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싶지만 떠오르는 기억

왜 아직도 그 기억이 나를 괴롭힐까

by 내이름은

어렸을 때의 경험이 나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흔적으로 남아 있는지, 나조차도 잊고 지낼 때가 있다.

간혹 그 기억으로부터 멀어지고 싶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불쑥 떠오를 때마다 내 살을 도려내서라도 그 기억을 지우고 싶어진다. 지금은 잘 살고 있다. 새엄마와도 인연을 끊은 지 오래고, 아빠와도 최근 6개월 전에 연락을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지금의 나에게 영향력을 끼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끔찍하고 고통스러워서 머리를 흔들어서라도 그 기억이 떠오르지 않게 하려 한다. 문득문득 어떤 장면들이 떠오르고, 그 장면이 주는 기분과 느낌은 굉장히 불쾌하다. 마치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처럼, 추악한 어떤 장면을 목격한 것처럼 온 신경이 바짝 곤두선다.


나는 타고나길 예민하게 태어난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그런 기억이 주는 특유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버릴 것 같아 무섭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감정에 의해 무너져 버릴 것만 같은 공포감이 든다. 마치 내 삶의 숨을 그대로 거둬 가버릴 것 같은 기분이다. 육체적인 죽음의 공포라기보다는, 정신적으로 죽을 것 같은 공포감에 가깝다.


이런 내가 인간관계에 서툰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원만하고 건강하게 쭉 이어지는 인간관계를 자연스럽게 해내는 사람들이 참 많이 부러웠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내려놓았다. 나의 경험과 타고난 성향으로 인해, 그것이 조금은 어려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인정하려고 한다. 바뀌지 않는 것을 탓하며 무언가를 부러워하다 보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불행해지는 건 시간문제이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정말 친했던 친구가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사소한 일로 다퉈 멀어졌고, 그 일이 나에게 꽤 큰 상처로 남았는지 지금도 문득 떠오른다. 오해를 풀어보려 했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하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참 어렵다. 어린 나이였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중학생 때도 정말 친했던 친구 한 명이 있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고했다. 마치 연인과 헤어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좋아했던 친구였는데, 너무 편한 나머지 내가 필요할 때만 찾았던 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부분에 지친 친구가 마음을 정리한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 친구는 말했다. “너 주변엔 친구들 많잖아.”


그때 나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도 늘 외로워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이혼이라는 경험도 했고, 아이 둘을 키우며 많은 것이 변했다. 변했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내 성격 또한 분명 존재한다. 다만 아이들을 키우며 나의 나약함과 상처, 어두운 면을 마주할 기회가 많았고, 그것들을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견뎌왔던 것 같다.


이혼이라는 선택 역시 내가 살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싸우는 모습을 더 이상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매일 붙어 살며 싸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떨어져 있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으며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물론 그 결정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부부 상담에만 몇천만 원을 쓴 것 같다. 동반 상담을 받으면 한 번에 15~20만 원 정도 들었던 걸로 기억한다. 정확하진 않지만. 교회도 함께 다니며 상담을 받았고, 주변 지인 부부들에게 조언도 많이 구했다.


하지만 상처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상대의 잘못이 떠올랐고, 그 분노가 폭발적으로 치밀어 올라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화를 냈다. 그런 생활을 7년이나 견뎠다.

내 인생에 이혼이라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가정을 지키고 싶었다. 아이도 둘이나 낳았던 이유다.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누군가에겐 쉽게 포기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고통 속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이제는 나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도망치듯 이혼을 했다.


사랑스러운 아내, 자상한 남편, 토끼 같은 아이들. 내 머릿속에 그려두었던 가정의 모습이 검게 칠해지며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친정의 정신적·물질적 도움도 없었기에, 준비되지 않은 이혼은 더 큰 고생으로 이어졌다. 준비하지 못한 채 이혼한 것은 지금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어린 시절의 불행도 모자라 내가 꾸린 가정마저 이렇게 무너진다는 사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가정환경은 대물림된다는 말이 있는데, 나 역시 그런 사람이었나 보다.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공부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싶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영역이었나 보다 하며 체념하고 낙담했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가족 안에서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삶. 그 행복은 나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주어지지 않은 것에 불만을 갖고 “왜 나는 없을까”를 묻기보다, 다른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만약 이런 삶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다른 분야에서는 복이 있지 않을까. 돈이라도 많이 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는 것에 노력하고 집중하는 편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나의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 이어서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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