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휘청 외줄타기 엄마라서
왠지 이모라는 호칭은 아줌마보다 더 친밀하고 덜 촌스러워 보여서 좋다. 나도 아줌마가 된 지 한참 지났지만 아직도 뭔가 뽀글한 파마머리에 몸빼바지를 연상시키는 아줌마라는 호칭보다 이모라고 불리는 게 더 나은 것 같다.
아이들은 엄마의 친동생인 친이모를 포함해 크면서 많은 '이모'들을 만나게 된다. 엄마의 친한 친구도 이모이고, 어느 정도 가까워진 동네 친구의 엄마도 편하게 이모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모라는 불리는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된 특징은 엄마와 어느 정도 친밀감이 있고, 보통 엄마 또래이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의 엄마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엄마뿐 아니라, 다른 엄마들인 여러 이모들을 보고 겪으며 자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꼭 나처럼 유달리 특이한 하위 1% 엄마가 아닌 보통의 엄마들도 완벽하게 다 잘하는 엄마, 완벽히 균형 잡힌 엄마는 없기 때문에 자신의 엄마의 모습만 보는 것보다 다양한 모습의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이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이다.
모든 엄마들에게 부족한 점이 있는 것처럼, 모든 엄마들에게 배울 점이 각각 다 있을 테니까.
아이들은 아마 몰랐을 것이다. 엄마도 자기들처럼 친구랑 노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엄마가 평소에는 이거 해~ 저건 하지 마~ 하면서 참 어른처럼 엄마역할을 꼿꼿이 수행하다가 다른 이모들과 깔깔거리며 수다 떠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엄마도 놀고, 떠들고, 장난치는 것 좋아하네? 어른인 엄마도 어른들끼리 있을 때는 우리처럼 잘 노네?' 그리고 그런 엄마의 즐겁고 이완된 감정은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아이들에게 친구랑 잘 지내라 말로 하는 것보다 엄마인 내가 내 친구들과 티카티카 하면서 잘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인 사회성 공부 아닐까?
친하지도 않고 결이 다른 엄마들과 만나서 괜히 서로 비교 분석하고 경쟁하는 에너지 소모 같은 것은 하지 말고 그냥 나랑 잘 맞고 나를 잘 알고, 같이 있을 때 웃을 수 있는 내 사람들을 찾는다면 말이다.
직접 엄마 노릇 한번 해보지도 않았는데 그것이 무진장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어떻게 알까?
내가 엄마 역할을 하면서 겪는 크고 작은 어려움에 대한 남편의 이해와 공감은 한계가 있다. 음... 솔직히 한계가 크다. 아니, 진짜로 말하자면 남편은 잘 모른다. 잔소리를 바가지로 듣기 싫어서 이해하고 공감하는 흉내를 낼 뿐. (여보! 사실 나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모들은 본인이 직접 지금 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나오는 찐 공감과 이해가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 다 아는 그 끝도 없는 고난의 길에 대하여!!
이모들은 엄마가 때로는 힘든 것을 알아주고 든든한 엄마의 정신적 정예부대로 엄마가 육아전투를 벌이다가 전세가 기울어질 때면 아낌없는 지원을 해 준다.
나는 내가 엄마가 되어보기 전에는 '아이들'이라는 생물들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정말 눈곱만큼도 없던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들보다 정신없고 귀찮은 작은 인간들 정도? 그런데 내가 딸도 아들도 낳아서 애간장을 태우며 길러보니 세상 다른 아이들도 귀엽고 귀한 존재로 보이게 되었다. 내 아이들과 같은 또래의 아이들, 그리고 내 아이가 지나온 시기를 지나고 있는 더 어린아이들, 내 아이들에게 곧 다가올 시기의 아이들에게도 엄마의 시선을 가지게 되었다. 나에게 또 하나의 눈이 생긴 것이다. '엄마'라는 눈.
다른 이모들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엄마의 눈으로 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우리 아이들을 봐준다.
예전 같으면 이해가 되지 않았을 테지만 이제는 이모들의 그런 넉넉하고 뜨끈한 오지랖이 고맙다.
나도 다른 아이들에게 오지랖 부리는 동네 아줌마, 동네 이모가 되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