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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 May 10. 2023

창작욕

1

나는 제법 어리숙한 사람이다. 어딘지 모르게 나사가 빠져있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하나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도록 파고든다. 그래서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한다. 남들과의 대화가 서투른 이유다. 잠시 방심하면, 어느새 삼천포로 빠져있다. 요즘은 글을 쓰는 일이 그러하다.


인간의 3대 욕구를 흔히 식욕, 수면욕, 성욕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성욕보다는 배설욕이 이에 합당하다 할 수 있다. 먹지 않으면 죽는다. 자지 않으면 죽는다. 배설하지 못하면 죽는다. 인간의 욕구는 생존과 직결된다. 그러나 성욕은 이와 별개의 문제다. 당장에 스님이나 신부님과 같은 성직자로부터 알 수 있듯, 성욕을 처리하지 못한다고 해서 죽지 않는다. 물론 성욕이 인간의 번식에 필수불가결한, 매우 유용한 도구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하지만 어째서 인간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망상은 멈추지 못한다). 한때는, 예술이나 창작이라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보다 고상한 일이라고 믿었다. 노동보다 더욱 가치 있는 행위라고 여겼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때는.




2

여전히 예술의 힘은 믿는다. 예술은 인간을 고양시킨다. 의학이나 과학으로는 대체불가한 역할을 맡는다. 그렇다고 해서, 예술을 인간 그 이상의 가치에 두진 않는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이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나 피차일반이다. 예술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행위들 사이에는 경계가 없다. 그 모든 행위들이 하나는 아니지만, 이토록 평등한 것이다. 이건, 행위들 사이의 경계를 넘어가는 일이 아니다. 그 사실을 눈치채는 순간, 자연스레 경계가 밖으로 넘어와있다. 적어도 지금의 나에게는 그렇다. 나의 창작욕은 변기 위에 앉는 일과 진배없다. 일종의 배설이다. 그러니 부디 아무렇게나 휘갈겨 쓴, 구린내 풀풀나는 나의 글 따위에 너무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났다는 격언이 있다. 그러나, 배고픈 돼지로 사는 편이 삶의 본질에 좀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죽는다는 것은 어찌 되든 피곤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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