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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승 Jun 12. 2023

도파민 중독의 시대가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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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지 않는 시대다. 첫 문단의 온점이 채 찍히기도 전에 덮어버리고 만다. 고전은, 말 그대로 고전으로 남게 되었다. 디지털 세상에 지루한 문자 따위는 더 이상 소비되지 않는다. 시청각적 쾌락, 조그마한 화면 속 스크롤을 내리며 고작 몇십 초짜리 쾌락을 탐미한다. 그야말로 말초적 숏폼(Short-Form)이 대세인 시대다.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쓴다. 가끔은 책을 읽는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홍상수의 영화를 감상한다. 바쁘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 몸을 맡기다가도, 한 발자국 떨어져 천천히 관조하는 여유를 가진다. 이러한 여유마저 없다면 삶이 너무 삭막하지 않겠는가. 동시대의 군중들이 화가 많은 이유는 바로 이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여유를 감상하는 법마저 잊고 말았다. 잊어버린 것이 아닌 잃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도파민 중독의 시대가 도래했다. 바쁜 현대인들은 디지털 미디어가 가져다주는 원초적 쾌락에 노출되기 쉽다. 잠시 잠깐 몇 번의 손가락질이면 충분하니까. 관음되는 공론장에선, 얼굴조차 모르는 타인과의 무의미한 저울재기에 박차를 가한다. 구경거리가 넘쳐나는 세상 속, 여유는 이제 지루함이 되었다.




2

물론 도파민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도파민이 가져다주는 쾌락은 인간을 고취시키기 때문이다. 술을 마신 뒤 취하고, 좋은 음악을 찾아 듣게 만든다. 삶의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항상성을 지닌다는 사실. 도파민 수치가 지나치게 높게 유지되면, 결국 그것에 둔감해진다. 마약 중독자가 더욱 강한 마약을 원하는 이유다. 도파민 수치가 떨어지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불안감과 초조함을 느낀다. 여유를 상실하고야 만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쾌락이란 교묘한 덫과 같아서,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지만, 그렇기에 그것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도파민이 가져다주는 이점은 스스로 성취할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그 행위가 다른 어떤 것들보다 고상하거나 우위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단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잊지 않기 위해 쓴다. 잠에 취하고 술에 취해 있더라도 언젠간 깨어나야 한다. 항상 취해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취해 있는 것이 아니다. 빨간색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사람은, 빨간색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빨간색만 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난 글을 쓴다. 언제나 깨어 있을 필요는 없지만, 언제라도 깨어나기 위해 글을 쓴다. 에크하르트 툴레는 말했다. 그대, 지금 이 순간 깨어 있으라.


"난 바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영화를 만든다. 내가 강했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을 견딜 수 없어서 영화를 만든다. 다른 이유는 없다. 이게 내 일에 대해 가장 정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예요.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장 뤽 고다르,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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