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처럼 날카로운 말투, 마음을 옥죄는 폭력
성인이 되고 나서는 새엄마와 완전히 서로 남처럼 지냈다.
새엄마는 “같은 집에 살고 있는 동거인처럼 지내자”고 했고, 이 말을 내가 전남편에게 똑같이 했다는게 소름돋기는 하다. 내가 받은 상처를 똑같이 줬던것 같다.
새엄마는 나에게 철저하게 적대적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도 먹지 말라고 해서 나는 직접 요리하거나 사 먹어야 했다. 그렇게 하면 내가 죄송하다고 굽힐 줄 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정말 폭력적인 행동이었다.
샤워할 때도 왜 그렇게 오래 샤워하냐고 혼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난방비도 아껴야 했는데, 그런 이유로 혼나는 게 너무 싫었다. 마음껏 씻고 집에서 편하게 있고 싶은데, 새엄마는 내가 집에서 편히 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늘 집안이 가시방석 같았다. 그래서인지 지금 혼자 살며 마음껏 널부려져 있는 지금이 가장 큰 행복이고, 내 낙이다. 혼자서 공간을 온전히 누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어도 눈치 볼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이 정말 행복하다.
새엄마와 살 때는 마음껏 행동할 수 있는 공간이 오직 내 방뿐이었다. 문을 잠그면 왜 잠그냐고 들이닥치고, 집안에 있어도 늘 긴장해야 했다. 바깥에서도 긴장해야 했는데, 집에서도 그러니 내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머물 공간은 없었다. 어렸기에 돈을 주고 다른 공간으로 피할 수도 없었다.
설거지를 하면 싱크대 주변의 물을 깨끗이 닦으라고 하면 되는것을, 새엄마는 “왜 안 닦냐, 너 알바할 때도 이러냐, 머리가 장식이냐”라며 온갖 인격 모욕을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툭하면 집을 나가라고 했다. 한 번은 화가 나서 “내가 아빠 딸이고, 이 집이 아빠 거라면 내가 왜 나가야 하냐”라고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그동안 아무 말 없이 참고 피하기만 하다가 처음으로 대들었던 것 같다. 그러자 새엄마는 오히려 본인이 상처받은 듯,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새엄마 특유의 찌를듯한 높은 음성과 쏘아대는 듯한 말투가 정말 싫었다. 칼로 사람을 난도질 하는것 같은 말투였다.
당시 새엄마는 아빠가 반대하던 투자를 해서 10억 빚을 지고, 빚쟁이에게 독촉받던 중이었다. 엄마라고 부르긴 했지만, 나는 진심으로 엄마라고 인정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물어보지도, 상관하지도 않았고, 그런 걸 물어보면 화를 내고 차갑게 몰아붙였다. 스스로 다가올 수 없게 만들어 놓고, 아빠에게는 “자기가 아픈데도 물어보지 않는다”고 나를 나쁜 딸로 몰아갔다.
막상 다가가면 세상에서 그렇게 차가울 수가 없었고, 신경질을 내고 화를 낼 게 뻔했기 때문에 다가가는 것이 무서웠다. 귀찮음을 느끼는 딸과 엄마의 관계라는 것 자체를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두 딸을 키우며 느낀 행복은, 아이들이 나에게 다가와 말 걸고, 안아주고,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피곤하고 바쁠땐 아이들이 조금만 조잘거려도 귀찮다고 느낄 때도 있었겠지만, 그런 생각을 가진것 만으로도 미안했다.
초등학교 때 기억도 선명하다. 새엄마, 새언니, 그리고 새엄마의 엄마가 거실에서 티비를 보면서 “쟤는 왜 방에서 안 나오냐”라고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내가 나가도 반겨주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에, 그 자리에 끼어들거나 말을 건네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저 나는 이상한 애 취급을 받았고, 그 소외감과 두려움은 오래도록 가슴 한켠에 남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받지 못했다.
한 번은 새엄마가 집에 있는 어떤 물건을 제대로 정리하지 않았다고 뭐라 했던 것 같다. 내가 말대꾸를 했는지, 그 과정에서 새엄마는 내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너무 아프고 당황스럽고 화가 났다. 나는 뒤로 누워 발로 차면서 머리채를 놓게 했고, 그때 하나도 미안하지 않았다. 후련했다. 어렸을때는 법적으로 벗어날 수 없었기에 참고 견뎠지만, 지금 생각하면 말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혼날까 무서웠고, 매일 마주쳐야 하고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그랬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이제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었고, 마음의 자유도 생겼다. 안타깝게도 당시엔 돈이 없었지만, 더 이상 참지 않아도 된다는 마음가짐이 있었다.
새언니는 오랜 유학시절을 보내다가 한국에 와서는 자기옷들을 새엄마가 다 버렸다고 내옷을 입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싸우고 나서 사이가 안좋은데 내 옷을 막 입고 다니길래 말하고 입으라고했더니 옷이 닳아없어지냐고 뭐라했다. 자기가 약혼남이랑 결혼할거라고 반지랑 케이크할거라고 해서 내가 주변에 아는사람들한테 물어봐서 새언니한테 연락처도 알려주고 소개시켜주고 연결도 시켜줬는데, 결국엔 파혼하면서 다 무효가 됬고 소개시켜준 나한테 사과한마디 없었다. 자기가 오랜 유학생활로 힘들단 이유로 본인이 밥먹어서 나온 설거지를 나한테 하게 했고 내가 좀 하라고 하면 넌 오랫동아 해외생활하다 온 언니한테 그래야겠냐면서 나같음 다 했을거라는 말도안되는 궤변을 들먹였다. 그렇게 치면 본인도 나한테 그렇게 해줄수 있는건데 무조건 내 희생을 강요했다. 자기는 곧 미국으로 갈거라면서. 그 기간동안 온갖 성형을 다해서 침상에 누워서 죽만 먹는 모습을 보고 정말 기괴했다. 새엄마랑 새언니는 성형을 많이했고 새엄마는 이마에 뭘넣었는지 빵빵해져서 내가한번 뭐한거냐고 했더니 자기는 한게 없다고 끝까지 발뺌을했다. 집안이 어렵고 난방비는 아까우면서 본인 얼굴에 뭐 넣는건 아깝지 않았나 보다. 결국에 그 새언니는 새엄마랑 싸우고 집을 나갔고, 어이없는건 내명의로 구매한 와이파이 공유기랑 내노트북이랑 내 가방이랑 들고 나갔다는거다. 그 뒤로 난 내 명의로 가족을 위해서 사는것을 해본적이 없다. 엄청난 상처였다. 그리고 그대로 잠수타고 내가 돌려달라고 했지만 돌려주지 않았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지금도 의심이 많은 편이고 누굴 믿는게 정말 어렵다. 믿어주고 도와줬더니 돌아온건 배신이였고 상처였다. 그 모녀는 그냥 철저하게 아빠랑 나를 이용한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내가 당한것들은 신체적 폭력은 거의 없었지만 철저한 언어적 정서적 폭력이였다. 새언니는 친딸이란 이유로 새엄마한테 신체적폭력도 당했다. 그리고 그 모습들에 난 노출될 수 밖에 없었다.
그 시절의 경험을 인정하고, 나는 이제 과거처럼 살지 않기로 했다. 과거의 나를 받아들이고, 나 자신을 사랑하기로 했다. 누군가가 날 사랑해 줄 수 없다는것을 인정하고 어쩔수 없었다. 그렇다고 날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 존재는 무척 소중하고 나도 누군가에게는 무척 사랑스럽고 예쁜 존재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