝낸 영웅이 말했다. 그립다는 건 사랑한다는 말일 거라고.

반짝이는 응원 봉 별빛 속에서 나는 나의 그리운 이름들을 생각했다.


해외에서 암으로 투병중인 내 싱가폴 제부, 1년 전 먼 길 떠난 막춤의 대가 막내 오빠, 부모님 덕으로 저만 편히 산다며 힘겹게 살던 다른 형제들끼리 부르는 유행가 합창에 끝까지 끼지 못하고 떠난 넷째오빠.


나는 주머니에 있던 티슈로 눈물을 닦았다.




그가 소리쳤다. “소리 질러...”

모두가 응원 봉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다.

나도 시누이도 응원 봉을 흔들며 이야...소리 질렀다.



첨단의 조명기술은 응원 봉에서 별별 빛을 다 만들어냈다.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빛, 응원 봉 파도타기엔 색색의 무지갯빛.

공연 스타가 더욱 빛날 수 있는 건 모두가 함께 하기 때문이리라.

관객은 물론 그의 주위에서 혼신을 다해 춤추는 댄서들, 연주하는 밴드, 스탭, 조명, 연출, 기획 관계자들이 긴장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가수도 관중도 뒤에서 애쓰는 이들도, 모두 함께 빛나는 별이었다.



영웅이 <그대 그리고 나>를 부를 땐 내가 시누이의 귀에 대고 말했다, 이 노랜 원곡자 ‘소리새’만 못하다고.


이 노래는 나에게 ‘소리새’의 이미지로 이미 정착돼있어 누가 불러도 그 자리를 대신하지 못했다.




<별빛 같은 나의 사람아> 부를 땐 시누이가 음향시설이 어쩜 이렇게 좋으냐고 했고 나는 자막이 없어도 가사 전달이 그대로 되네 말했다.

‘고마워요 행복합니다 왜 이리 눈물이 나요’


나는 생각했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건 진성성일 거라고,

글쓰기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거라고.



공연이 막바지로 가고 있었다.

영웅이 여러분 즐거우셨냐고 물었다. 정말 즐거우셨느냐고 재차 물었다.

정말 즐기고 계신지 관객의 소리를 들으며 노래를 불러야 소통할 수 있는데 시스템 상 인 이어를 끼어야 해서 그게 안 돼 아쉽단다.

그는 ‘건행’을 외치며 여러분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시라고 했다.


여기서 나눈 이 순간만큼은 제 마음에 영원처럼 남아있을 거라고, 여러분들의 마음에도 이 순간이 영원히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가 엔딩 곡으로 <인생찬가>를 불렀다.

어느새 관객은 모든 의자에 선물로 놓여있던 하늘빛 하트쿠션을 들고 노래에 맞춰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도 얼른 쿠션을 들고 같이 움직였다. 시누이가 또 말해줬다. 이 노래도 신곡이라고.

대부분의 관객들이 계속 들고 있던 응원 봉을 쿠션과 함께 들고 움직였다.


나는 쿠션을 움직이다가 같이 들고 있는 응원 봉을 앞에 앉은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에 떨어트릴 것 같아 바닥에 있는 가방에 내려놓았다.


내가 우려했던 일이 내 머리에 일어났다. 뭐가 내 머리를 쳤다.

뒤를 돌아보니 뒷좌석 여인이 한 손에 응원 봉을 함께 든 채 쿠션을 움직이다가 응원 봉으로 내 머리를 친 것이다.

떨어트린 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그녀가 놀라 미안하다고 사과했고 나는 그리 아프지 않아 괜찮다며 웃었다.



공연 말미에서 노래가 불러낸 감정일까.

가장 중요한 사람은 곁에 있는 사람이라고, 가장 중요한 일 또한 지금 하고 있는 일이라고.

젊은 날, 아예 붙어 따라다니던 행복을 모르고 내쳐버린 채 멀리 가서 찾느라 헤맨 시간이 길었노라고 내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스케치북 부대의 피켓타임이다.

여기저기서 관객들이 들고 있는 스케치북 피켓이 화면에 잡혔다.

'영웅이 삼촌! 11년만 기다려줘요 예쁘게 클께요. 사랑해요!'


‘Florida에서 웅 오빠 보러 왔어요.’


‘우리집 강아지도 영웅시대’

‘어젯밤 10시 이 자리 잡았음!’

‘널 만나고 착한 마누라 됐어’



노래가 만들어낸 흥미로운 연대다.



3시간 넘는 공연이 끝이 났다.

시누이가 우린 천천히 나가자고 했다.

공연장 중문을 나서는데 앞에서 나가는 두 여인의 대화소리를 들렸다. “영웅이 춤이 처음보다 많이 늘었네.” “그러네.”

밖으로 나왔다.

