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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Dec 20. 2023

지난 일기 - 내가 바닥을 기던 여름

삶이란 이해할 수 없는 유머감각의 소유자다.*


2023. 4.


4월, 워크숍을 갔다. 현지 코디네이터가 성적 괴롭힘 가해자였다. 그는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과 두루 친했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고, 20여년의 경력에서 만든 인맥이 제법 됐다. 그는 내게 휘두를 수 있었던 영향력을 가질 수있게 해준 경력과 인맥 덕에 고위직에 진출해있었다. 일 년 사이에. 나는 그 동안 집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못 했는데.  


워크숍 일정 중 가해자 강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팀장에게 가해 사실을 밝히며 다른 사람이 강의를 할 수 없는지 물었다. 안 된다고 했다. 그가 가장 전문가라 대체 불가능하다고. 섭외며 현지 일정을 도와준 사람이라고. 그는 물었다. 그럼 일정을 아예 취소하자는 거냐고. 그걸 원하는 거냐고.

나는 말했다. "아......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어려울 거라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가능한지 한 번 고려해봐주십사 한 거였습니다."

그가 말했다. 그 정도 요구일거라고 생각했다고. 그럼 진행하겠다고.  

나는 알았다고, 감사하다고 했다.


감사, 대체 뭐에? 개뿔이.


2023.7.


나는 확인했다. 가해 사실을 공개했다면,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없었으리라는 명백한 사실을. 그들은 껄끄러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으므로, 가해자는 대체가 불가능하므로, 나를 제외했을 것이다. 내게는 애초에 제안조차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가해자는 더 전도유망해지고, 나는 주춤주춤하다 사라졌을 것이다. 언제 있었냐는듯이. 내게는 미래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싹수가 보이는 풋내기였고, 예쁜 그림을 만들어주는 젊은 여성이었다. 가르쳐볼만한 젊은이었다.

거기까지였다.


여자로 살아남고 싶다면, 나는 같이 일해야만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대체불가능하고, 독창적이며, 압도적인 경력과 인상적인 성과를 거둔 사람.

보통의 능력과 무던한 성격과 괜찮은 주량 덕에 언젠가 긴 경력 자체가 그의 성과가 될 때까지 기회를 얻는 남성이 되지 못할 것이므로.


남자가 되든지, 남자를 뛰어넘든지. 내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개였다.


충분히 큰 목소리를 지닐 때까지, 목소리가 없는 것처럼 기다려야 했다.

언제가 그들을 일격에 쓸어버릴 수 있을 때까지.


2022.11.


정말 그럴까?


내게 주어진 조건 아래서는, 참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마주하고 좌절하지 않기 위해서, 도와줄거라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고 죽고싶어하지 않기 위해서,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기 위해서, 축출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침묵했다.


퇴사 후 다른 회사의 성희롱 사건 조사위원 역할을 맡았다. 아는 사람 부탁이었다. 그 회사는 모든 구성원이 업무를 멈추고 사건에 매달렸다. 조직 문화, 성별 위계, 특정인의 과다대표, 고충처리체계, 안전하지 못한 환경, 피해자와 공동체의 회복, 전체 교육, 외부 자문...... 그들은 구석구석 조직의 모든 문제를 들춰봤고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했다.


서로를 상처입히는 말과 우선순위를 둘러싼 갈등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놓지 않고 희망을 만들어가는 그들의 노력은 눈물나게 아름다웠다.


나는 울었다. 성차별과 성폭력의 만연함에 화가 나서 울고, 사람이 미워서 울고, 반짝이는 희망이 아름다워 울고, 사람들이 멋져서 울고, 내가 처한 상황과 대조되어 울고, 조사랍시고 설치면서 정작 내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스스로가 비겁해서 울고, 우리 회사에서 원했던 대응을 다른 회사에서 보고 있노라니 고통스러워 울었다.


희망편과 절망편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었다. 절망이 내 일이었다. 모두 그렇게 형편없지 않다는 게, 세상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게, 좋은 사람이 많다는게, 감사하고, 서러웠다.

왜 내 사건은 이렇게 처리되지 못했을까.


차이게 숨이 막혔다.

잠적했다. 네 달 정도. 아무와도 연락하지 않고. 조사도 중간에 그만뒀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팍이 쥐어짜듯 아프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망쳤다.


2023.5


그 후 거의 반 년이 지나 겨우 일상 비슷한 모습을 꾸며내고 있는데, 1차 가해자를 마주하고, 2차 가해를 새로 저지르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환멸이 몰려왔다. 더 실망할 것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남아있다는 점이 놀라울뿐이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 머물지만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진 않아.

당신은 1960년대를 살고 있고, 나는 2023년을 살고 있지.

당신은 자신이 젊고 재치있고 탈권위적이며 소탈하다고 생각하지.

웃기지도 않아.


위선자들. 좋은 남자들. 결코 날 이해하려 들지 않을 사람들. 언제나 저편에 머무를 사람들.


삶은 제 멋대로 깨달음을 준다.

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불쑥 밀어넣고 소태처럼 씹게 만든다. 소화를 하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나는 일단 줬어, 하는 식이다. 원한 적도 없는데.


내겐 고약한 버릇이 있다. 모든 일에서 깨달음을 이끌어내려 한다. 의미를 붙일 수 있으면 고통이 좀 참을만해지니까. 무의미한 괴로움보다 산실의 고통이 더 멋있으니까. 그래야 좀 그럴듯해지니까. 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라면, 그러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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