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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아이 Nov 17. 2023

털복숭이 베이비시터

깜박깜박 ADHD엄마라서

우리 집에는 지금 6년째 상주 중이신 프로페셔널한 베이비시터 이모님이 한 분 한 마리 계신다.

아이들과 잘 놀아주시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감정을 잘 알아채고 늘 즉각 반응을 해주시기 때문에 나의 육아에 엄청난 도움을 주는 '개'이시다.

온몸이 진베이지색의 복슬거리는 털로 덮여있고 순둥순둥한 성격으로 아이들을 제일 좋아하는 말티푸, 모모.


모모가 우리 집에 온 건 꼬물이가 6살 때였다.

말랑이와는 다르게 꼬물이는 나처럼 감정의 변화가 크다. 좋아하는 것도 많고 재밌는 것도 많지만, 안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많은 아이다. 꼬물이가 좋아하고 재밌어하는 것을 찾아주고 같이 즐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꼬물이의 감정이 부정적일 때 엄마인 나도 바로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와서 그 상황을 어른답게 엄마답게 잘 대처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둘이 똑같아서)

그런 꼬물이가 무조건 언제나 좋아하는 것이 바로 동/식물이다. 나도 동물은 어릴 때부터 무조건 언제나 좋아했다.

그리고 그중 당연히 제일은 강. 아. 지.!!!! 어릴 때부터 정말 딱 하나 소원이 있다면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것이었는데 대학생이 되어서야 겨우 우리 집에서 강아지를 키울 수 있었다.

꼬물이를 키우면서 내가 어릴 적 강아지를 애타게 키우고 싶어 하던 때가 떠올랐다.


꼬물이가 화가 나서 씩씩 거릴 때, 슬퍼서 억울해서 엉엉 울 때, 엄마가 마음을 안 받아줘서 속상하고 외로울 때. 그럴 때 늘 자기 편인 존재가 하나라도 집에 있다면 어떨까? 언제나 같이 놀 수 있고 안아줄 수 있는 귀여운 친구가 항상 있다면 어떨까?

내가 그런 존재가 된다면 제일 좋겠지만 마음이 덜 자란 어른아이라 그런 건지 나도 꼬물이를 따라 씩씩거리고 속상하고 억울해져 버리기 일쑤였다. 또 ADHD 증상인지 자꾸 깜박깜박했다.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꼬물이는 감정을 받아주고 공감해 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자꾸만 잊어버리고 내 감정이 불쑥 올라와버리며 버럭 하니 그것이 안타깝고 미안했다.


머릿속 계산기가 윙윙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실 이제 나는 두 마리 사람 강아지들을 키우고 수발든다고 하루종일 바쁘고 지치기 때문에 진짜 강아지를 키우고 싶은 마음은 솔직히 별로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똥, 오줌 치우고 산책에 목욕에..

하지만 우리 집에 강아지가 오고 나와 아이들이 얻을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을 생각하면 한 번 해볼 만한 일이었다.

개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비록 나와는 '비즈니스 관계'이지만, 베이비시터로 근무해 주는 대신 아이들과 남편 이 동물을 좋아하니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 애정은 충분히 받을 것이고, 우리 집은 앞으로 20년가량 늘 사람이 들락날락거릴 예정이니 혼자 집에 있지 않아도 될 것이고, 내가 의/식/주를 평생 책임지고 보장해 준다면 그리 나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털복숭이 이모님 한 마리를 우리집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모모는 잘 짖지도 않고 순둥이이라는 장점이 있긴 하지만 배변 훈련을 하는데 1년 이상 꼬박 걸렸다. 가리는 듯하다가도 종종 실수를 했다. 카펫에도 발매트에도 놀이텐트 안에도. 배변판에 쉬를 하러 가면서도 그 위에 올라가서 누지 않고 자꾸만 가다가 중간에 거실이나 베란다에 누거나 배변판 바깥으로 엉덩이를 어정쩡하고 빼고 눠서 오줌을 질질 흘려 놓았다. 그럴 때마다 오줌 냄새에 예민한 나는 질겁해서 10번 정도 닦고 탈취제도 10번 뿌리고 하면서 한 6개월 정도는 아예 모모를 졸졸 따라다녔던 것 같다.

어떤 날은 베란다에 있는 배변판 위에 정확히 올라가는 걸 가르쳐 주려고 모모가 화장실에 갈 때까지 1시간 가까이 기다리기도 했다. 겨울이라 베란다가 너무 추워서 패딩까지 껴입고 쪼그리고 앉아서 모모가 쉬가 마려울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빨리 배변훈련을 끝내야 내가 조금 편하게 살 수 있었으니까! (오줌 테러 제발 그만)

내가 추운 데서 몇 번 고생하는게 꼬물이 마음이 추운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쉬만 제발 가리자)

'아이고, 그래도 지 새끼 잘 키울라고 애쓰네~' 하면서 하늘이 도운 건지, 아니면 모모가 나의 간절함과 절박함을 느끼고 선심 써준 건지 몰라도 모모는 2살 쯤 되니 다행히 거의 완벽하게 배변훈련이 되었다.

그리고 꼬물이가 울 때마다 언제든 다다다다 뛰어가서 눈을 맞추고 눈물을 싹싹 핥아 주었다.


비즈니스 관계이긴 하지만 그래도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모모야, 나도 약속은 꼭 지킬게.

오래오래 우리 가족이랑 건강하자!





강아지와 아이들의 차이점.

강아지는 열 번 못본척하다 한 번만 봐줘도 좋다고 꼬리치며 난리,

애들은 열번 들어주다 한 번 못해주면 싫다고 난리.


강아지와 아이들의 공통점.

매번 똥을 닦아주고 치워 주어야하는 번거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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