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어와 악어새 관계와도 같은 스타트업과 투자사의 공존 이야기"
몇 번 소개하긴 했었지만, 필자는 최근 4년간의 커리어를 스타트업에서 몸담고 있다. 이전에 다녔던 중소기업과는 안정성과 성장성, 책임감 등의 측면에서 많이 다르다. 개인적으로는 스타트업에서 주어지는 새로운 기회들과 끊임없는 환경변화가 나를 도태시키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좋아한다.
우리 나라의 공무원 시험 합격률은 2%대로, 하버드 대학교 합격률보다도 낮은 수치라고 한다. 최근 의료 대란에 관한 사회적인 논란도 사실은 비슷하다고 보는데, 의료의 수요 대비 공급이 워낙 부족하다 보니 높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의료에 대한 강한 수요는 결국 의료면허 하나만으로도 평생 직장이 보장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직장의 안정성과 삶의 안정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워낙 강한 민족성을 띄다 보니, 아무래도 스타트업이라는 단어가 꺼려지는 것은 사실이다. 새롭게 태어난 스타트업들의 평균 근속연수가 불과 3~5년 정도인 것만 봐도,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회사가 망하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100% 지우긴 어려울 것.
결국 스타트업이 수익 구조(Business Model)의 안정화까지 이루기 위해서는 이를 버틸수 있는 충분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렇게 스타트업이 생존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바로 투자사들이다.
최근 회사에서 우연한 계기로 투자사 관리 업무를 3개월 가량 임시로 맡았던 적이 있었다. 필자의 회사는 나름의 시장성을 인정받아 10개가 넘는 투자사들로부터 적지 않은 투자금을 유치했다. 투자사들이 많다 보니 그들의 요청사항에 응대하고 원하는 질문에 답하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는 않은 일이었는데, 투자사의 업무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들은 어떤 기준으로 투자를 집행하고 관리하는지, 그들은 수많은 리스크가 도사리고 있는 스타트업에 도대체 왜 투자하는 건지 등등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Pre-value Post-value, SI, FI, RCPS, CVC 등등 알 수 없는 용어들로 인해 정리가 안되는데, 검색엔진을 찾아봐도 정확한 뜻과 맥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책을 통해 당신이 필요로 하는 투자사에 관한 정보와 스타트업의 자본 조달 등에 관한 충분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보전달에 관한 성격의 책이다 보니 모든 지식들을 나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을 것 같고, 내가 이 책을 통해 이해한 내용과 좋은 문장들을 위주로 정리해 보겠다.
투자하길 원하는 "쩐주"들을 투자 생태계에서는 LP(Limited Partner)라고 칭한다. 그리고 LP들의 돈을 관리해 주는 곳을 GP(General Partner)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VC를 의미하는 Venture Capitalist는 이러한 GP를 총칭한다고 보면 된다. 용어에서 보는 바와 같이, LP는 투자액 한도로만 책임을 지며, GP는 투자의 전반적인 사항을 책임지고 관리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다. 돈을 대준 사람이 책임을 질 수는 없지 않은가)
한가지 참고할 점으로, 여기서 말하는 통상적인 LP의 개념은 주로 국민연금공단과 같은 대규모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을 의미하며, 이들이 실제로 시장의 큰 손이라고 보면 된다. (매번 받지도 못할 것 같은 국민연금 돌려주면 안되냐 떼썼는데, 이런 분들이 우리 회사의 진정한 쩐주였던 것이다. 국민연금 만세!)
물론 LP들만 투자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개인 투자자들도 물론 투자가 가능하며, 상당한 소득공제 혜택도 주어진다. 그러나 아무래도 개인 측면에서 큰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대부분 극초기 공동투자의 형태를 많이 띄는 편이다. 어쨋든 이런 이들을 "엔젤 투자자"라고 칭한다. 창업가의 입장에서 아직은 뭣도 없는 우리에게 천사같은 호혜를 베푼다고 해서 엔젤이라는 단어가 붙는다는 게 참 재밌다.
