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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아이 Jan 12. 2024

우리 집, 우리 동네

휘청휘청 외줄 타기 엄마라서

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중간에 나가떨어지지 않고 엄마라는 임무를 무사히 수행할 수 있었을까?

유리멘탈, 거지체력 다 탈탈 털려서 도망가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버틸 수 있었을까?

부모님, 할머니와 할아버지, 선생님, 친구들, 이모들처럼 아이들을 키울 때 울타리가 되어 나를 도와주었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쭉 써보았다.  마지막으로는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준 공간과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먼저 '우리 집'이다.

우리 집. 이보다 당당하고 자연스럽고 편안한 장소는 세상천지에 또 없을 것이다. 집 장만 때문에 결혼을 하는 것도, 아이를 낳고 기르기가 힘든 세상이라지만 그건 어른들 기준이 아닐까?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지 하는..

사실 아이들에게는 평수도 인테리어도 집값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신을 보살펴주고 기다려주는 가족들이 있는 곳.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일상을 같이 보내는 곳. 그것이면 충분하다.


우리 엄마는 우리나라가 다들 가난했던 50년대 태어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그중에서도 동네에서 최. 고. 로. 가난했다고 한다. 바람이 불면 찢어진 종이로 덕지덕지 붙여놓은 집안 벽이 흔들거리는 한 칸 집에서 5 식구가 살았다고. 외할아버지가 하루종일 수레에 무를 싣고 다니며 팔아서 한 봉지의 쌀로 그날그날 먹고살고, 다른 반찬도 없이 깍두기에 된장 하나로 일 년 내내 버텼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다 쓰러져가는 그곳이 음침하거나 쓸쓸하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면 엄마의 엄마가 딱!(이라고 늘 힘주어 표현하심) 어린 엄마를 기다리고 있어서 엄마는 집에 난방을 잘 못해도 하나도 춥지 않았고, 전기를 아껴야 해서 불을 켜지 않아도 환하게 밝았다고.


그 이야기를 듣고 나도 아이들이 어린 시절에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올 때는 항상 문 앞으로 마중 나가서 현관문을 열면서 함빡 웃으며,

"우리 못난이 똥강아지들~ 오늘도 잘 놀고, 공부 잘하고 왔어?"라고 맞아준다.

(우선 그러고 난 다음에 잔소리 폭격 시작! 다다다다다다 다다~~~ 현실과 이상은 다름으로 )

감사하게도 우리 집은 여름에는 바람이 잘 통해서 시원하고, 겨울에 난방을 할 수 있어 따뜻하다. 해가 넘어갈 때까지 거실에 빛이 들고, 집 밖으로는 사계절 자연의 색 변화가 다 보이는 아파트이다.

이런 우리 집에서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엄마인 내가 딱! 집에 있을 수 있는 현실은 더 감사할 일이다.


그다음은 '우리 동네'이다.

꼬물이 4살, 말랑이 1살에 이사를 와서 10년 가까이 살다 보니 이제 우리가 사는 이 동네가 참 정겹게 느껴진다. 우리 동네는 학교에 학년별 반이 2개씩 밖에 없는 작은 동네, 아직도 놀이터에 아이들이 나와서 올망졸망 노는 동네, 학원은 별로 없어도 커다란 산이 많은 동네이다.

물론 예전같이 시골에서 문 열어 놓고 사는 그런 동네와는 다르겠지만 작고 조용한 동네라 사람들 유동인구가 적은 편이라 서로 아는 얼굴들이 많다. 어릴 때 이사 온 우리 아이들은 거의 이 동네 토박이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는 우리 동의 이웃 주민들은 꼬물이와 말랑이 유모차 타고 이사오던 때를 기억하시고 아이들이 인사할 때마다 '아이고, 많이 컸네. 이제 몇 살이지?' 하고 웃어주신다. 한 번씩 아이들이 간식 배달을 하러 가면 경비 할아버지께서는 천 원씩 용돈을 쥐여주시기도 한다.


우리 동네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자연을 가까이에 두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집 바로 앞으로 호수 공원과 숲이 있어서 아이들과 강아지를 데리고 종종 산책이나 등산을 할 수 있다. 집터나 풍수지리 같은 것을 믿는 편은 아니지만, 사는 동안 우리 동네의 자연이 나를 품어주고 아이들에게도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남편과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동안 좋은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데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릴 때면 초록색 풀들이 바람에 춤추며 '나도 그럴 때도 있어'하면서 나를 위로해 주었고, 때로는 마음이 차갑게 식어 굳어버릴 것 같아 불안할 때는 하얗게 얼어붙은 호수의 얼음이 ‘괜찮아, 봄이 오면 다시 녹을 거야.' 하면서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우리는 여기 이곳의 공기와 물을 마시고, 이곳의 흙을 밟고, 이곳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며 자랐다.

내 주변의 이런 모든 것들이 나와 같이 우리 아이들을 키워 주었다.

이런 동네에서 쭉 눌러살면서 이곳과 정을 붙이고 살아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아이 재밌게 해 주려고 돈 많이 들여가며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아이 공부 제대로 시키려고 비싼 학군지 찾아 이사 다니지 않아도 충분히 괜찮다.

그 어디에 살더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그곳,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그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면 누구라도 그곳이 주는 에너지를 한껏 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동네라도 바람에 춤추는 풀들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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