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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값들 떠네 증말!”

by 해달



물가가 미친 지 오래다. 미쳐도 너무 미쳤다. 빵 하나를 사려해도 최소 2000~2500원 이상 써야 하고, 몸에 좋다는 곡물이 들었다 하면 4000원대 후반에서 5, 6천 원을 훌쩍 넘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전처럼 선뜻 빵을 집어 들기가 쉽지 않고, 인터넷으로 물건이나 식품을 주문할 때도 모아둔 포인트나 할인 쿠폰을 가능하면 쓰는 편이다.


그런 와중에 어제 점심 무렵 빵집에 갔다가 매대 모두가 텅텅 빈 걸 봤다. 처음엔 빵집이 무슨 일이 있어 문을 늦게 연 줄 알았다. 알고 보니 며칠 전부터 지점별로 반값 할인 행사를 하고 있는 거였다. 신랑 말로는 반값 할인 행사는 엄청난 거라고 했다. 아침 8~9시 사이에 동네 할머니들이 빵을 싹쓸이한다며. 아…… 이 동네도 아침부터 오픈런을 해야 하는 건가, 머리가 아파 왔지만 오늘 아침에도 어차피 슬로 조깅하러 나갈 거니까 한 번 도전해 보기로 했다.


러닝화를 신고 빵집에 들러 들어가기 전 밖에서 안을 살펴봤다. 역시나 매대는 케이크류와 일부 포장 제품을 제외하고 텅 비어 있었다. 계산대 옆에는 사람들이 빵을 잔뜩 들고 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문 연 지 15분 밖에 안 됐는데도 이러나 싶어 한숨이 나오려던 바로 그때였다.


“에이! 꼴값들 떠네 증말!”


바로 옆에서 회색 승용차를 대고 내린 할아버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본인도 빵을 사러 왔다가 오늘도 빵 대신 사람만 있는 게 몹시 짜증 난다는 듯이. 분명 짜증 가득한 말투였다.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만약 저 사람들 속에 있었으면 나도 ‘꼴값들 떤다’는 말을 들었을까? 할인 행사할 때 빵을 사는 게 어때서? 싶다가도 그냥 한 번 들렀다가 괜히 나까지 싸 잡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집에 오는 길, 문득 엄마한테서 들은 얘기가 생각났다. 신혼이었을 땐가 나와 동생을 한창 키우고 있을 때 하루는 집 근처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있었다고 한다. 한쪽에서 남자 직원이 큰 목소리로 세일을 외치는 소리가 들리자, 자기보다 나이 많은 아줌마들이 장바구니를 들고 그곳으로 우르르르 달려가더란다. 멀리서 엄마도 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 번 가 보려고 한 쪽 다리를 들었다. 그때 옆에서 여직원이 하던 말이 들리더란다.


“어우, 저거 하나 사겠다고 뛰어가는 꼴 좀 봐. 참 나.”


그 말을 듣고 엄마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고 한다. 엄마가 느끼기에 그 말에는 아줌마들을 향한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심지어 그 직원은 자기보다 어렸다고 한다. 그 뒤론 마트에서 세일한다는 소리가 들려도 보러 가지 않았다고 한다. 그때 엄마도 나와 비슷하게 느꼈을까, 빵틀에 놓여 있던 갓 구운 곡물빵을 들고 나오면서 생각했다.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다. 자신이 이익을 더 많이 얻을 수 있으면 그쪽으로 움직이는 게 당연하다. 집에서 혼자 인터넷으로 장 보면서 할인 쿠폰이나 포인트로 원가보다 싸게 사는 건 스마트한 거고, 밖에서 할인 더하기 오픈런으로 똑같이 하면 꼴값인 건가? 그렇게 치면 성심당에서 빵을 사려고 본점에서 500m 넘게 줄 서는 거나 얼마 전에 뉴스에도 나왔듯 990원 소금빵을 사려고 모 유튜버가 낸 팝업 가게 앞에 1km 넘게 줄 선 것도? 빵 사는 것마저 이렇게 경쟁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아까 그 할아버지처럼 ‘꼴값들 떤다’고 하는 건 좀.


이 모든 건 물가가 너무 올라서 생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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