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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 May 04. 2023

배부른 하소연

1

나는 게으르고 나태하다. 매일 글을 쓴다는 시점에서 성실한 사람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그 시간 이외에는 아득한 생각을 끌어안고, 그 어떤 일도 하지 않으려 애쓴다. 생각이 역류하여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휩쓸려 간 날도 많았다. 글을 쓰게 된 연유 역시 마찬가지다. 적어도 글을 쓸 때에는, 날뛰는 생각들이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글에는 제법 재주가 있었다. 누군가는 코웃음칠지도 모르겠으나, 스스로는 그렇게 자부한다. 내가 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일이다, 애처로운 나의 사명이다, 라고. 쓰는 것이 아니라 쓰여지는 것이라고. 그래서 한번 쓴 글은 퇴고하지 않는다.




2

창작은 재능의 영역을 요구한다. 그러나 재능의 정원 안에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없다. 환경을 선택해 태어나지 못하듯, 운은 선택되는 것이 아니다. 다행히도 난 재능의 꽃에 충분히 관수할 수 있는 정원에 머무르고 있다. 정(正)도, 반(反)도, 합(合)도 아닌, 그 어중간함의 경계에서 부유하는 삶. 세상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나의 삶이 썩 마음에 든다. 그러나 그 속에서 꽃 피운 재능이란 너무나 보잘것없는 것이라서, 이내 꺾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가차 없이 뒤돌아버리는 못난 심보다. 빛 좋은 개살구다. 바라던 꽃이 만개할 때까지는, 쓰는 일을 그만두진 않을 듯싶다.




3

공개적인 장소에 글을 쓰는 이유는, 누군가 자신의 글을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혼자 일기장에 끄적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테니까. 그래서 나의 글은 수요 없는 공급이라 생각했다. 자조적이고 무미건조한 문장. 미려하지 못한 언어들. 에세이의 탈을 쓰고 있는, 나만의 성서.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글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이런 송장썩는 글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그렇다. 이건 단지 배부른 하소연이다. 그럼에도 나의 글을 찾아온 이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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