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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아이 Nov 19. 2023

놀이터 학교에 입학하다

휘청휘청 외줄타기 엄마라서

우리 모녀는 공부를 너~무 싫어해서 최대한 미루다가 닥치면 어쩔 수 없이 헐레벌떡한다는 점에서 환상의 콤비를 자랑한다.

'한글은 학교 가서 배우면 되겠지?'라고 해맑게 걱정 없이 지내던 예비 초등생 학부모 엄마인 나와, 아무 생각 없이 '공부를 싫어하는 편이라서' 쓰거나 읽는 연습을 전혀 하지 않던 예비 초등학생 꼬물이.

초등학교 입학하기 바로 전 겨울에도 우리는 아주 마음 편안히 놀면서 지내고 있는데 초등학교 교사인 내 여동생(꼬물이 이모 등장)이 한마디 했다.

"언니야, 요즘 초등학교에 한글 모르고 입학하는 아이들 거의 없는 거 아나?"

"어차피 학교 들어가면 배울 건데 뭐. 1학년 때 수업 과정에 있잖아."

"그런 우리 때나 그랬지! 지금 한글 모르고 오는 애들은 전교에 1-2명 밖에 없을걸? 그럼 아무래도 튀니까 언니야도 꼬물이도 '요주 인물'로 약간 찍힐 수도 있을걸ㅎㅎ"

"오잉? 뭐라고?? 그건 별로인데."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주 속성으로 하루에 갑자기 무려 2. 시. 간. 씩 한글 떼기를 벼락치기로 공부해서 꼬물이는 겨우 80%쯤 한글을 알고 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며칠 동안 저도 나도 식겁하긴 했지만 이제 한글을 때가 깨칠 때가 되서인지 이제껏 어느 정도 노출이 된 상태여서인지 금방 배우긴 했고, 입학하고 얼마 안 돼서 한글을 줄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휴우~~ 식은땀)


사실 내 관심사는 꼬물이의 한글 떼기나 초등학교 예비 학습 이런 게 전혀 아니었다.

내가 제일 신경이 쓰였던 부분은 꼬물이의 무사 입학, 학교 적응, 학교 친구 사귀기 이런 것이다. 유치원에 입학할 때 하도 고생을 해서 이번에도 꼬물이가 학교 안 간다고 난리 치면 어쩌나 그게 걱정이 되었고, 들어가서 공부하기 싫다고 수업시간에 못 앉아있고 도망치면 어쩌나, 연말에 태어난 데다가 키도 작은 편이라 또래보다 2살은 어려 보여 아직 완전 5살 꼬맹이 같아 보이는데 친구들이 안 놀아주면 어쩌나 이런 걱정들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특히 저학년 때는) 학교 가서 학교 규칙에 적응하고, 또래 친구들과 잘 놀고, 책 읽는 습관만 잘 가지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 하면 이제 초등학생이 된 꼬물이가 학교에서, 또 방과 후에 잘 놀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엄마인 내가 관찰하기에 꼬물이는 호기심 많고 좋아하는 것에 집중을 잘하는 장점이 있지만, 기질적으로 본인에게만 관심이 많고 다른 사람에게 큰 관심이 없어 사회성이 부족해 보였다. (누구누구처럼~) 그러니 더욱 학교에 들어가 친구를 잘 사귀는 경험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꼈다.


이러한 이유로 꼬물이는 영어학원이나 수학학원이나 학습지를 시작하는 대신에 학교 바로 옆에 있는 놀이터에 다니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저학년들은 유치원생 보다도 더 빨리 하교한다. 학교 마치면 1시 조금 넘고, 방과 후 수업을 한다 해도 2시 전에 대부분 마치게 된다.

꼬물이는 학교 마치고, 말랑이는 유치원 마치고 매일 학교 옆 '놀이터 학교'로 다시 등교해서  2-3시간씩 꼬박꼬박 놀았다. 유일하게 등록한 학원인 태권도에 갈 시간이 될 때까지. 태권도는 꼬물이 말랑이 아버님의 강력추천으로 이 무렵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태권도 같은 운동을 어릴 때 안 해 봐서 잘 모르지만 남편은 어릴 때 태권도를 배웠는데 심신수련에 엄청 도움이 되었다고 그거 하나만은 꼭 배워야 한다고 했다)

나도 아이들 마치는 시간 즈음에 맞춰서 이제껏 그랬듯이 물이랑 간식을 챙겨서 매일같이 출근을 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집 근처 공원이나 숲이 아니라 학교 옆 놀이터로 나가는 것과, 간식은 놀이터에 오는 친구들이랑 같이 나눠 먹을 만큼 넉넉하게 한 가방 가득 챙기고, 내가 심심할 때 볼 책도 한 권 챙겨가는 것.


매일 죽치고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는 나를 보며 동네 엄마들이 안 힘드냐고 참 많이도 물어보았다.

하지만 사실은 나는 집에 있는 게 더 힘들어서 놀이터에 나가 있었던 이유도 크다.  

나처럼 하위 1% 정도 안에 들지 않는 보통 엄마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여기가 얼마나 마음 편한 곳인지.

나에게는 집에서 애들 둘을 데리고 하루종일 지내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었다. 둘이 심심하면 싸우고, 찌꺼기 온천지에 만들고, 계속 뭘 흘리고 쏟고... 10분에 한 번씩 혼내고 혼날일이 생기는데 놀이터에서는 그럴 필요 없이 웃으며 마음 편하게 몇 시간 후딱 때울 수 있다. (물론 몸은 쪼금 힘들어도) 꼬물이도 말랑이도 각자 친구들과 논다고 싸우지도 않고 뭘 일러주러 내게 오지도 않고  찡찡대지도 않고 신나 한다.

그것만으로도 애들뿐 아니라 나에게도 꿀같이 좋은 시간인 거다.


그런데 매일같이 놀이터에 나가 앉아 있다가 느낀 것이 하나 있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면서 많이 배우고, 많이 크구나...

아이들은 놀이터에서도 세상을 배운다!





나를 꼭 닮은 딸이 이제 한 달 뒤면 드디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별 탈 없이 건강하게 6년 동안 잘 커줘서 다행이고 조금씩 세상을 날아가며 자기 모습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

그런데 왜일까 참 희한도 하지...

불쑥불쑥 슬픈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내일이 오면 오늘의 내 아이와는 영영 이별해야 된다는 것, 엄마는 아기를 낳아 품에 안는 순간부터 그 아기를 품에서 내보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

가뜩이나 아직도 아기 같은데 또래보다 몇 달이나 더 빨리 학교에 보내야 되는 게 더 애가 탄다.

그래도 앞으로 6년은 손 붙잡고 끼고 다닐 시간이 남아 있어서 정말 정말 다행이다.

그 뒤 6년은 집에서 베이스캠프만 쳐주고 완전히 내 품을 떠날 준비를 하는 아이의 모습을 담담히 지켜보며 응원해 줘야겠지.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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