이제 LP와 GP는 펀드를 조성하게 된다. LP의 돈 90%와 GP의 돈 10%을 모아(예를 들어 LP의 돈 90억과 GP의 돈 10억 도합 100억) 이를테면 "스마트생태계조성펀드1호조합"과 같이 펀드를 결성한다. 이제 자금이 모였으니 GP사의 직원인 "심사역"(투자집행 실무자라고 보면 된다)들은 열심히 유망 기업을 발굴하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이를 "딜소싱(Deal Sourcing)"이라고 한다. 재밌는 것은 피투자사의 포트폴리오를 10개 정도 구성하고, 이 중 7개는 망해도 나머지 3개가 10배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한다. 즉, 그들이 산 주식이 모두 평범하게 성장하길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10개 중 7개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더라도 나머지 3개의 주식은 10배 이상 먹는 그런 수익구조를 지향하는 것이다. 전형적인 High Risk-High Return의 구조다.
펀드의 포트폴리오 구성을 마치게 되면 해당 펀드와 피투자사 간의 투자계약을 체결한 후 GP가 사후관리를 수행하게 된다. LP야 이제 패는 던져졌으니 피투자사들이 성공하길 바라며 "기다림의 싸움"을 하면 되지만, GP들은 피투자사들이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 정기적으로 LP에게 보고 자료를 작성하는 등의 관리업무를 수행한다. 이를 위해 펀드조성액의 통상 2%를 매년 관리보수로 가져간다. 100억이 펀드 조성액이면 매년 2억을 수령하는 것이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금액이겠지만, 피투자사 관리를 위한 회계, 법률, 투자 등 분야에서의 전문가들에게 충당할 인건비도 감당하기 힘든 비용일 것으로 생각된다.
LP와 GP의 펀드 운용이 끝나면 정산 과정을 거치는데, 이 때 펀드가 당초 목포했던 수익률을 초과한 이익에 대해서 20%가 GP의 몫을 가져가고 나머지는 LP사들이 펀드 지분별(즉 출자한 금액별로)로 나눠 갖는다.
결국 관리보수 2%는 관리비용 충당이며, 펀드에서 투자한 피투자사들 중 몇개가 "터저줘야" LP도 살고 GP도 사는 그런 구조인 것.
개인 심사역들의 수익구조도 잘 설명되어 있다. 펀드를 통해 GP가 얻은 수익 중에서 임원과 관리부서의 몫을 절반, 나머지는 담당 심사역(들)의 몫이라고 한다. 예를들어 GP가 A 펀드를 통해 얻은 수익이 50억이고 A 펀드를 1명의 심사역이 혼자서 딜소싱/관리하였다면 25억을 수령하게 되는 셈. 그래서 심사역들은 보수(연봉)에는 별 관심이 없고 자신의 펀드를 성공시키기 위한 노력을 많이 기울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밸류에이션. 어려운 말 같지만 기업의 가치가 얼마인지를 평가하여 가치를 부여하는 거다. 즉 "(투자사들이 인정해준) 우리회사의 가치가 100억이야."라는 개념은 주식 1%당 1억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개념인 거다. 더욱 중요한 건 "스타트업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인데, 대부분 영업손실을 기록하는 스타트업의 현실상 통상의 기업가치 평가 툴인 현금흐름할인법(DCF) 등을 적용하기 어렵다. 결국은 가치를 유사기업들과 비교하여 평가하거나 핵심인력의 가치 등을 토대로 뭉뚱그려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이러한 이유로 일단 협의를 통해 적정 가치를 결정한 후, 그에 맞게 로직을 짜는 탑다운 형태의 밸류에이션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프리밸류(=투자전 기업가치)를 400억원 수준으로 협의하고, 거기에 100억원의 추가 투자를 유치하게 되면 500억원의 포스트밸류(=투자후 기업가치)가 된다.
