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연차를 내고 7박 8일 간사이 여행을 갔다. 혼자 가는 첫 일본 여행으로 간사이 지방을 선택한 것은 일본어를 공부한다고 했을 때 누군가가 선물해준 『enjoy오사카』라는 책이 집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27살에 비행기를 처음 타는 촌년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유일한 저가항공사인 에어부산을 타고 1시간 반 정도의 거리에도 나오는 기내식 사진을 찍고 구름 사진을 찍고 하다 보니 금방 간사이국제공항에 도착했다.
간사이공항은 김해공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컸다.
‘아무것도 모르겠어!’
지나가는 회사원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 두 명에게 길을 물었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일본어에, 그런 나의 어설픈 일본어를 알아듣는 둘을 신기해하며 그 둘이 알려 주는 대로 전철 표를 끊었다. 그녀들은 내가 불안해 보였는지 옆에서 ‘도우시요(どうしよう)’, ‘다이죠부까나(大丈夫かな)’라며 오히려 그녀들 덕에 긴장이 조금 풀린 나보다 더 나를 걱정했다.
어쨌든 무사히 전철을 타고 지하철로 환승도 하고 지상까지 올라왔다. 당시의 나는 길치인데다 스마트폰도 사용하고 있지 않았기에 게스트하우스 홈페이지에서 프린트해 온 약도를 보며, 지나가는 동네 할머니께 길을 물으며 찾아 가야했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에서 예약할 때 보았던, 커다란 나무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카이빌딩에 가려고 하는데 지도를 봐도 길을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요도바시카메라 건물 앞에 서 있다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다가갔다.
"스미마센 코코마데 도우얏떼이키마스까?"(죄송하지만 여기까지 어떻게 가나요?, すみません。 ここまでどうやって行きますか。)
그는 대뜸 내 손에 들린 지도를 가져가서 잠시 보더니 자신도 잘 모르지만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나는 자신도 잘 모르지만 같이 가주겠다는 사람과 얼떨결에 같이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 섰는데 또 대뜸 그가 물었다.
“이쿠츠데스까?”(몇 살이세요?,いくつですか。)
나는 열심히 한국 나이로는 어쩌고저쩌고 설명하다가 일본 나이로 25살이라고 대답했다. 같이 얘기하며 걷다가 길이 헷갈리면 그가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어보길 반복하며 걸었다. 대화를 나누며 그에 대해 알게 된 점은 나와 동갑이고 고베 사람이라는 것, 오사카에 직장이 있어 고베로 퇴근 중이었다는 것,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한 적이 있었고, 일본에 있는, 한국 냉면집에서 일한 적이 있었고, 김연아 선수를 존경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오다 보니 어느새 스카이빌딩에 도착했다.
내가 입구에서 사진을 부탁하니 그는 사진도 찍어주었다. 나도 그에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고는 내 디카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렇게 서로의 사진을 찍어준 뒤 그도 처음 와 본 곳이라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겠다고 해서 같이 가게 되었다.
입장료를 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니 루프탑이 나왔다. 야경이 아름다웠지만 5월 저녁 바람이 조금 추웠다. 추운 와중에도 사진을 부탁해서 찍고는 함께 야경을 보며 루프탑을 빙빙 돌다가 건물 내부로 들어왔다.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내려가려는데 그 앞에 관광명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애운을 봐주는 기계가 있었다. 사람들 몇 명이서 기계 앞에서 떠들고 있었다. 그가 나에게도 운세를 보지 않겠느냐고 권했지만 사양했다.
“남자친구가 있나 보네요.”
나는 운세 같은 걸 잘 믿지 않는다고 했다.
건물에서 나와서 또 한참을 이야기하며 걸었다. 걸어오면서 같이 버스킹 공연도 보았다. 어쩌다 보니 모르는 사람과 목적지 한 곳을 함께 여행하게 되었는데 서툰 일본어로 이렇게 오래 대화를 나눈 것도 처음이었다. 전철역에 도착했을 때 그는 전철을 타고 고베로, 나는 지하철을 타고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야 했기에 헤어졌다.
그가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때 연락처를 물어보지 못해서, 그때 찍었던 사진을 전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아쉬운 마음이 든다.
‘전화번호 주세요’ 한 마디만 하면 됐을 텐데 그 땐 왜 그 말을 못 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