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품보다 '고객'을 먼저 만들어야 하는 이유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가 제안하는 고객 개발의 정석

by 심재후

창업가들은 밤새워 코드를 짜고, 시제품을 만들며 "무엇을 만들 것인가(Product Development)"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좋은 제품을 만들면 고객은 자석처럼 끌려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창업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비극이 훨씬 자주 목격됩니다. 열심히 만든 제품은 있는데 정작 사 줄 사람이 없거나, 우리가 푼 문제가 고객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문제였음이 뒤늦게 밝혀지는 경우입니다.

제품 개발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누가, 왜, 이 물건을 사는가"를 확인하는 '고객 개발(Customer Development)'입니다. 오늘은 실리콘밸리의 거장 스티브 블랭크의 이론을 빌려, 왜 우리가 사무실 밖으로 나가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스타트업은 '작은 대기업'이 아니다

전통적인 비즈니스, 혹은 대기업은 '제품 개발' 중심의 프로세스를 따랐습니다. 아이디어를 다듬고, 제품을 완성한 뒤, 화려하게 시장에 출시(Launch)하는 방식이죠. 하지만 스타트업에서 이 방식은 대개 실패로 귀결됩니다. 왜냐하면 스타트업은 대기업과 본질적으로 다른 환경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연쇄 창업가이자 스탠퍼드 대학에서 창업론을 가르치는 스티브 블랭크(Steve Blank) 교수는 그의 저서 《깨달음에 이르는 4단계(The Four Steps to the Epiphany, 2005)》에서 이렇게 단언합니다.

"스타트업은 축소된 대기업이 아니다(Startups are not smaller versions of large companies)."

대기업은 이미 알려진 고객과 시장을 대상으로 '실행(Execution)'하는 조직이지만, 스타트업은 미지의 고객과 시장을 '탐색(Search)'해야 하는 조직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제품을 만들기 전에, 먼저 고객을 발굴하고 검증하는 체계적인 과정이 선행되거나 최소한 병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그가 주창한 '고객 개발(Customer Development)' 방법론의 핵심입니다.


고객을 찾아가는 4계단

스티브 블랭크는 이 탐색 과정을 막연한 감이 아닌, 4단계의 엄밀한 프로세스로 구조화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고객 발견(Customer Discovery)'입니다. 이 단계의 목표는 "내 생각이 맞나?"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책상에 앉아 가설을 세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밖으로 나가(Get out of the building) 실제 잠재 고객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의 가설대로 그들이 문제를 겪고 있는지, 그 문제가 해결할 가치가 있는 고통인지 인터뷰를 통해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두 번째 단계는 '고객 검증(Customer Validation)'입니다. 문제가 있다는 건 알겠는데, 과연 그들이 지갑을 열까요? 이 단계에서는 초기 형태의 제품(MVP)을 통해 고객이 실제로 구매 행동을 하는지, 반복적으로 사용할 의사가 있는지를 검증합니다. 여기서 비즈니스 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주저 없이 다시 첫 단계로 돌아가야(Pivot) 합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단계는 '고객 창출(Customer Creation)''조직 구축(Company Building)'입니다. 앞선 두 단계에서 고객과 시장이 검증되었을 때 비로소 마케팅 예산을 태워 수요를 확장하고, 본격적인 조직 체계를 갖추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많은 창업가가 실패하는 이유는, 앞의 두 단계(발견과 검증)를 건너뛰고 곧바로 마케팅과 조직 확장에 돈을 쓰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 사무실 밖으로 나가라

그렇다면 예비 창업가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할까요? 고객 개발은 거창한 컨설팅이 아닙니다. 먼저, "누가 나의 고객인가"를 한 문장으로 정의해 보십시오. 단순히 '20대 여성'이 아니라, '출근 시간에 화장을 못 해 스트레스를 받는 20대 직장인'처럼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을 담아야 합니다.

그다음은 대화입니다. 설문조사 링크를 돌리는 건 잠시 멈추고, 10명의 잠재 고객을 직접 만나십시오. 만나서 "제 제품 어때요?"라고 묻지 말고, "최근에 이 문제 때문에 힘들었던 적이 있나요?"라고 물어보세요. 고객 개발의 목적은 내 생각이 맞았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디서 틀렸는지를 빨리 찾아내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맺으며: 두 발로 걷는 창업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과 고객을 이해하는 것,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요? 이 질문은 마치 "왼발과 오른발 중 어느 발이 걷는 데 더 중요한가?"라고 묻는 것과 같습니다. 제품 개발이 "무엇을 만들 것인가"의 문제라면, 고객 개발은 "누가, 왜 이것을 사는가"의 문제입니다. 이 둘은 경쟁 관계가 아니라, 창업이라는 긴 여정을 지탱하는 두 다리입니다. 창업을 준비 중이신가요? 그렇다면 오늘 코드 한 줄, 디자인 한 장을 더 만들기 전에 잠시 멈추고 밖으로 나가 고객 한 명을 만나보시길 권합니다. 그 짧은 대화가, 당신의 창업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을지도 모릅니다.


참고문헌

Blank, S. (2005). The Four Steps to the Epiphany: Successful Strategies for Products that Win. K&S Ranch.

Blank, S., & Dorf, B. (2012). The Startup Owner's Manual: The Step-by-Step Guide for Building a Great Company. K&S Ra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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