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는 한국인에게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다
인터넷에서 언어의 난이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잘못된 인식이 너무 많이 퍼져 있어서 몇 번이나 의견을 표명하려다가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결국 이 내용을 정리해서 남겨보고자 한다.
결론부터 거칠게 말하자면 세상에서 '절대적으로' 가장 어려운 또는 쉬운 언어라는 것은 없다. 근본적으로는 '가장 어렵다'를 정의하기 위해서는 그 기준을 제대로 규정짓지 않으면 안 된다. 인터넷에 멋대로 돌아다니는 가장 어려운 언어 같은 것은 대부분 영어 사용자를 중심으로 작성된 것이다. 그걸 가지고 일본어가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라는 이야기를 들먹이면 한국인으로서는 황당할 뿐이다.* 가끔은 비슷한 내용으로 한국어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라는 경우도 있는데 그 역시 영어 사용자 기준이고, 왜 두 언어가 그렇게 언급되는지는 명백하다. 하지만 언어에는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절대적인 '어려움'은 있을 수 없다. 다만 언어 간 유사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를 '언어 거리 linguistic distance/language distance'라고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느끼는 어려움의 차이는 언어 거리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누구나가 똑같이 느끼는 절대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것에서 유추할 수 있듯, 영어와 한국어가 언어 거리상 상당히 멀리 위치한다. (유사성이 거의 없다.) 한국어와 일본어의 거리는 가깝다. (상당한 유사성이 있다.) 영어가 한국어, 일본어 중 어느 것과 조금 더 가까운지까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내 예상에는 일본어가 조금 더 가까울 거라 추측한다) 결론적으로 이를 대략적 느낌으로 보자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영어 - 기타 수많은 유럽 언어들 - - - - - 대충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 - - - - 일본어 / 한국어
실제로 언어 거리는 직선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단순하게 일직선에 모든 언어가 놓여있다고 가정하면 언어의 난도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는 점을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 참고로 실제로 언어 거리를 도식화하면 아래와 같은 이미지에 가깝다.
https://linguistics.stackexchange.com/questions/17400/worldwide-map-or-data-for-linguistic-distance
말이 길어졌지만, 그러니까 결론은 영어, 기타 알파벳을 근본으로 만들어진 언어 사용자들에게 일본어와 한국어는 자신의 모국어와 유사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려울 수밖에 없고, 일본어와 한국어 사용자에게는 그 반대다. 우리에게는 끔찍하게 멀고 어려운 영어이지만 유럽인들에게는 비교적 배우기 쉬운 (가끔은 별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유사성을 가진) 언어인 것이다.
나는 한국 필수 교과목으로 영어를 배우는 지점에서 한국인들의 외국어와 언어 난도에 대한 감각이 일그러졌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자신의 모국어와 가장 유사성이 없는 언어를 외국어로서 처음 접하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외국어란 영어 같은 것, 즉 '한국어와 전혀 유사성이 없고 완전히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다른 감각의 어떤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영어권 연구와 기사에서 그렇게 외쳐대는 '한국어가 가장 어려운 언어'는 사실 '한국인에게 가장 어려운 언어는 영어'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위에 말한 언어 거리를 근거로 따지면 우리는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언어를 필수과목으로서 배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늘 영어권에서 말하는 '가장 어려운 언어'라는 문자 그대로의 피상적인 표현만 보고, 실제로 우리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어려운 언어는 '영어'라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외국어는 원래 그렇게 어려운 것이 기본값이니까.
결론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는 언어를 학습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라진다.
한국어는 '영어'와 비슷한 여타 언어 사용자들에게 가장 유사성이 없어서 고난도의 언어가 될 수 있다.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무엇보다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에게 '영어' 역시 희소한 유사성으로 굉장히 어려운 언어라는 사실을 함께 기억해주었으면 한다.
* 덧붙여 여기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모두 '한국어'라는 '언어'에 관련된 것이지 문자인 '한글'에 국한된 내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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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혹시나 초반에 언급된 한국인으로서 일본어가 가장 어려운 언어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의문을 품는 분이 있을까 싶어 이야기를 조금 더 덧붙여본다. 혹시, '아닌데, 일본어 진짜 어려운데! 한자도 외워야 하고, 읽는 방식도 여러 개고, 경어 사용법도 복잡하고, 고급 일본어는 절대적으로 봐도 다른 언어보다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여기서 말하는 '가장 어려운 언어'는 결국 절대적 무언가가 아니라 '비교 우위'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앞에서 설명했듯 유사성이 전혀 없는 언어 사용자가 배우는 어려움과 상당한 유사성을 가진 언어 사용자가 언어를 학습하는 어려움은 절대 같을 수 없다. 그런 부분을 고려하면 일본어가 다른 그 어떤 언어보다 한국어 사용자에게 어려울 수는 없다. 아무리 고급 표현이 낯설고 복잡해도 그것은 어떤 언어를 배워도 마찬가지로 따라오는 어려움이다. 고급 레벨의 언어 사용자가 되면 미묘한 뉘앙스들, 한국어로 아무리 생각해도 번역할 수 없는 표현들, 끊임없이 나오는 디테일한 어휘들에 압도당한다. 하지만 일본어만큼 한국인에게 문법과 구조적으로 직관적인 언어는 없다. 이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가 한국인에게 제일 어려운 언어일 리가 없다!'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이 부분은 학습 난도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먼저 영어는 세계 공용어 universal language다. 어느 나라를 가도 (제1언어 영어인 국가 제외) 가장 친근하고 익숙한 외국어는 영어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교과 필수과정으로 10년 이상 배워온 영어의 기반은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환경이 영어가 무지막지하게 어려운 언어라고 인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많이 노출되고 학습된 경험으로 인해 이미 습득된 영어 지식이 한국에 보편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학습이 쉽다는 증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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