엑시트(투자금 회수)에는 몇가지 유형이 있겠지만 구주 매각(주주/투자사의 지분을 누군가에게 되파는 것), M&A(주식을 포함한 회사 전체를 타사에 통매각 하는 것), IPO(상장을 통해 주식을 공개매각하는 것) 정도라고 한다. 각 엑시트 사례별로 자세한 예시가 나와있어 이해하기 굉장히 쉬웠다
ㆍRCPS(상환전환우선주) : 투자금을 언제든 상환 요청할 수 있는 "상환권"과, 우선주로 투자했으나 언제든
원할 때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을 가진 주식
ㆍTerm Sheet(텀시트) : 계약체결 전 투자의 주요조건을 정리한 문서. 법적 효력까진 아니지만 서로 신뢰를
기반으로 작성한 만큼 향후 계약 체결시 이를 번복하기 어렵다.
ㆍCVC(기업형 벤처캐피탈) : 대기업 등이 투자 목적으로 만든 회사 (2021년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일반 지주
회사도 CVC 보유가 가능해져 활성화되는 추세)
ㆍAccelerator(엑셀러레이터) : 투자사의 "포지션" 중 스타트업 극초기에 집행되는 소액 투자시를 의미함.
통상 5천만~2억 규모를 엑셀러레이터로, 그 이상의 금액은 VC로 구분한다.
ㆍPE(Private Equity) : 엑셀러레이터나 VC에 비해 좀더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가져가는 투자사. 스타트업
중/후기에 투자가 집행되므로 투자 규모가 굉장히 큰 편이고 실패가 용납되지 않아 철저하게 리스크를 관리
하는 편. 이를 위해서 경영권까지 가져오는 지분투자를 진행하기도 한다.
ㆍSI(Strategy Investor) : (물론 투자의 목적도 있겠지만) 비즈니스적 시너지를 위해 전략적인 투자를 집행
하는 투자사를 의미함. 전문 투자사나 금융권이 아닌 일반 사기업이 주로 SI가 된다고 보면 될 것 같다.
SI가 아닌 나머지 대부분의 투자사는 FI(Finance Investor) 즉, 수익률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사이다.
이 책을 통해 새롭게 터득한 지식의 가치 ★★★★★
HR 담당자 관점으로서 얻은 지식의 가치 ★★☆☆☆
논리적인 전개, 오탈자 등 전반의 완성도 ★★★ (다음으로 궁금해질만한 질문 순서대로, 논리적인 전개!)
이 책에서 새롭게 얻게 된 지식의 활용도 ★★★★☆
저자는 스타트업의 대표이사로서도, 투자사의 전문심사역으로서도 충분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스타트업과 투자사 양쪽의 입장에서 균형잡힌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측면이 참 좋았다. 이를테면, RCPS의 특정 조항이 투자사 입장에서는 안전을 담보하는 장치가 되지만,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상황에 따라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니 훨씬 투자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쉬웠다.
이외에도 스타트업의 HR, 스톡옵션에 대해 알아야 할 것들, 자본조달에 필요한 3가지 유형(투자, 대출, 정부지원금) 간의 장단점 등 저자가 알고 있는 팁들을 아낌없이 남겨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챕터별로 내용이 잘 서술되어 있었지만, '그렇다면 이런 건 어떠려나' 싶은 내용들이 바로 다음에 배치되어 있어 의식의 흐름 순서대로 논리정연하게 서술되어 있고, 표현 또한 명료하여 메세지가 정말 잘 전달되었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언급한 내용을 언급하며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대신한다.
"스타트업은 VC를 알지 못하면 생태계의 반만 보는 것이고, 마찬가지로 VC도 스타트업의 고민을 알지 못하면 생산적인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잘 알았을 때 시너지는 배가 됩니다."
LALAJUHY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