공연장으로 들어갈 땐 미처 보지 못했던 라운지를 발견했다. 차를 마시며 쉬어가라고 마련된 장소였다.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가 커피를 마셨다.

시누이가 영웅이 노랜 요란하지 않고 담백한데 좋다고 했다.

그의 노래는 기름지지도 과하게 담백하지도 않아 좋다고 나도 말했다.

<순간을 영원처럼> 가사가 좋더라고, 평범한 가사인데 특별하게 와 닿더라고 내가 말했다.

라운지 의자에서 일어나며 시누이가 우리가 벗어서 넣은 두 개의 하늘색 후드 티셔츠, 두 개의 하트쿠션, 무거운 두 개의 응원 봉이 들어있어 불룩하고 무거워진 가방을 들었다.

같이 들자고 한쪽 끈을 잡으려하니 그녀가 괜찮다고 혼자 간단하게 들며 어서 가자고 했다.

그녀는 결혼 전 아가씨 때도 그랬다. 내 아이 가운에 놓고 손잡고 같이 걷다가 아이가 졸려 징징대면 고모인 자기가 아이를 번쩍 들어 안고 재우며 같이 걸었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려는데 위에서 엘리베이터가 문이 열린 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뛰어가서 얼른 탔다.


옆에 서 있던 여인이 그녀의 남편인 듯한 이에게 말했다. 집에 가면 새벽 두 시는 되겠다고.

어디서 오셨냐고 물으니 금산에서 올라왔단다.



지하철을 탔다.

한 정거장 쯤 지나자 웨이브가 있는 긴 머리의 한 여인이 급히 내 옆에 와서 앉으며 말했다. 자기가 깜빡 모르고 임산부석에 앉아있더라고. 우린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그녀의 하늘색 리본 핀과 머플러로 콘서트에 다녀가는 팬인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이번 공연 관람이 다섯 번째라고 했다.


놀 때 놀아야 해서 그동안 전국 공연에 숙소 잡아놓고 빠지지 않고 다녔는데 이젠 힘에 부쳐 서울 공연만 다니고 있단다. 그녀의 눈이 충혈 돼 있었다. 이젠 노는 것도 피곤하다고 했다.

김장 날짜를 잡아 놨다고, 내일 배추가 들어오는데 김장하려면 힘을 비축해야 해서 몸 아끼느라고 모두 서서 응원 봉 흔들 때 자기는 앉아서 흔들었단다.

나는 앉은 채 허리를 숙이며 웃었다. 아랫배가 쿨렁댔다. 그녀도 웃었다.


그녀가 내려야 한다며 일어섰다.


그녀가 비운 자리에 70대 중반으로 보이는, 몸집이 꽤 있는 여인이 앉았다. 그녀는 오늘 공연 참여가 네 번째라고 했다.


이번 공연 티켓은 영웅의 공연으로 인연이 된 여인의 며느리가 구매해줬단다.

몇 년 전 영웅 공연에 그녀의 지인과 함께 일찍 가서 지인이 싸온 찰밥을 같이 먹고 있는데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인이 혼자 있어서 여인에게 우리 찰밥 같이 먹자고 오시라고 했단다.

같이 먹으며 여인이 사는 곳이 고양시인 걸 알게 됐고 고양시엔 그녀의 아들이 살고 있어 인연이 계속될 수 있었단다. 그녀가 고양시 아들네 가면 여인을 따로 만나고 온단다. 문자로 영웅의 정보도 나누고.

대전 축구 경기장에서 있던 영웅이 하는 시축행사에도 같이 다녀왔단다. 대절버스 타고.

영웅의 신곡을 처음 들을 수 있는 곳에도 같이 갔단다.

시누이와 내가 환승을 위해 먼저 내려야 했다.

우린 그녀에게 잘 가시라 인사하고 헤어졌다.


시누이가 웃었다. 영웅시대 이야기는 펼치면 끝이 없다고, 이제 문화 소비는 젊은이들보다 실버세대가 더 많은 시대가 된 것 같다고 말하며.



환승장으로 향해 걸으며 그녀가 물었다. 나는 영웅이를 좋아해 공연이 즐거웠는데 언니는 즐거웠는지, 언니는 내키지 않는데 내가 가자고 해 피곤하기만 하진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나는 고모 덕에 신세계를 보고 느꼈다고, 안 그랬으면 이런 세상이 펼쳐져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아갈 뻔 했다고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다음 공연 티켓은 서준(내 아들)에게 알아보라 해야겠다고 말했다.


시누이와 손을 잡고 걸으며 나는 한 문장을 마음에 안았다.

'지금 이 순간이, 오늘의 모든 순간들이 영원하길'

이어서 따라오는 문장을 내치지 못했다.


'다음 생은 기약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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