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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 May 27. 2023

불퇴전 不退轉

불퇴전 不退轉 

1. 한번 도달한 수행의 지위에서 물러서지 아니함.

2. 신심이 두터워 흔들리지 아니함.






1

글을 쓰는 일은 상당히 기술적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다 보면 자연스레 기술에 능숙해진다. 시간이 절약되고, 보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능숙한 기술자라 하더라도 휴식은 필요한 법이다. 글을 쓰는 일 역시 에너지를 소모로 하기에, 때론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모든 행위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세상을 천천히 관조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한동안은 글을 쓰지 않았다. 특별한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숨을 쉬고, 환기를 시켰다.


처음엔 제법 공을 들여 글을 썼다. 온갖 수사를 가져다 문장을 장식했다. 참신한 비유와 적절한 단어를 구사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았다. 이른바, '나만의 글'을 찾기 위해 부단히도 애썼다. 어쩌면 예술에 대한 열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을 들여 쓴 글에는 힘이 들어간다. 어딘가 긴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글을 쓰는 일을 포함해, 모든 행위들 사이에는 경계가 없음을 눈치챈 요즘이다. 글을 쓰는 창작욕과 변기에 앉는 배설욕 사이에 차이가 없음을 인지했다는 의미다. 자연스레 힘을 빼고 쓰게 된다. 담백하게 쓴다. 단어를 붙들고 씨름하기보다는, 일단 써 내려갈 뿐이다. 이전보다 가볍다는 기분이 든다. 내려놓고 나니, 자연스레 나의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치장을 벗어야만 자신의 민낯을 볼 수 있는 법이다.




2

소득이 증가하면 자연스레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그러나 소득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뒤부터는 더 이상 만족도가 증가하지 않는데, 이를 '이스탈린 역설'이라 부른다. 글을 쓰는 기술 역시 이 '이스탈린 역설'에 지배를 받는다. 기술의 수준이 일정 경지에 도달하고 나면, 더 이상 글에 있어 유의미한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기술의 스펙트럼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기에, 결국엔 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앞서 ‘한 발자국 떨어져 세상을 관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이유기도 하다.


경지, 경지에는 단계나 수준이 없다. 불퇴전이다. 경지에 도달한 순간부터는 퇴전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래서 '경지에 도달했는가'하는 의심이 없다. 묻지 않는다. 물을 이유도 없다. 퇴전이나 불퇴전이라고 부를만한 경계조차 없다. 글 역시 마찬가지라서, 어떤 글을 쓰든 결국 자신의 글을 쓰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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