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청휘청 외줄 타기 엄마라서
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중간에 나가떨어지지 않고 엄마라는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었을까?
유리멘탈, 거지체력 다 탈탈 털려서 도망가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부모님, 할머니와 할아버지, 선생님, 친구들, 이모들처럼 아이들을 키울 때 울타리가 되어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쭉 써보았다. 마지막으로는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준 공간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우리 집. 이보다 당당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한 장소는 세상천지에 또 없을 것이다. 집 장만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도, 아이를 낳고 기르기가 힘든 세상이라지만 그건 어른들 기준이 아닐까?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우리 엄마는 우리나라가 다들 가난했던 50년대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중에서도 동네에서 최. 고. 로. 가난했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찢어진 종이로 덕지덕지 붙여놓은 집안 벽이 흔들거리는 한 칸 집에서 5 식구가 살았다고. 외할아버지가 하루종일 수레에 무를 싣고 다니며 팔아서 한 봉지의 쌀로 그날그날 먹고살고, 다른 반찬도 없이 깍두기에 된장 하나로 일 년 내내 버텼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다 쓰러져가는 그곳이 음침하거나 쓸쓸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의 엄마가 딱!(이라고 늘 힘주어 표현하심) 어린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서 엄마는 집에 난방을 잘 못해도 하나도 춥지 않았고, 전기를 아껴야 해서 불을 켜지 않아도 환하게 밝았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올 때는 항상 문 앞으로 마중 나가서 현관문을 열면서 함빡 웃으며,
"우리 못난이 똥강아지들~ 오늘도 잘 놀고, 공부 잘하고 왔어?"라고 맞아준다.
(우선 그러고 난 다음에 잔소리 폭격 시작! 다다다다다다 다다~~~ 현실과 이상은 다름으로 )
감사하게도 우리 집은 여름에는 바람이 잘 통해서 시원하고, 겨울에 난방을 할 수 있어 따뜻하다. 해가 넘어갈 때까지 거실에 빛이 들고, 집 밖으로는 사계절 자연의 색 변화가 다 보이는 아파트이다.
이런 우리 집에서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엄마인 내가 딱! 집에 있을 수 있는 현실은 더 감사할 일이다.
꼬물이 4살, 말랑이 1살에 이사를 와서 1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이제 우리가 사는 이 동네가 참 정겹게 느껴진다. 우리 동네는 학교에 학년별 반이 2개씩 밖에 없는 작은 동네, 아직도 놀이터에 아이들이 나와서 올망졸망 노는 동네, 학원은 별로 없어도 커다란 산이 많은 동네이다.
물론 예전같이 시골에서 문 열어 놓고 사는 그런 동네와는 다르겠지만 작고 조용한 동네라 사람들 유동인구가 적은 편이라 서로 아는 얼굴들이 많다. 어릴 때 이사 온 우리 아이들은 거의 이 동네 토박이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우리 동의 이웃 주민들은 꼬물이와 말랑이 유모차 타고 이사오던 때를 기억하시고 아이들이 인사할 때마다 '아이고, 많이 컸네. 이제 몇 살이지?' 하고 웃어주신다. 한 번씩 아이들이 간식 배달을 하러 가면 경비 할아버지께서는 천 원씩 용돈을 쥐여주시기도 한다.
우리 동네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자연을 가까이에 두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집 바로 앞으로 호수 공원과 숲이 있어서 아이들과 강아지를 데리고 종종 산책이나 등산을 할 수 있다. 집터나 풍수지리 같은 것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사는 동안 우리 동네의 자연이 나를 품어주고 아이들에게도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동안 좋은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릴 때면 초록색 풀들이 바람에 춤추며 '나도 그럴 때도 있어'하면서 나를 위로해 주었고, 때로는 마음이 차갑게 식어 굳어버릴 것 같아 불안할 때는 하얗게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이 ‘괜찮아, 봄이 오면 다시 녹을 거야.' 하면서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우리는 여기 이곳의 공기와 물을 마시고, 이곳의 흙을 밟고, 이곳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자랐다.
내 주변의 이런 모든 것들이 나와 같이 우리 아이들을 키워 주었다.
이런 동네에서 쭉 눌러살면서 이곳과 정을 붙이고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
어떤 동네라도 바람에 춤추는 풀들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